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조조정 10년을 되돌아보나
구조조정 10년 각고의 세월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체화됐고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려는 우리사회의 노력은 너무 부족해 보인다.
초반 3년까지 금융회사와 민간기업 등 숱한 회사들이 문을 닫았고 문 닫지 않은 금융사와 민간기업조차 감원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었다. 10년 동안 구조조정 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만해진것도 아닌데 너무나 뼈 아팠던 기억을 잊어버리기 전에 실패와 파탄직전에 몰렸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다시 아로새겨야 할 일이다.
때 마침 예금보험공사가 10년 구조조정사를 기록해 놓은 책을 냈고 금융연구원과 한미재무학회 그리고 한미경제학회 공동 심포지엄에서는 구조조정기를 거치며 살아 남은 지방은행이지만 근본 성장동력이 아직은 부족하고 M&A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는 견해가 나왔다.
한국금융신문은 이번 특집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금융구조조정 10년째를 맞아 금융산업의 실상을 다시 진단하는 기회를 꾸준히 펼칠 것을 약속 드린다.
편집자주
‘조상제한서……’대한민국 금융계를 주름 잡던 대표적 은행들을 이렇게 불렀던 게 까마득한 옛일인 듯하고 요즘 젊은 네티즌들이라면 “그게 무슨 말이삼?”하고 반문하는 게 당연할 법한 까닭이 뭘까.
예금보험공사는 30일 “사라진 이름 살아난 이름-금융구조조정 10년의 기억들”(다산출판사 )을 펴냈다.
지난해 10주년을 맞아 올 3월 펴냈던 예보 10년사를 뼈대로 삼아 거기다 살을 붙이고 옷 입히고 화장을 하는 등 새 단장한 역작이다.
아시아 외환위기에 전염되면서 낯설고 두려웠던 IMF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11년째를 맞아 지난 10년 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발자취를 망라한 것이다.
책을 펴면 정말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해, 참상이 막 발발했던 1997년 당시로 끌 려 들어가고 만다.
은행 돈 못쓰면 바보 소리 듣던 시절 은행이 망할 리 없던 신화가 전설 혹은 민담보다 못한 수준으로 엄동설한 길거리에 나동그라졌던 기억을 되살린다.
적자와 빚이 눈덩이로 불어나도 괜찮았고 감독기능은 마비돼 있던 시절을 새삼 반추하는 이유는 뻔하다.
어느 시인의 싯귀마냥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는 심리이자 무조건반사적 습관. 오래고 깊은 상흔을 돌아보는 이유가 왜인지는 2장 마지막 절이 웅변해 준다.
‘지금도 금융구조조정은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취업 시즌이 다가오고 금융계에 관심이 고조될 때마다 인구에 회자되던 ‘조상제한서’는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등 선발 5대 시중은행의 위상을 집약했던 말 아닌가.
그런데 이들 은행 가운데 온전히 이름을 살리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는사실을 상기시킨다. 상업 한일 두 은행은 한빛은행을 거쳐 우리은행으로 녹아들었고 조흥은행과 서울은행은 각각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에 합병되면서 존속법인으로 역사적 흔적을 남겼고 제일은행은 초국적 금융자본인 SCB에 매각돼 이름만 간신히 남은 상태다.
줄줄이 문 닫았던 종금업계, 하루 아침에 고려증권과 동서증권이 망해버렸던 충격의 나날들을 담담하게 그리고 또한 뼈아픈 교훈 삼으라는 고언도 갈피마다 녹아 있다.
특히 3장에서는 부실금융회사를 어떻게 가려내는지, 가려낸 뒤 어떤 방법으로 정리하는지를 알렸고 4장에선 각별히 따로 정리하고픈 구조조정사례로 제일 서울 조흥 3개은행과 우리금융지주 말고도 한투증권과 대투증권, 현투증권, 대한생명, 서울보증보험 등 지금 금융계에서 나름대로 뜻 있는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금융사들이 구조조정기구들의 진두지휘 아래 어떻게 다시 태어났던가도 살피고 있다.
조흥은행 매각 당시 서버러스가 아니라 신한지주를 택했던 이유도 잘 드러나 있다. 우리금융이 출범하기까지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도 생생하다. 한빛은행과 평화은행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나 금융감독위원회가 감자명령에 대해선 “감자를 않겠다”는 정부를 믿고 투자했던 소액주주나 외국인들의 피해를 무릅쓰고 해명과 사과를 해야 했던 기록 역시 다시 돌아볼만 하다.
이 기록물 편찬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기록을 더듬다 보니 뚜렷하게 파생된 큰 울림도 느껴진다.
지금도 힘깨나 발휘하는 기관으로 비춰지는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은 역설적이게도 외환위기 때문에 통합감독기구와 신설 장관급 정부조직으로 태어났고 당시 설립 2년도 채 안됐던 예금보험공사는 구조조정의 중책을 띤 위기관리 기관으로 투입돼야 했던 아이러니를 재음미 하게 한다.
지난해 예보 10년 사사 정리차원에서 발족했던 기획조정부의 ‘사례집 발간 TF팀’은 1년여 동안 사사정리와 더불어 구조조정 10년의 족적을 정확히 되살리기 위해 여러 관련기관의 자료를 끌어모으랴 분석하랴 최종적으로 해당 부서의 검증을 거치느라 땀흘렸다.
“역사적 사실과 부합해야 하는 일이니 만큼 어려움은 당연했다”는 예보 관계자는 “일반인들도 큰 어려움 없이 읽도록 애썼다”고 밝혔다.
예보 최장봉 사장은 발간사로 이렇게 적고 있다. “금융시스템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복원할 수 있었고 금융산업 경쟁력이 향상될 수 있었던 것은 정부나 예보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했으며 정부 정책을 믿고 불편함을 묵묵히 견뎌 주신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간의 고통과 시련에서 교훈만큼은 제대로 건지자는 노력의 산물이기에 이번 기록문헌은 값지다.
<외환위기 초반 사라진 이름들(연표)>
<금융구조조정 추진 현황>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