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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국책은행

김의석 기자

eskim@

기사입력 : 2016-06-22 21:03

금융부장 겸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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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국책은행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1950년대 할리우드 명배우 로버트 테일러와 데버러 커가 주연한 ‘쿼바디스’라는 영화가 있다. 원 제목은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라틴어: 어디로 가시나요, 주님)이다. 그런데 요즘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보면 이 말이 절로 나오는 것 같다.

한때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천하의 국책은행이 어쩌다 동네북 신세로 전락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 발표된 감사원의 ‘금융공공기관 출자회사 관리실태’감사보고서 내용을 보면 짐작했던 데로 정책금융 집행·관리가 허술하고, 국책은행의 무능·무책임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KDB산업은행은 분식회계를 적발할 수 있는 재무 분석 시스템을 만들고도 대우조선해양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우조선해양 경영 부실에 조기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찬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조선업과 무관한 자회사를 17개나 만들어 9000억원이 넘는 손실이 났는데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했다.

한국수출입은행도 성동조선해양의 인적·물적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고도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자(赤字) 수주 허용 물량을 22척에서 44척으로 늘려주며 거꾸로 갔다. 그로 인해 폐쇄했던 작업장이 다시 개장되는 등 구조조정이 중단됐고, 경영 정상화가 더 어려워졌다.

이번 감사원 감사는 이들 국책은행과 정책금융 문제의 극히 일부만 다뤘다. ‘반쪽’도 안 되는 ‘반의 반쪽’ 감사였다. 감사 결과에 따른 조치도 실무 책임자 몇 명에 대해 문책 등을 요구하는 데 그쳤다. ‘눈 가리고 아웅’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들 국책은행이 출자전환 자회사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은 것은 지엽적인 문제다. 사실은 그럴 능력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이야기다.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의 전문성과 역량도 없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일을 떠맡은 게 근본 문제다. 애초 출발이 잘못됐는데 결과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시장 일각에선 국책은행 무용론 내지 폐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해운업을 위기로 빠뜨린 장본인이란 비난을 이들 국책은행이 온통 뒤집어쓰는 게 맞나하는 생각이 든다.

정부, 즉 관료들은 책임이 없냐고 묻고 싶다. 4조2000억원 신규 지원만 해도 그렇다. 그 결정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내려졌다. 당시 참석자는 최경환 부총리, 임종룡닫기임종룡기사 모아보기 금융위원장,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다.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도 참석했지만 그 자리에서 누구 말발이 더 센지는 금융권 사람들은 다 안다.

이래 갖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될까 걱정된다. 구조조정은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때론 알짜 계열사도 팔아치우고, 직원도 왕창 줄여야 한다. 감원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는 쌍용차 해고때 여실히 드러났다. 그래도 회사를 살리려면 눈물을 머금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권력이 끼어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적 금융 풍토 아래서 채권은행들은 윗분들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세상물정 모르고 칼을 휘두르다 미운털이 박힐지도 모른다. 알아서 기는 관치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엔 기업 구조조정의 규칙이 있다. 부실 기미가 드러난 기업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자구 노력을 편다. 이게 1단계다. 그래도 안 되면 2단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간다. 그래도 안 되면 3단계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는다. 3단계는 법원의 몫이다. 1~3단계 어디에도 정부가 개입할 법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사례에서 보듯 정부는 불쑥 끼어든다. 그럴 때마다 시장의 룰은 작동불능 상태에 빠진다.

정부 개입이 불가피할 때도 있다. 국가 경제가 시스템 리스크에 노출됐을 때다. 하지만 정부의 잦은 개입은 좀비기업들을 응석받이로 만든다.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는 한 정부는 나서지 말고 채권금융단을 믿고 맡겨야 한다. 이미 정해진 룰도 있다.

정책금융은 아무리 잘해도 ‘눈먼 돈’으로 전락하기 쉽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하는 우리 현실에선 누수(漏水) 위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 구조조정 진행 과정에서 정부의 인내심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국책은행을 총알받이 삼아 뒤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비겁하다. 국책은행 돈은 미래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는 데 써야 한다. 이게 바른 길이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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