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글로벌 경제위기 이머징마켓에 기회”](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09051321312494396fnimage_01.jpg&nmt=18)
“지난 역사를 볼 때 금융부문의 문제로 야기된 경기침체는 회복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현재 금융부문의 큰 변화가 있지 않는 이상 앞으로 2~3년 내에 경기가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봅니다”
이머징마켓 출신 학자로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불혹의 나이로 최연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내 화제가 됐던 라구람 G. 라잔〈사진〉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전망이다.
라잔 교수는 지난 11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삼성증권이 주최한 ‘글로벌 인베스터스 컨퍼런스’에 참석, ‘위기, 오마바 그리고 변화’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이같이 내다봤다.
이날 라잔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경기는 앞으로 안정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U자형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위기 국면은 상대적으로 강점을 확보한 이머징마켓에서 보다 빠르게 회복세를 보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현위기 세계대공황 당시와는 달라
라잔 교수는 “지금은 사상 전례가 없는 경제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다”며 “지난 두 분기동안 세계적으로 생산량은 급감해 세계대공황 때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위기를 겪었다”고 진단했다.
중산층의 가계 소득과 이머징마켓에서의 생산량 감소가 지속됐으며, 글로벌 시장으로의 막강한 파급력은 그만큼 전례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1930년대 대공황 때와의 다른 점을 지적했다.
라잔 교수는 “지금은 경제 부양 측면에서 큰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이미 경제 침체의 속도를 차츰 줄여 나가고 세계 경제를 안정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경제위기는 그동안 겪었던 침체보다 심각하겠지만 대공황 때와는 같은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 위기는 이전 위기의 연장
라잔 교수는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미 금융섹터의 부동산 자금 할당이 잘못된 점 △신종 금융상품들이 직·간접적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재정상태에 악영향을 끼친 점 △잘못된 투자로 단기 부채가 급증한 점 △잘못된 조합의 점진적인 분열 등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머징마켓들에게는 위기 상황이 단지 ‘새로운 시작의 끝’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990년대 동아사이 외환위기, 러시아 디폴트 선언에 이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터키 등의 심각한 위기 등 과거의 위기에서부터 이번 난국 또한 야기됐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머징마켓들은 국내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있어 더 조심스러워졌다”면서 “회사, 정부, 가계가 모두 투자와 소비를 줄였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오던 순수입국의 입장인 이머징마켓의 대다수가 현재 순수출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라잔 교수는 이어 “세계 어느 한 곳에서 절약된 자금은 다른 어느 곳에서의 결손으로 흡수되어야 한다”며 “신흥 공업국의 기업들은 이러한 한 곳에서 절약된 자금을, 투자(특히 IT 부문)를 확대함으로써 흡수하고 있었다”고 관측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지속되기 어려운 것으로 판명이 났고 IT버블의 붕괴 이후 투자는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
◇ MBS 증권화 과정에서 실기
위기가 왜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국이 금융 혁신을 위해 가장 많은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점이 신용등급이 낮은 투자자들을 시장으로 유인했다”고 진단했다.
주택 모기지 대출은 부가 작업이 필요하고 신용이 불확실하며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기 때문에 국제적 투자자들을 바로 끌어들이기는 매우 어려운데, 증권화가 바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라잔 교수는 “만약 모기지가 다른 분야의 모기지와 함께 포장이 되었다면 다양화를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 패키지에 대해 가장 위험한 요구들은 이 패키지가 이를 평가하고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사람에게 판매돼야 하고 가장 안전한 AAA등급은 국제적 투자자들이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종 금융상품을 만들고 증권화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상품을 차입하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기간 동안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의무에 대한 책임감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 美 침체 탈피에는 시간 걸릴 듯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하나는 그림자 금융시스템-금융 시스템을 서포트했던 증권화 과정과 사모투자가 줄어들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간의 대출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그는 “대출 수요 감소 뿐만 아니라 신용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장기적으로 자금을 묶어두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상황은 당분간 지속되면서 불확실성으로 남을 것이란 전망이다. 그는 산업적인 측면의 재고량 감소는 조만간 끝나겠지만 주택시장의 안정 없이는 저축률 상승과 가계 자산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또 고용시장의 불안은 내년에 정점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다.
특히 지금은 미국보다 유럽의 상황이 더 좋지 않다고 진단했다. 아일랜드, 스페인, 영국의 최악의 침체 상태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럽의 경우 정책입안자들이 나라별로 각각 다른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일치된 수준의 경기부양책을 마련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관측이다.
그는 이어 일본에 대해서도 “금융 위기의 물결 속에 상대적으로 그 여파가 크지 않은 국가로 보이지만 일본 역시 독일과 마찬가지로 해외 수요에 의존해 왔다는 점에서 정부의 재정 상태가 좋은 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성장 지속성과 관련해서는 “정말 필요한 것은 중국이 국내 수요를 늘리는 것”이며 “투자들이 어디로 쓰이게 될 지가 불확실하다”고 역설했다. 투자이익이 줄면서 부실대출이 늘어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디자인·마케팅·서비스 주력해야
미국은 이에 따라 연준 그림자금융시스템으로 줄어든 신용을 대체해야 하며, 부실자산 청산과 재정이 악화된 은행의 회생, 가계 부문의 안정, 적절한 경기부양책이 실행돼야 한다고 꼽았다.
라잔 교수는 시간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 미국 경제가 살아난다고 가정을 했을 때, 세계경제는 U자형 회복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경기 안정화 단계의 시작점에 있고, 2분기에 빠른 회복이 있겠지만 3, 4분기로 갈수록 느린 회복 속도를 띌 것이라는 전망이다.
결국 라잔 교수는 “이번 경제 위기는 가능성을 지닌 이머징마켓 쪽으로 세계의 경제 파워가 이동하도록 가속할 것”이라며 “아시아 시장이, 수출 주도형의 서양에 집중된 생산성 증가에서 인접 국가간 무역과 국내 수요의 성장으로 초점이 옮겨질 것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즉, 세계가 아시아에 기대하는 것은 전자 산업뿐만 아니라 변호사, 금융업자, 마케팅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통해 긍정적인 전망에서부터 부정적인 전망까지 모두 이익을 보는 리밸런싱 효과를 실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등 이머징마켓의 기업들은 앞으로 수출 위주의 자동차, 전자제품 제조를 뛰어넘아 디자인, 마케팅, 서비스업에 집중하고 내수 소비자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정부 정책 유효
최근 국내 증시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위험 회피를 위해 지난해 신흥시장을 떠났던 외국인투자자가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마켓에 돌아오고 있는 것”이라며 “이들 시장에 대한 믿음이 배경”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녹색 뉴딜정책 등에 대해서는 “경기부양책은 임시 방편이 돼서는 안 된다”며 “장기적으로 보고 인프라나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창의적인 인재가 몰려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미국 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대해서는 “정부가 파악한 손실만큼 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면 정부가 밀어 주겠다는 것이다. 미국 재무부가 나서 ‘이게 바닥’이라는 정보를 주는 모험을 한 것이다. 문제는 은행의 손실이 정부 계산보다 큰 경우다. 자본 확충 뒤에도 은행의 2차 손실이 발견된다면 정부는 신뢰를 잃게 된다. 이 경우 처음보다 더 나쁠 수 있다”고 밝혔다.
▶▶ He is…
〈 경 력 〉
- 1963년 3월 인도 보팔서 출생
- 1985년 델리 인도공과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 1987년 아흐메다바드 인도경영대학 MBA 수료
- 1991년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 경영학 박사, MIT, 노스웨스턴대, 스웨덴 스톡홀롬경제대학 객원교수, 만모한 싱 인도 전 총리 경제자문역
- 2003년 9월~2007년 1월 40세 최연소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경제자문 및 조사국장 역임)
- 2003년 美 금융협회 ‘Fischer Black상’ 수상
- 2005년 논문 ‘Has Financial Development Made the World Riskier’ 발표
- 2007년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
〈 주요저서 〉
- 2004년 ‘시장경제의 미래(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 뤼기 징갈르스(Luigi Zingales)교수와 공저
- 금융경제학 저널 등 다수 출간
배동호 기자 dhb@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