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덴셜생명 이홍재 LP는 “아무리 시장 경쟁이 격화돼도 보험은 무형의 상품으로 따뜻한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윤리적인 영업행위가 중시되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이 LP는 억대 연봉과 1000명이 넘는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그야말로 제1세대 전문설계사이다. 지난해에는 전세계 8개 푸르덴셜 법인에서 나라별로 한명을 선정하는 ‘기요사까구찌 골든하트 메모리얼 어워드’를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이 상은 실적과 고객서비스, 도덕적인 소양을 두루 갖춘 설계사에게 수여되는 상.
탄탄대로를 걷는 이홍재 LP가 보험업계에 발을 들여논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자신에게 종신보험 가입을 종용한 설계사의 말을 듣고 곧바로 회사를 찾아가게 된 것.
이 LP는 “당시 이 상품이면 팔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물론 불과 10년전만 해도 보험설계사 직업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로 인해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심끝에 설계사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LP의 자기일에 대한 사랑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보험 영업을 초지일관 고수해온 데서 알 수 있다. 지난 92년 입사 이후 94년 매니저급인 SM(Sales Manger)으로 승진, 광화문 지점장을 맡기도 했지만 1년만에 LP로 다시 돌아왔다. 자기일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이 LP는 복귀하자마자 시니어, 컨설팅플래너를 거쳐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Executive LP 자리에 올랐다.
이 LP는 “처음에는 고객과 영업인의 한 사람으로 만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밀감은 더해졌다”며 “특히 부인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던 학창시절의 비밀과 개인적인 깊은 이야기를 할 때 플래너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LP의 고객 중 처음 보험금을 지급받은 사람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대학교 동창. 사고 직후 미망인과 함께 친구가 다녔던 지방 지점을 방문해보니 가족들에게 남긴 것은 주택, 주식 투자용 대출 등의 빚밖에 없었다. 보험상품의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 사건이었다.
대졸 남성설계사 1세대로 자부하는 이 LP에게는 요즘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고객 서비스를 펼치는 소명의식보다는 한탕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 실제로 전문설계사하면 억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전문설계사도 소명의식과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LP는 “미국의 경우 보험모집인이 대부분 대학 교육을 이수하고 보험사 자체 교육을 소화한 전문가들”이라며 “특히 국가 공인 설계사 자격증 제도를 도입하고 있어 자부심을 가질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화로 인해 미국만 해도 최고 경영진들 대부분이 보험모집인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라고 귀뜸했다.
이 LP는 “앞으로 30년은 영업 일선에서 뛸 수 있다”며 “마지막까지 고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작지만 큰 포부를 밝혔다.
송정훈 기자 jhso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