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만 해도 밑바닥을 맴돌던 국내 주식시장이 최근 한 두달 동안 외국인의 순매수행진에 힘입어 거래량도 늘고 주가도 700선을 넘는 등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이쯤 되면 대표적 시황산업인 증권업계는 넘쳐나는 수수료 수익으로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정상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시장은 활발한 것 같은데 어떤 증권사는 파업으로, 어떤 증권사는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식거래가 활발해지고 있으니 증권사들의 수수료 수입도 많이 늘었겠다 싶은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는 국내 HTS 시스템은 증권사들의 수수료 수준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됐고, 갈수록 늘어나는 HTS 업그레이드 유지 비용은 부담스런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국내 증권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종합자산관리’가 대두됐고, 너나 할 것없이 이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이 당장 돈이 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에는 당사자인 증권사들조차 고개를 가로젓는다. 지난 4월부터 벌써 시행됐어야 할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포괄 주문방식 등 업계간의 이해 갈등으로 더 이상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돼 본격적으로 자산관리업무가 시행된다고 해도 전망은 그리 밝을 것 같지 않다. 고객이 믿고 맡길 수 있을만한 믿음을 줄 수 있어야 가능한 게 자산관리업무인데, 증권업계는 국내 금융업종 중에서 가장 신뢰를 받지 못하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향후 직접금융시장의 전환기를 이끌 퇴직연금제 도입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노동부가 마련한 실무안에 따르면 퇴직연금 취급 사업자에 증권회사는 제외돼 있다. 근로자의 소중한 퇴직금을 안전하게 맡기기엔 왠지 증권사는 미덥지 못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러한 국내 증권산업 실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레몬(lemon)’이 적당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어에서 ‘레몬(lemon)’이 고물이란 뜻으로 쓰인다. 겉을 보면 반질 반질 윤기가 나지만 속은 썩었거나 시어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것이다.
배장호 기자 codablu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