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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도입 10년을 평가한다

박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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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3-08-09 18:49

실명법 핵심 비밀보장원칙 훼손 심각

거래정보 요구자 정보 사후관리 허술



오는 8월13일로 국내에 금융실명제가 도입된지 10년이 된다. 지난 1993년 8월12일 정부는 투명한 금융거래의 정착과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금융실명제도의 도입을 전격적으로 선언했고 8월13일부터 새로 바뀐 실명거래법에 따라 금융시스템이 전면 개편됐다.

10년이 지난 현재 차명, 가명계좌에 따른 금융거래는 자취를 감추는 등 금융시장의 투명성이 향상되고 불법 자금거래가 상당 부분 축소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금융실명제 및 실명법의 핵심인 금융거래의 비밀 보장 원칙과 이에 따른 고객들의 프라이버시는 훼손되고 있어서 향후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와 각종 산하 단체들이 각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개인 고객의 금융거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실명법상 규제 내용이 허술해 관리의 허술함마저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장영자·이철희 사건’ 도입 계기

금융실명제는 금융기관과 거래를 함에 있어서 실지명의에 의한 금융거래를 실시하고 그 비밀을 보장하여 금융거래의 정상화를 기하기 위한 제도이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에 의거해 1993년 8월 12일 이후 모든 금융거래에 도입됐다.

1982년 ‘장영자·이철희 사건’이라는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한 이후 정부는 사태의 해결을 위한 긴급처방으로 1982년에 ‘7·3 조치’를 발표, 이 조치의 일부로 1983년 7월 1일부터 모든 금융자산에 대해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그리고 1993년 8월 12일 김영삼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금융실명제가 시작됐다.



■ 금융거래 비밀보장 원칙 ‘실종’

금융실명제에 따라 금융기관과의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서 가명(假名)이나 차명(借名)등이 아닌 실명에 의해 금융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이 법률은 제4조 1항에 ‘금융기관 종사자는 명의인의 서면 요구나 동의 없이는 그 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영장을 발부받아 자료제공을 요청하는 경우나 ‘계좌추적권’이 제한적으로 부여된 기관에 의한 조사에는 이 규정에 예외가 있으며, 시행령에 의해 금융기관은 금융거래 정보를 국가기관에 제공할 경우 이 사실을 반드시 고객에게 알리도록 했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비밀보장의 원칙은 차츰 의미를 잃고 있는 상황이다. 즉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은 실명거래와 비밀보장이 입법의 근본 취지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에 의해 금융계좌가 광범위하고 과다하게 추적, 조사되고 있다. 더욱이 제공된 금융정보의 사후관리가 허술하게 운용돼 비밀보장제도가 훼손ㆍ변질되고 있으며, 국민의 사생활과 인권 침해가 심히 우려된다는 것이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1년 7월부터 2002년 6월까지 1년 사이에 15개 국내 은행이 정보 제공 사실을 명의인에게 통보한 건수는 312만여건에 달한 것을 나타났다. 실제로 정보 제공 사실을 통지하지 않은 건수 등을 합하면 실제 금융거래 정보 건수는 2배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더 큰 문제는 금융거래 정보의 제공 및 이용에 있어서 형평성이 어긋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금융실명법은 금융기관이 금융거래정보를 제공한 경우 이를 기록 관리하도록 하는 등 금융거래정보의 비밀보장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반해 금융거래정보요구자의 경우에는 그 요구형식만을 정하고 있을 뿐 금융거래정보를 접수하는 절차, 접수자 및 취급자 지정, 엄격한 기록 보관 등에 관한 규정이 미비하다.



■ 느슨한 법적용…정보관리

허술해져

이러한 문제점은 개정을 거듭하며 보완되고 있으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특정 기관장이 금융기관에 감독, 검사의 명목으로 거래정보 등을 제공하는 경우에 있어서 금융기관의 통보비용 및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며 기존정책을 유지하는 등 개선의 여지는 곳곳에 남아 있다.

그리고 거래정보등의 제공사실 통보의무를 위반한 금융기관의 임직원을 형벌에 처하도록 하는 것은 실명확인의무를 위반한 금융기관의 임직원에 대해 과태료가 부과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례의 원칙상 과도한 벌칙 적용이라며 개정을 미루고 있다.

한편 거래정보 등의 기록, 보관 위반자에 대한 형벌은 지나치다며 과태료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정보 요구 및 공개에 대한 문서 보관기간을 최장 7년으로 연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금융기관에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개정을 미루고 있다.

결국 금융기관의 편의 보장과 법 개정에 따른 유관 기관의 불편 증대라는 이유로 고객 보호는 뒷전에 밀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통보유예기간에 대해서는 오히려 느슨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회 재경위는 거래 정보 등의 요구자로부터의 통보유예 요청과 관련해 통보유예기간을 기존의 6개월에서 최장 3월로 축소하고 방식도 연장에서 1회에 국한되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검토 의견은 부정적이다. 불공정거래조사, 세무조사 등의 효율성 등을 제약할 우려가 있으므로 세무조사 등의 적정 실소요기간을 토대로 통보유예기간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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