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평성의 원칙이나 현행 법령상 자격 요건 등을 보면 전북은행의 금융지주사 전환에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는 상태여서 내년 상반기 본인가를 얻어 공식 출범하면 독립 은행 체제를 고수하는 곳은 사실상 기업은행 홀로 남는 격이 된다.
금융지주사 제도가 도입된 지는 새해 12년을 맞지만 지주사 전환에 따른 과실은 은행이 독식하는 양상을 띠고 있는 데다 최근 4년 사이 봇물 터지듯 전환한 이후 긍정적 성과나 기여가 있었다는 평가는 접하기 어렵다. 오히려 은행 편중도가 지나친 상황에서 지주사 조직이 비대해짐에 따라 주력자회사인 은행과 지주사 간의 갈등 표출 등의 부작용이 돋보이기 십상인 구조다.
특히 은행지주사가 차지하는 총자산이 금융권 절반을 넘어서는 시기가 카운트 다운에 들어서면서 ‘폭풍’진로를 방불케 했던 전환 추세에 대한 역풍은 새 정부 출범 과정에서 얼마든지 도화선에 불이 붙을 개연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 전환 바람 불과 4년 온통 은행지주 총자산 과반시대
최근 정책금융기관 한 고위관계자는 한 해를 회고해 달라는 질문에 “가만히 보니 금융지주사가 이렇게 많아진 것이 불과 몇 년 안되더라”고 운을 뗐다. 다만 그는 “금융그룹 이름으로 광고도 하고 사회공헌 활동을 분주히 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긴 했는데 경영의 효율성이나 비은행 자회사와 은행간 시너지효과는 여전히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은행지주사 전환 바람은 2009년 본격화했다. 변화 기점을 빨리 잡아 본다 해도 2008년 9월 국민은행이 전격적으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뿐이다. 당시 국민은행으로서는 경쟁 상대 가운데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지난 2001년 4월과 9월 잇달아 지주사를 출범한 것을 발판 삼아 장기간에 걸쳐 다각화에 진전을 일구고 하나은행 마저 2005년 지주사 출범 이후 격차를 좁혀오던 터였기에 절박성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KB금융 역시 출범하면서 비은행 부문 강화 비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KB금융지주 출범은 직간접적으로 은행지주 출범의 물꼬를 여는데 기여했다.
이듬해 8월 한국스탠다드차타드금융지주가, 10월엔 산은금융지주가 각각 외국계와 특수은행으로선 처음으로 지주사로 전환했다. 2010년 8월 한국씨티금융지주에 이어 지난해 3월과 5월 BS금융지주와 DGB금융지주가 지방은행까지로 외연을 넓혔고 지난 3월 초 농협금융지주 출범이 이뤄졌다.
◇ 3할에서 5할로 성장 급진전, 효율성은 혹평 일색
시중은행 모두 지주사 체제를 갖추고 지방은행 가운데 홀로 독립체제를 유지하던 전북은행의 전환 예고에 따라 기업은행만이 순수 은행계 플레이어로 남는다. 2008년과 2009년을 건너 뛰고 한국씨티금융지주가 가세했던 2010년 말 은행계 금융그룹 총자산은 1160조 5834억원으로 금융계 전체 3074조 7000억원의 37.75%에 그쳤지만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49.46%에 이르는 1741조 724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같은 점유율에 준하는 호의적 평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민간 연구기관 한 전문가는 “은행 편중성에 대한 비판의 여지는 비단 사업구조나 자산에만 국한시킬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최근 들어 전문성을 갖추는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나 효율성에 의구심을 표하는 여론이 상당히 커진 듯한 느낌이 든다”고 주장했다.
◇ 민영화 대기 우리금융-산은금융 진로에도 영향 불가피
금융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관련 법령을 손질해 금융지주사 제도를 도입하고 산업자본 계열 지주사 전환 물꼬를 트기 위해 노력했지만 백약이 무효했던 것도 은행지주만 그득한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아울러 공적자금 회수 당위성을 안고 있는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와 산은금융지주 민영화에도 최소한 부분적인 직접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올해 재시도한 우리금융 민영화가 실패한 배경에는 일단 대표적 토종 금융그룹이어서 외국계에 넘기기 어려웠고 어림잡아도 6조원 안팎에서 경쟁 가격이 형성되는 몸값 부담이 컸다는 지적의 소리가 높다. 올 연간 시가총액 8~10조원을 오르내린 가운데 예금보험공사 지분 약 57%를 뺀 시장가격에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 가격을 고집하다가는 지분 다수를 매각해 경영권을 넘기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여전히 두텁다.
산은금융지주의 경우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 시절, 산은 민영화를 통해 20조원의 재원을 마련 온-렌딩 방식의 중소기업 대출 지원에 나서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던 동기와 사뭇 달라진 상황, 그리고 정책금융기관 재설계 가능성 등이 맞물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은행지주사 역풍이 불면 흔들리기 쉬운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 내년이면 최초 출범 그룹 등장으로부터 12년을 맞게 되지만 상품의 제조 유통역량의 차별화와 그룹 시너지를 뚜렷하게 입증한 사례가 없었던 데서 오는 근본적 약점이 더욱 쓰린 정권교체기에 서 있는 셈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