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강자 없이 접전 아니면 혼전을 펼치는 영역이 늘고 있는 가운데 다시 한 번 강산이 바뀐다면 스스로 갈고 닦은 본원적 경쟁우위에 따라 향방이 크게 갈라질 것으로 예상하기에 알맞다.
1997년 외환위기가 몰고 온 기상이변 속에 자발적 첫 민간 대형합병의 총아로 출범한 통합 국민은행이 거의 대부분 영역에서 왕좌를 누렸던 시대는 갔다. 비록 국민은행이 초접전을 펼치다 잃었던 타이틀을 되찾고 격차를 벌리고 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턱 밑까지 추격을 허용한 영역이 부쩍 늘어난 상태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지난 1일 옛 국민+옛 주택 통합 출범 12주년을 맞아 의미 심장한 진단을 내렸다. “리테일뱅킹 최강자라는 위상으로 현재에 안주할 수 있겠지만 미래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담보할 수는 없음을 잘 알고 있다”고. 물론 전인 행장들이 ‘개인금융 최강 위상에 안주하지 말고 진정한 대한민국 대표은행으로 위상을 확고히 하겠다’는 비전을 내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통합 국민은행 출범이 거칠고 가파르게 일으켰던 지각변동에 비춰 보면 열 두 해 지난 지금 와서 달라진 판도, 진행 중인 경쟁이 또 한 번 강산이 바뀔 것이라는 비상한 상황인식을 5일이면 취임 110일을 맞는 새 행장은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 패권 10년, 지키느냐~나눠 갖느냐~새 주인 맞느냐
통합 국민은행 출범 효과는 이듬해인 2002년 평잔으로도 총자산 150조원 돌파에 세후 순익 1조원 돌파라는 맹위로 떨쳤다. 카드대란에 휩쓸린 2003년 9300억원대 적자에다 김정태닫기

그렇지만 시장은 냉혹하다.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개인고객 기반이 경제활동 인구 수와 맞먹고 국내 최대 영업점포망을 갖추는 사이 총자산과 총대출 최대 규모에 이자마진은 가장 높았던 호시절을 누릴 수 있었지만 변화관리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달라진 위상, 격동하는 현실은 2010년부터 뚜렷해 진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외환위기 뒤로는 리테일뱅킹 경쟁력의 핵으로 꼽히는 핵심예금 비중 면에서 국민은행이 그만, 권좌를 위협받은 원년이 됐기 때문이다. 대개 요구불예금과 저축예금을 합해서 일컫는 핵심예금 비중은 국민은행이 당연히 1위를 달렸던 분야였고 그 해에도 26.04%였다. 한데 신한은행이 26.37%까지, 당시 농협중앙회가 25.88%까지 추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직 행장이 지주사 사장을 고발하는 신한 사태가 작용한 듯 신한은행과의 핵심예금 비중 격차는 2011년과 2012년 다시 소폭 벌어졌지만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농협은행으로 새출발한 농협은행이 지난해 말 26.25%로 26.47%를 나타낸 국민은행을 바짝 뒤쫓았다.
우리은행이 이순우닫기

◇ 총대출과 이자마진 여유롭던 우위 또한 미미하게
국민은행 경쟁력 퇴조는 역설적으로 뒤늦게 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한 원년인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 새천년 들어 한 번도 붕괴된 적 없었던 순이자마진(NIM) 3%대가 끝내 깨진 채 2.99%를 찍은 게 2008년이다. 시중은행 평균 2.52%보다 여전히 월등 높은 수준이었지만 올 상반기 말 2%까지 급전직하 한 속도를 따지면 경쟁은행에 비해 가장 가파르다(무려 99bp=0.99%포인트)는 사실을 지나치기 어렵다.
농협중앙회 시절과 비교하는 것이어서 보정 필요성이 있을지 모르지만 농협은행은 이 기간 1.97%에서 2.15%로 되레 17bp 끌어 올리며 국민은행을 제치고 1위로 올라 서 버렸다. 리테일뱅킹 강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른 은행 고객을 잠식하고 있는 우리은행, 기업은행과는 각각 불과 5bp와 7bp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대출 규모나 점포 수 등에서 농협은행과 함께 근접 위협하고 있는 신한은행과의 격차가 24bp 벌어져 있다는 사실로는 위안 삼기 어려운 처지인 셈이다. 총 대출 규모 또한 2008년 50조원 이상이던 격차가 신한, 우리와는 30조원 후반대로 줄고 농협과 기은에는 50조원 차로 좁혀진 것 역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 여건 요동에도 끄떡없는 완충력, 고객관계 우월성 확보 긴요
국민은행 절대 권좌 시대가 가고 혼전에 빠진 가운데 가장 큰 변수는 당연히 우리은행 민영화 향배로 꼽힌다. 그렇다 해도 본질적인 국내 금융시장 패권은 본원적 경쟁력에서 판가름 될 것이라는 지적은 그대로 남는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2013 동향과 2014 전망 세미나를 통해 산업별 지역별 대출 자산을 골고루 분산시킨 가운데 짠물 리스크관리에 성과를 거두고 있는 US뱅크 사례를 모범으로 꼽았다. 이건호 행장이 강조한 대목과도 관련이 크다. 이 행장은 “대손비용 규모와 변동 폭이 큼에 따라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 했고 위상에 비춰 최악의 경영실적을 몇 차례 드러내는 약점보완이 중요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아울러 연구원이 상품과 서비스 차별화를 통해 고객관계를 심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은 모든 은행이 핵심가치로 표방하고 있는 경영정책에 부합한다. 따라서 문제는 누가 실제로 잘 구현하느냐에 달렸다고 짚어야 할 시점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