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겉도는 서민지원정책
- 자구노력이 절실하다
서민금융지원의 공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까지 부실위험을 이유로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받는 서민들은 어쩔수 없이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서민금융 지원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한 지원책들은 겉돌 수밖에 없다.
이에 본지는 정부정책의 실효성과 외국 서민금융기관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편집자>
내수경기 부진 속에서 경제성장을 지탱해 온 수출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올해와 내년의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5%달성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이에 정부는 내년도 재정확대 방안을 발표했고 한국은행은 금리를 추가로 인하했다. 그러나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정책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한 금융전문가는 “내수진작을 위해 한국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인하한 것은 실로 과감한 판단이다”라고 평가하면서도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수준에 이르고 있고 소비자들의 기대심리가 낮은 수준에서 추가적인 금리인하가 소비지출 활성화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의 말처럼 한국경제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서민금융의 부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부의 모든 경기부양책들이 제 역할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IMF이후 시행해 온 서민금융 활성화 방안 대부분이 은행중심으로 맞춰져 실질적인 서민금융기관들은 아직도 부실의 늪을 헤메고 있다.
이에 제2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정책지원이 겉돌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서민금융기관들의 순기능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지원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 은행만 배불러
IMF이후 한국경제는 건국이래 가장 큰 위기를 겪었다. 국내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주었던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도 현금 유동성위기로 줄줄이 도산했고 그 파장은 금융계 전체로 퍼졌다.
정부는 이렇게 금융시장이 고사직전까지 몰리자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회생책을 내놓았다.
지난 9월말 현재까지 금융시장에 투입된 공적자금 규모는 총 108조4109억원으로 이중 은행이 46조8억원으로 가장 컸고 종금사, 보험사, 저축은행 순으로 투입됐다.〈표 참조〉
이러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은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며 고사직전의 금융시장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추진된 구조조정은 국내 금융시장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은행은 IMF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고 그 결과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반면 저축은행, 신협 등 지역밀착형 경영으로 나름대로 금융시장의 한 축을 지탱해온 서민금융기관들은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은행의 서민금융 공략정책으로 인해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그래프 참조〉
서민금융기관들은 이러한 작금의 실태에 대해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투입이 구조조정에 쓰이기 보단 은행의 배만 불리는데 사용됐고 그결과 덩치만 커졌다고 비판한다. 또한 정부도 이를 제재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고 만만한 서민금융기관들만 압박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한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공적자금 상환율은 서민금융기관들이 압도적으로 높은 반면 모든 금융정책 혜택은 은행으로 돌아간다”며 “일례로 예보료 산정도 은행에 비해 공적자금 상환율이 높은 서민금융기관들이 턱없이 높은 보험료율을 적용받고 있는데 이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 내실화보다 살길이 더 급하다
올초 금감위와 재경부는 서민·중산층 대책 추진 상황 점검회의에서 더 이상의 서민금융 부실을 차단하기 위해 서민금융 내실화 방침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으로는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 서민주택금융 활성화, 서민금융기관 건전성 제고 등을 담고 있다.
특히 서민주택금융 활성화를 위해 모기지론 상품 판매를 시행했다. 모기지론의 경우 이미 선진국에선 서민들의 주택마련 수단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고, 서민금융기관들도 모기지론을 주요 수수료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국내 모기지론의 경우 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는 아직까지 주택금융공사와의 협약체결이 이뤄지지 않아 판매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민금융기관 관계자는 “아직 국내 서민금융기관들의 여건상 도입에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대표적인 서민지원 상품을 서민금융기관에서 취급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정부도 서민금융기관들이 모기지론 판매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서민금융기관 건전성 제고 방침이다. IMF이후 각종 불법행위의 복마전으로 일컬어지는 서민금융기관의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것이 서민금융기관 활성화를 배제한 상태에서 시행되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가뜩이나 예전의 부실로 인해 힘겨운 경영을 이어가는 마당에 감독기준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은 자체적으로 살아남을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셈이라는 것이 서민금융기관들의 주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도 “현재 불법대출 및 각종 임직원들의 횡령사고가 빈번한 것은 더 이상 경영이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갈수록 경영이 어려워지니까 자리보전이나 한몫챙겨서 나가겠다는 풍조가 확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한탕주의’가 만연한 상황에서 감독기준 강화정책이 부실차단보다는 부실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금융전문가들은 충고한다.
한 전문가는 “이전의 사례를 비춰보더라도 기준강화만으로는 부실을 사전에 차단하기 힘들다”며 “살길을 마련해주고 내실화를 유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지난 9월 영업정지처분을 받은 한마음저축은행의 처리방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한마음저축은행의 처리를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향후에 서민금융기관 정책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에서는 예보출자나 브릿지뱅크 설립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아직까지 처리방안을 단정짓기에는 시기상조이다.
한마음저축은행 이형구 대표관리인은 “현 시점에서 처리방안에 대해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향후 재산실사결과를 토대로 최소비용 등의 원칙에 입각해서 적절한 처리방안이 검토될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감독강화보단 자생기회 마련해 줘야
영업규제 네거티브로의 전환 시급
■선진 서민금융에서 배우자
서민금융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도 한차례씩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차이점은 정부의 지원과 자구노력으로 이들 나라의 서민금융기관들이 위기를 극복한 반면 국내 서민금융기관들은 아직도 위기상황하에 있다는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서민금융기관으로 뿌리내린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영업제한이 은행권과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미국의 저축기관의 경우 상업은행들과 동일인 대출한도, 예외조항 적용 최고한도가 거의 비슷하며, 양도성예금증서(CD), 화폐시장증서(MMC), 단기금융시장 예금계정(MMDA) 취급이 가능하다.
특히 미국정부는 서민금융활성화를 위해 서민들에게 저리자금을 직접 지원하기 보다는 서민금융기관을 지원하면서 서민의 금융비용 부담을 낮추고 있다.
일본의 저축은행격인 ‘제2지방은행’도 제도나 정책 및 영업면에서 지방은행과 거의 유사한 상태이다. 해외지점을 통한 국제업무를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거의 똑같다고 할수 있다.
독일의 저축은행들도 자금운용면에서 공공의 목적에 따라 지역내에서 자산을 운용토록 하고 있지만 지역외나 해외에서의 투자제약은 없다.
이들 선진저축은행들은 규제나 영업 모든 측면에서 은행과 똑같은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는 국내 서민금융기관들이 특히 저축은행의 감독기준이 은행수준으로 강화되면서도 영업에서는 제한을 받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표 참조〉
한 저축은행관계자는 “정부에서 금융시장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기준에 미달되면 퇴출시키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우선 서민금융기관들의 영업제한을 풀어줘야 한다”며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어떻게 기준을 맞출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상환기금 자금지원 총괄표>
(2004. 9. 30 현재, 단위 : 억원)
주 : 1) ( )는 금융기관 수 중복지원(예, 5개 인수은행은 출자·출연을 동시에 지원받음)
된 금융기관은 1개로 산정
2) 통합 예보 출범이전 지원된 16,069억원을 포함한 합계임.
<금융기관간 업무취급범위 비교>
(△법적으론 가능)
안영훈 기자 anpress@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