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 대표가 추기경께서 손수 궁벽한 곳까지 찾아주신 것에 감사하며 선물 목록을 읽어나가는데 “ 묵주기도 몇 번, 화살기도 몇 번, 무슨 기도 몇 번, 무슨 기도 몇 번... ” 하는 식으로 기도 목록을 죽 읽고 그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기도가 선물이라니. 그런데 추기경께서는 이 기도 목록 선물에 크게 고마워하시며 이다음에 하느님 앞에 가면 자랑하시겠다며 기도에 대한 답례 선물이라고 노래를 한곡 부르시는 것이었다. 기도가 선물이고 노래가 그 선물에 대한 답례라.....
잠시 후 나는 “그렇구나 기도와 노래가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 될 수가 있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그동안의 나의 물욕에 찌든 자아와 생각의 비속함에 한동안 몹시 부끄러워했었다. 주여, 이 미욱한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이후 나는 근래 들어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추기경님의 노래였노라고 자랑하며 틈나는 대로 기도하는 흉내를 내곤 한다. 성(聖)의 세계에서는 정성을 주고받는 방법도 이렇게 달랐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이 서로 엉켜 뒹굴고 사는 속(俗)의 세계가 성(聖)의 세계와 같을 수는 없는 법. 그러니 성속(聖俗)이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 연말연시 본격적인 선물의 계절이 왔다. 우리네 풍속에 선물은 많이 주고받을수록 좋은 법. 특히 없이 사는 사람들일수록 어쩌다 들어오는 선물은 더욱 반가운 법이다. 정성만 듬뿍 담겨 있으면 비록 그 선물이 크거나 값지지 않아도 그만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가 무언가 손에 잡히고 남아야 보낸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 마다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여기저기 보낼 선물 목록을 챙기는 것이다.
하지만 선물도 선물 나름이다. 아무리 정성이 담겨 있어도 꼬리표가 따라 붙으면 그것은 뇌물이 되고 만다. 아무런 조건이 없어야 선물인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잘하고 바르게 살 일이다. 평상시에 잘하면 일터진 다음 돈 싸들고 이리저리 뛰거나 명절을 핑계대고 꼬리표 붙은 뇌물을 들고 동분서주할 일이 없을 것이다. 평소에 잘하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히는 법이다.
그리고 정도를 넘는 무리한 선물은 빚이다. 돈이 없는 데도 무리를 하면 보내는 사람의 개인 빚일 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도 무언가 찜찜한 마음의 빚이 된다. 정도를 넘지 말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은 아무리 넉넉해도 상관없다. 조건 없는 부의 재분배라는 차원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정부에서도 내수 확대를 하자며 돈을 넉넉히 풀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 있는 사람들은 지갑을 활짝 열어 불우이웃에게 크게 한번 인심을 쓰고 이다음에 하느님 앞에서 그래도 가난한 이웃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노라고 고백할 꺼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물 받은 이는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대로 받은 것의 10분의 1은 뚝 떼어 불우시설을 찾을 일이다. 행여 받은 선물이 뇌물이라고 생각이 들면 얼른 되돌려줄 일이다. 그래야 나중에 할말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요즘같이 개인이 돈 빌리기가 쉬운 시절이 과거에 또 있었나싶다. 금융기관 마다 넘치는 돈을 주체 못해 개인 대출 세일에 나서고 신용불량자에게 까지 대출해주는 금융기관도 있다. 정부도 소비가 미덕이라며 돈 쓸 것을 부축이고 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최근 들어 가계대출이 작년보다 40%가 늘었느니, 가계부채가 지난해 비해 25%나 늘어나 한가구당 2천2백만원으로 위험수위라는 등 불길한 소식이 자꾸만 들려오고 있다. 금융회사로서는 당장 옆의 회사는 대출세일을 하는데 가만히 있다가는 사세가 위축될 것 같으니 따라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요, 당국은 명색이 금융자율화 시대인데 내놓고 영업을 말릴 수도 없고, 바로 눈앞의 부실이 뻔히 보이는데도 뾰족한 대책을 세울 수 없으니 딱한 일이다.
그나저나 우리 서민들은 돈 빌리기 쉽다고 그리고 돈 쓸 일 많은 계절이라고 마구잡이로 외상이면 소 잡아먹는 식의 선물 보내기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신 선물을 보낼 곳이 있으면 전화에다 대고 노래라도 한곡 부를 일이다.
부디 이번 세밑은 있는 사람이 앞장서 어려운 이웃에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그런 연말이었으면 하고 기도해 본다.
<강 종 철 편집위원>
강종철 기자 kjc01@epayg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