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신용의 정도를 국가의 경우에는 무디스니 하는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신용평가기관이 그나라 경제 상황을 세밀히 평가해서 내리고 평가 받는 나라는 국가차원에서 혹여 한등급이라도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회사의 경우에도 나라마다 전문 신용평가 기관이 있어 신용을 평가하고 등급이 떨어진 회사는 결국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개인의 경우도 거래은행에서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상당히 빡빡하게 신용을 관리하고 있으며 사용하는 신용카드사의 대금청구서를 보면 당신이 쓸 수 있는 사용액은 얼마고 현금서비스 한도는 얼마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내 신용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구나’하고 자조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신용등급이라는 것이 그만큼 보수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주택복권에 당첨된 것도 아니요, 다니던 회사가 보물선을 발견해 월급을 열배로 주기로 한 것도 아닌데 개인신용이 8배나 오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번듯한 카드회사에서 당신이 우수회원으로 선정되어 신용등급이 올랐으니 카드를 많이 쓰시오하는 통지가 온 것이다. 그것도 사용한도가 200만원에 불과하던 것이 물경 1700만원으로 현금서비스도 100만원에 지나지 않던 것이 무려 700만원으로. 인심도 후하지. 처음에는 잘못된 것이겠지 했으나 그래도 혹시나 하고 확인 전화를 하니 사실이란다. 이런 세상에 드디어 내 신용을 제대로 평가해주는 데가 생겼구나하고 카드 긁으러 막나가려는데 아무래도 찜찜하다. 하루아침에 신용이 이렇게 인플레가 되다니 자고 나니 유명해 졌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자고나니 개인 신용이 7배, 8배가 된 경우는 금시초문이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100명도 채 안되는 구멍가게에 이런 한도 벼락을 맞은 이가 몇 되는 것을 보아 제법 많은 국민카드회원이 혜택을 받은 모양이다. (본보 11월29일자 10면 참고)
카드사에서는 새로운 신용평가기법을 도입한 결과라고는 하나 구체적으로 벼락을 맞은 사람들 수를 밝히기 꺼리는 것을 보니 무언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일설에는 한 8,90만명이 이런 난데없는 벼락을 맞았다고 한다.
결제능력에 일정 한계가 있는 회원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사용한도를 부여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가하고 다른 카드회사에 물어보니 그들도 이런 무분별한 한도증액으로 카드사용을 부추기는 것은 바로 연체와 직결되는 것으로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다. 경쟁사라서 야박하게 평가하나보다 하고 이번에는 소비자 보호단체에 물었더니 거기서도 결제능력을 벗어나는 한도 조정은 잘못된 것이라는 대답이다.
물론 현재 신용카드 업계 판도나 국민금융그룹의 속사정을 알고 나면 국민카드 경영진 나름대로의 절박한 사정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모기업인 국민은행은 통합으로 덩치가 제일 큰 금융계의 간판은행이 되고 기존 주택은행 자회사를 포함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은 다가오는데 카드사의 규모나 영업 실적은 옛날과 달리 전문계 카드사에 갈수록 처지고 기존시장은 포화 상태로 더 이상의 신규회원 추가 증가는 난망한 실정이고 보면 결국 단기간에 경영실적을 획기적으로 올리기 위해서는 기존회원들의 사용한도액을 대폭 늘려 과다 지출을 유도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영업 전략이 나올 만도 하다. 그것도 조금 올리면 별로 효과가 없으니 한 7,8배 왕창 올리고 이번 연말에는 모카드회사 광고문구 마냥 국민카드 딱 한장이면 다 된다는 자극적인 광고문안도 실린 안내장도 첨부하여 한번 화끈하게 장사해보자하는.
더구나 내년이면 카드회사수가 현재의 7개사에서 6개사가 추가되어 13개사로 늘어나니 시장은 한정되어 있는데 경쟁은 배가될 것이다. 지금도 후발주자인 삼성이나 LG카드 시장점유율이 22-23%인데 비해 국민카드는 17%도 못 미치니 선발주자로서 내년 이후 사세가 더 위축되기 전에 무슨 비상수단이라도 강구해야 될 시점인 것이다. 더구나 연중 제일 카드 사용액이 많다는 물 좋은 연말연시가 아닌가. 이시점에 일거에 사세를 만회하지 못하면 내년 신규진입사가 각종 특혜를 앞세우며 치고 나올 때 당할 수밖에 없다는 초조감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회사 사정이 절박해도 금융인의 상식에서 벗어난 영업전략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이제 사회생활 시작한지 1년 9개월에 나이는 28세이고 미혼이며 소유 부동산도 없고 월급은 차마 밝힐 수 없거니와 분명 재벌집 아들이 아님에 분명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의 신용이 지난달까지는 총사용한도가 260만원이었던 것이 이번달에 1700만원으로 6.5배가, 현금서비스 한도는 1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7배가 뻥튀기 되었다면 이는 아무리 최첨단의 신용평가 기법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일단 건전한 상식을 가진 금융인이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신용이 빵점인 필자가 하도 부러워 평소 신용관리 비결이 무어냐고 물어보니 지금 연체중이라 국민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기막힌 답변이다.
금융의 하수도인 고리대금업자들도 돈 빌리러 가면 아래위로 훑어보며 상대방의 신용을 눈짐작이라도 하고 달라고 하는 것 보다 깎아서 돈을 내주는 법이다. 혹여나 상환 능력을 벗어날까 두려워 그러는 것이다.
안 쓰면 그만이지 무슨 말이 많으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이는 노루목에 덫을 놓고 걸려든 토끼에게 왜 하필이면 이 길로 다니냐고 묻는 것과 진배없는 파렴치한 노릇이다.
아무리 급해도 금융회사로서의 금도가 있는 법이다.
개인신용은 경품이 될 수 없다.
감독 당국은 무얼하는지. 평소에 신용사회를 정착시키자거나 카드 연체율을 줄이라거나 하는 창구지도만 하지 말고 다른 카드사가 이런 잘못된 영업 행태를 본 받아 행여라도 신용사회의 꽃이라는 카드업계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 황폐해지는 불상사가 없도록 상시 지도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강종철 편집위원>
강종철 기자 kjc01@epayg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