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변하는 세상, 또 세월의 더께가 한해만큼 쌓였습니다.
세상은 바뀌고 우리는 그만큼 늙어가는 것입니다. 도피안(渡彼岸)하고 살지 못할 바에는 변하는 세상에 적극 적응해 나가야 살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온 만큼 우리네 생각도 많아지고 굳어지는 법입니다.
‘변화가 생존’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변화를 원하는 사람은 귀저기가 축축해진 아기뿐이다”라는 속담이 실감납니다. 변화를 수용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변화를 받아드리기 어렵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빈공간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두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가 고착되어가는 사람과 계속 마음을 비워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기존의 사고를 고집해 나가는 사람은 일견 매우 아는 것이 많고 줏대가 있어 보이지만 머지않아 아집과 고집쟁이로 전락해 도태되고 맙니다.
그러나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유분방하게 유유자적하고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지조를 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뜻은 한가지로 가지되 생각하는 폭을 넓히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있던 일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두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직종에서 30년 가까이 종사하다 세월에 등을 떠밀려 뒤 늦게 다른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다 IMF 탓이겠지요. 지금까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모두 업적을 크게 이루었던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한분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마자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주도적으로 열심히 종업원들을 이끌고 새 일을 추진했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다보면 충돌이 있게 마련입니다. 마찰이 생길 때마다 사원들이 “사장님, 이일은 사장님께서 지금까지 해오시던 일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하십시오”라고 충고를 해도 막무가내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나이도 어린 너희들이 무엇을 아느냐”며 고집스럽게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간 결과 결국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것은 가족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은 그대로고 남들에게 변할 것만 강요한 결과였습니다. 자연히 사업도 시들해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은 “세월이 변했군, 업종 선택을 잘못했어, 경영환경이 너무 안 좋아” 하고는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같은 업종을 하면서도 일일이 “나는 이 일을 잘 모른다”며 사원들에게 물어가면서 추진했습니다. 사원들은 경영자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자 신이 나서 앞장서 일을 했습니다. 사장은 단지 사원들이 실수할 때만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해결해 나갔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무능해 보이는 주인은 놀고 종업원들만이 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위에는 임금을 특별히 높게 주지 않아도 같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업이 잘 안 될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변신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성공 할 수 있었느냐고.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제일 열심히 오래 일한 종업원이 하자는 대로하면 절대로 실패는 안하는 법이고 맨 처음 30년 동안 사회생활을 해 온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을 때가 제일 괴로웠노라”고. 그러면서 “마음을 비워 빈그릇이 되어야 변화를 수용하고 그래야 새로운 인생을 살수 있다”고 말하며 “저는 지금도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명언 같지 않은 명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습니다.
‘우자(愚者)는 변했다고 말하고 현자(賢者)는 스스로 변한다’라는 속담 그대로 입니다.
나이가 먹어 갈수록, 세월이 갈수록 사람들은 모른다는 말을 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마음을 비우기가 어려운 탓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바로 아는 것”이라는 공자님 말씀은 진정 옳은 말씀입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그래야 권위가 살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결국은 아집과 고집만 더해가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이 혼자 있으면 불행은 개인에서 그치지만 가족이 있으면 가족까지 불행해지고 행여 사회적으로 힘이 있거나 돈이 있어 영향을 주변에 미치면 주위의 조직까지 해치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사회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몸도 때맞추어 비워주지 않으면 병이되고 비만이 되어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몸은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비워줘야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몸은 매일 가볍게 해주고 새로운 양식을 더해주면서 정작 마음은 비워줄 줄 모르고 계속 묵은 때를 쌓아만 갑니다.
배고픈 줄은 알아도 머리 고픈 줄은 모르는 사람과 몸이 무거운 줄 알아도 마음이 무거운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가는 세월과 오는 백발을 탓하는 술잔은 그만 비우고 대신 모두 묵은 마음을 비우고 빈가슴으로 변화의 새해를 맞이합시다. 그러면 빈자리에 희망과 사랑이 가득 찰 것입니다.
<강 종 철 편집위원>
강종철 기자 kjc01@epayg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