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스템 표준화 작업은 금융기관별 시스템 개통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금융감독원이 중심이 돼 일부 금융기관 실무진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관련업계가 일부 기관이 중심이 된 가이드라인을 수용하겠다는 방침만 밝혔을 뿐 각 기관의 의견조차 모두 수렴되지 못하고 있다.
관련업계는 표준안이 자사 시스템에 반영된 스펙과 비슷해 재구축 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의견 수렴 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퇴직연금시스템 표준화는 삼성, 교보, 대한생명 등 대형 생명보험사와 국민은행 등 중심이 돼 작업을 하고 있다.
◇ 초기 시스템 구축 시급히 진행되면서 표준화 논의 무산 = 4개 기관 외에 이번 표준화 작업에 참여하지 않고 진행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금융기관 중 일부는 의견 수렴이 되지 않은 상태의 현 시점에서 향후 스펙이 확정된 뒤의 시스템 재구축 가능성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도 표준화 작업이 늦어지고 있지만 향후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표준안이 업종별, 기관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올해 말까지 확정될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당초 표준화가 진행됐어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시스템 구축 초기 표준화에 대한 논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표준화에 대한 논의는 시스템 구축 초기인 2004년 이미 거론됐다. 금융결제원이 주도해 퇴직연금 표준화 워킹그룹을 구성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스템 구축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업종별, 개별 기관별로 시스템 구축 전략이 진행되면서 무산됐다.
◇ 올해말까지 표준화 완료 에정 = 표준화 작업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된 것은 지난해 시스템 개통이 시작될 무렵이다. 퇴직연금시스템이 개통되고 다양한 상품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기관 간 연계가 필요하게 되자 금융권에서 이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다.
금감원 주도 속에 표준 작업이 시작됐으며 대형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표준화 작업팀이 구성됐다. 그러나 업계 자율에 맡긴다는 금감원 방침 속에 표준화 작업에 대한 금융기관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금감원은 올해 말까지 표준화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지난 1사분기 4개 기관이 주도한 표준화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세부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세부안에 대해 국민은행 등 참여 기관은 연계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현재 4개 기관의 시스템을 연동하기 위한 시스템 개발 작업이 일부 진행돼 테스트를 하고 있으며 올해 말 타사 시스템에 표준안이 수용되면 이에 대한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금융기관은 중복투자에 대한 부담감 속에 의견수렴 과정이 없었다는 데 대해 은근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2주에 한번씩 회의가 진행되고 있고 이 자리에서 전문 표준안 일부가 공개됐지만 이에 대한 의견 수렴은 세부안이 나온 이후 진행되게 될 것”이라며 “아직 여기에 의견을 내놓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올해 말까지 의견 수렴을 완료하고 표준안이 확정돼야 하지만 관련업계에 불만이 있는 상황에서 원활히 진행될지 여부도 알 수 없다. 금감원은 표준화 작업은 업계 자율에 맡길 방침이지만 일부 금융기관은 강력한 표준화 전문 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 ‘시스템 중복투자 가능성 있다’ = 표준화 작업에 대해 거론되고 있는 문제점은 우선 중복투자 가능성이다. 단독 개발을 진행한 일부 금융기관 등은 표준안에 대한 대책을 이미 관련 SI업체와 협의해 놓고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재구축도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아직 대책이 마련이 돼 있지 못한 금융기관은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아직 퇴직연금 시장에서 충분한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재구축 부담까지 안게 됐다는 것.
아직까지는 세부안이 나오지 않았지만 관련업계는 많게는 표준안 마련 뒤 30%까지 추가 비용 부담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업체 관계자는 “퇴직연금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표준화가 진행됐어야 했지만 이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중복투자 요소가 발생하게 됐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B업체 관계자도 “초기 100억원 가까운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율이 1%도 안돼 구축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고 있다”며 추가 비용 부담을 우려했다.
물론 업계에서도 은행, 보험, 증권사별로 사용하는 용어 등이 모두 달라 이에 대한 표준화 작업이 쉽지 않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이미 퇴직연금이 시행된 지 오랜 기간이 지난 일본, 미국 등에서도 겪었던 시행착오란 것. 그러나 늦게 제도가 도입된 만큼 타 국가의 시행착오가 초기에 반영됐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표준화를 위한 전담기구 마련 필요성에 대한 의견도 나오고 있다. 표준안 마련이 장시간이 걸리는 데 대한 대응책으로 업계 자율보다는 대표 기관이 이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업종별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자 하는 기관간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는 해석이다.
송주영 기자 jyso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