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업의 신용위험이 확대되는 시기
2008년 하반기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국 금융시장에도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 금융시장의 주요 지표인 이자율, 주가, 환율의 변동성이 확대되었으며 국내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위기가 촉발되었다. 금융시장의 위기는 국내 실물경제에도 그대로 파급되어 국내 기업들은 매출 감소, 수익성 및 현금흐름 악화, 유동성 경색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9년 들어 국내 금융시장은 안정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거듭되는 기준금리 인하로 국고채(5년) 금리는 4%를 하회하고 있으며, 신용 스프레드도 최고점 대비해서는 상당 폭 낮아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주가도 다소 회복되었으며, 환율도 불안정성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달러당 1,500원대까지 올라갔던 2008년말에 비해서는 크게 안정된 상태이다.
하지만, 실물경제의 어려움은 2008년에 비해 2009년에 보다 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실물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기업의 수익성과 현금흐름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기업의 수익성과 현금흐름 저하는 신용위험의 상승을 의미한다.
신용평가사는 신용위험을 일정한 기호를 이용한 신용등급으로 표현하여 금융시장 참가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회사이다. 적기에 신용등급의 적정성을 평가하여 시장참가자에게 제공하여야 하는 것이 신용평가사의 책임이다.
그러나 부도발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용등급의 과도한 하향조정으로 오히려 기업의 부도위험을 증폭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으면서도, 적기에 시장참가자에게 신용상태의 변화를 알리는 어찌 보면 상충되는 결정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 너무 늦어도 안되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선제적인 신용등급 하향조정으로 기업과 시장이 안고 있는 위험을 과도하게 증폭시켜서도 안 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예측불허의 국내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의 위기 상황은 국내 신용평가사로서는 신용평가의 신뢰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10년 전 발생하였던 외환위기는 국내 금융시장 구성원으로 하여금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일깨워 우리나라 신용평가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미국에서도 1930년에 발생한 대공황은 신용평가의 존재 의의와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 바 있다.
◇ 투명성, 책임성, 공정성에 대한 요구수준 상승
Moody’s, S&P, Fitch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모기지 관련 금융상품에 대해서 과도하게 낙관적인 전망에 근거한 신용등급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신용도에 문제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지체함으로써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SEC와 EU는 그동안 다소 느슨했던 신용평가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신용평가업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투자자의 이해를 보다 잘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신용평가업에 대한 감독 강화 움직임은 국내 신용평가업 감독 체계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감독 당국은 나름대로 그 동안의 감독 방식을 되돌아보면서 전세계적인 조류에 맞춰 국내 감독체계를 보완하려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자체적으로 내부 규정을 가다듬는 과정에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에 대한 금융시장의 신뢰가 상당 부분 훼손되었으며, 신용평가사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장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적정한 신용등급을 부여하고, 투명한 평가 절차를 견지함으로써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느냐의 여부가 신용평가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할 수 있다.
◇ 평가영역의 확대로 사업기회는 증가
현재 한국내에서의 신용평가 대상은 회사채, CP, ABS 등의 유가증권과 보험금지급능력, Issure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 연간 신용평가시장 규모가 600억원 내외에 그치고 있다. 반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신용파생상품, 펀드, 지방채, 국채 등은 물론 시장의 필요에 의해서 신용위험이 있는 금융상품이면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어 연간 신용평가 시장규모가 수조원 대에 이르고 있다.
2009년 2월 ‘자본시장및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의 시행에 맞춰 신용평가의 대상도 현재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 ABS 등에 더하여 펀드, Loan, 차주(Issuer) 및 기타 금융상품 등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법률상 평가영역의 확대가 자동적으로 국내 신용평가업계의 업무 영역 확장으로 연결된다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법률적인 여건 마련은 국내 평가시장 확대의 필요조건일 뿐이며, 국내 금융시장 참가자의 신용평가에 대한 인식 전환 및 시장 여건의 성숙과 함께 당사자인 국내 신용평가사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법률상 평가영역 확대에 따른 국내 평가시장의 양적/질적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 국제화 수준 제고에 힘쓸 때
전 세계 신용평가 시장에서 Moody’s, S&P, Fitch가 차지하는 위상은 여타 신용평가사에 비해 월등한 수준이다. 매출 측면에서도 3사는 전체 시장규모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으며, 지명도 측면에서도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우위를 점하여 왔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우위의 배경을 이들 3개 신용평가사가 평가인력, 평가실적, 방법론 등에서 타 신용평가사에 비해 뛰어나다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 평가사의 주 활동 무대인 미국, 영국의 자본시장이 전 세계 자본시장을 주도하여 왔다는 사실에서 찾고 있다.
신용평가사는 금융시장, 그 중에서도 자본시장의 인프라이기 때문에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의 신용평가사가 세계 신용평가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에 조금씩 변화가 오는 조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가 세계적인 금융위기 나아가 실물경제의 침체를 가져온 이후, 더 이상 미국과 영국의 자본시장이 세계 자본시장을 좌우하지 못하고 있으며, 영미계 신용평가사의 영향력도 동반 저하될 것으로 판단된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 자본시장과 한국의 신용평가사가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다가 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 국내 신용평가사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까운 일본의 경험을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신정평가와 2000년부터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 최대 신용평가사 R&I는 10년 이전부터 국제화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2009년 1월 현재 미국, EU, 홍콩, 태국, 말레이지아에서 ECAI 내지 신용평가업 허가를 취득한 상황으로 명실상부한 국제적 신용평가사의 반열에 올라 있다.
아직까지 한신정평가의 국제화 수준은 일천하다고 할 수 있으나, 한국의 유일한 국적 신용평가사로서 국제적 신용평가사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두르지도 않으면서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한국의 신용평가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날도 멀지 않은 장래에 올 것이라고 믿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