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틸 파트너즈, 아이칸 파트너스, 하이리버 등 소위 아이칸 연합군은 지분을 6% 이상 확보한 후 사외이사 3인 임명, 부동산 등 자산매각 그리고 자회사인 인삼공사 상장 등 단기적 주가상승을 노린 요구를 해왔고 현 경영진이 이를 거부하자 다음 단계로 2조원의 자금을 동원하여 주식을 6만원에 공개매수(tender offer)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발표 당일 주가는 57000원까지 뛰어올랐다. 소위 베어허그, 즉 현 경영진에 대한 공개적 압박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아직 금감원에 공개매수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견해까지 다양한 의견이 표출 되고 있다. 실제로 아이칸은 2003년 일본에서 유시로 화학 및 섬유회사인 소토에 대해 공개매수를 시도하였고 그 자체는 실패했지만 주가를 끌어올림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보고 빠져 나온 적이 있다.
포이즌 필 등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방어책을 고안해낸 월스트리트의 전문가 립튼은 아이칸에 대해 황제주주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기업지분을 취득한 후 지나치게 단기적인 주가상승의 관점에서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점에서 황제주주라는 칭호를 붙인 것이다.
아이칸같은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은 지나치게 단기적인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함으로서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이 악화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애써 오랫동안 보유한 자산을 일시에 정리하도록 한다든가, 미래 투자를 위한 사내유보를 줄이고 배당을 급격하게 늘이게 하는 등 단기에 주가를 상승시킬 만한 재료를 창출하여 주가를 끌어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팔고 떠나고 주가는 다시 하락하는 악순환이 나타나는 등 역기능이 시장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자본 중에도 매우 부정적인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최근 당국의 제재대상이 된 헤르메스의 경우 삼성물산의 지분을 취득한 후 경영참여를 하겠다고 공시함으로서 적대적 M&A 로 비추어지게 만들고 이에 반응하여 주가가 오르자 이를 즉시 팔아버렸다. 재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한국시장에 들어와 결국 주가를 올린 후 팔고 떠난 소버린의 경우 지분보유기업의 우선주를 매수한 후 이를 해당기업에 비싼 가격에 되사줄 것을 요구하여 차익을 챙기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경우가 꽤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해외 언론의 태도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파이낸셜 타임즈였다. 5% 룰을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발표가 난후 이 언론은 한국의 태도가 정신분열적(schizophrenic)이라고 공격을 한 바 있다.
소버린의 경우, 지분이 5% 넘으면 결제일 후 5일 이내에 공시를 하라는 매우 부실한 공시조항 덕분에 (주) SK주식에 대한 지분이 5%를 넘은 후 무려 7일이 지나서 공시를 한 바 있다. 취득일후 2일이 지나야 결제를 하므로 일단 이틀을 번 셈이고 그로부터 5일 이내에 공시를 하라고 하니 도합 7일을 번 셈이다.
그런데 공시가 나온 시점에서는 이미 지분이 10%가 넘어버린 상태였다. 미국의 경우 5%가 넘고 나면 일정기간동안은 주식을 추가매집 못하도록 해서 공격을 당하는 기업이 방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5%룰의 취지가 공격대상기업에 대해 방어기회를 주자는 것이므로 이는 매우 합리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추가지분매입 금지기간 조항이 없었다.
결국 “결제일후 5일이내 공시” 조항과 추가매입금지조항이 둘 다 없다보니 일이 매우 쉬웠다. 지분이 이미 5%가 넘었지만 공시가 되지 않은 일주일동안이 고비였다. 외국의 투기적 펀드가 해당 주식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팔지 않았거나 최소한 가격이 상당히 오른 후에야 주식을 팔았을 투자자들이 전혀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열심히 주식을 팔았던 것이다. 결국 소버린은 이 덕분에 1900여만주의 주식을 단기간에 평균매입가격 9200원정도에 매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국제적인 기준에 가깝게 5%룰을 강화하겠다고 하자 이를 정신분열적이라고 비난했던 것은 지금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팔은 안으로 굽고 가재는 게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다. 유사시에 해외언론은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 아니다. 이런 것을 보면 자본에 국적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된다. 미국같은 국가도 해외자본에 의한 자국기업의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외국인투자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있다.
바로 종합무역법내의 엑손 플로리오 조항이다. 국가안보라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개념을 가지고 상당히 많은 업종에 적용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혹자는 부결된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들어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하지만 이 조항이 부담이 되어 아예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유럽국가들도 차등의결권 황금주 등 많은 수단을 가지고 자국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차단하도록 조치해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화시대에도 자국기업의 경영권 보호라는 명제는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된 관광자원이나 지하자원 하나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가 세계 11위까지 온 것은 다 이들 기업덕분이다. 애써 키운 기업들이 외국자본의 손에 쉽게 넘어가거나 주가조작에 가까운 단기 전략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조치들이 고안되고 도입되어야 할 시점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