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택은행 합병은행장이 선정됨에 따라 IT통합 논의가 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김정태닫기

국민-주택은행은 합병은행장 결정과 함께 차세대시스템을 비롯해 CRM과 리스크관리시스템 등 두 은행이 독자적으로 추진해왔던 각종 대형 프로젝트들에 대한 대대적인 재정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합병은행의 경영전략에 따라 거시적인 IT전략도 새롭게 도출하게 돼 다른 은행은 물론 IT업계의 판도변화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올해 IT예산이 총 4000억원에 이르는 두 은행은 이번 전산통합을 통해 세계 60위권의 대형 은행에 걸맞는 경영전략과 영업환경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인프라를 구현해 내야 한다. 이와 함께 전산통합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경쟁력 누수를 최소화시키는 것도 관건이다.
실제로 전산통합시 주도권 문제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동반하게 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과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합병은행장 배출 여부 내지는 조직간 힘겨루기로 전산통합 논의가 변질되면서 전체적인 통합시너지 보다는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한 바 있다. 한일-상업간 전산통합은 고객들의 대거 이탈과 함께 아직도 조직내 후유증이 남아있고, 하나-보람의 전산통합도 정치적인 입김에 좌우됐다는 면에서 실패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주택은행측의 합병실무를 도왔던 맥킨지컨설팅은 보고서에서 IT인프라 통합을 통해 중복과잉 투자를 제거하고 규모의 경제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투자비를 집행할 경우 800~1000억원의 전산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단기적으로 통합비용이 비용절감 효과를 능가할 수 있으며 외국 합병 사례의 경우 매년 IT 지출비용의 50~90%를 통합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IT 인프라 현황을 살펴보면 예산부문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공격적인 전산투자를 견지해온 주택은행이 2200억원, 국민은행이 1800억원이며 전산직원은 각각 390, 333명으로 역시 주택은행이 많다. 반면 전체적인 시스템 규모에서는 국민은행이 주택은행보다 크게 앞선다. CPU처리용량을 보면 국민은행이 4000밉스(MIPS), 주택은행이 2700밉스를 기록하고 있고 하루처리 최대 처리 용량은 국민은행이 2000만건, 주택은행이 1200만건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주택은행은 현재 두 은행 창구를 공동이용하기 위한 D1 프로젝트를 공동진행하고 있고 고객원장 및 주전산시스템을 합치는 실질적인 전산통합 작업인 D2의 경우 합병은행장의 결정에 따라 작업을 진행키로 한 만큼 다음달부터 실무팀을 구성해 통합작업을 시작하게 될 전망이다. 통합시스템 오픈은 내년 추석연휴 내지는 2003년 구정연휴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두 은행 모두가 갈등을 의식해 주전산시스템의 통합일정과 방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합병은행장에게 일임한 상태이다.
전산통합 형태에 대해서는 단일시스템으로의 통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맥킨지 컨설팅은 ‘시스템 선정은 전문 컨설팅 기관의 진단을 받아 투명하고 공정하게 결정하되 양행 시스템 중 하나를 선정하고 필요한 주요기능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애초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되던 전산시스템 병행가동 내지는 신시스템으로의 직접 통합이 아닌 기존 시스템 중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밟을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두 은행 실무자들은 내부 협의를 거쳐 전산통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전산통합 컨설팅의 결과물도 정치적인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 실제로 한일-상업은행 간 합병시에도 결국 PwC의 컨설팅 결과와는 무관하게 통합형태가 결정됐고, 하나-보람은행의 경우 당시 통합컨설팅을 맡았던 앤더슨컨설팅(現 액센추어)의 보고서는 시스템의 우위가 아닌 통합은행장의 의지에 따라 기울어진 바 있다.
은행권 관계자들은 전산통합을 위해서는 합병은행의 경영비전과 업무 프로세스 정의에 따라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우월한 시스템을 객관적으로 선정해야 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실제 통합시스템 선정시에는 국민은행이 10월 오픈을 목표로 추진중인 차세대시스템의 성공여부가 가장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전망이다. 멀티호스팅 개념을 도입해 차세대시스템을 개발중인 국민은행은 하루 4000~5000만건 처리용량을 목표로 하고 있어 3000만건을 넘어서는 초대형 은행의 트랜잭션을 거뜬히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국민은행 차세대시스템의 10월 오픈 가능성에 대한 외부의 우려가 가시고 있지 않은데다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시스템이라는 취약점이 있다. 또한 애초 다양한 채널통합의 허브역할을 하는, 서버와 호스트간 데이터 처리시스템인 MQ시리즈가 도입되지 않는 등 애초 차세대 개념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어 안정성 및 지원능력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가 의문시되고 있다.
주택은행도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지만 국내에 적용된 사례가 없는데다 구체적인 사상도 완전히 정립되지 않아 실제 구축은 요원한 상황이다. 주택은행 역시 합병에 대비해 멀티호스팅 개념을 도입해 통합 트랜잭션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테스트는 마무리 지었다.
국민-주택 전산 실무자들은 전산통합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대립을 통해 합병은행의 경쟁력을 해치는 사태에는 이르지 않아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그동안 합추위를 통해 D1 작업을 공동으로 진행해왔고 등산 등 꾸준한 교류를 통해 친목도모도 유지해 온 만큼 합리적인 대안이 도출될 경우 수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춘동 기자 bo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