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이후 일본은 ‘금융빅뱅’을 거치면서 외국금융기관에 대거 자신의 둥지를 내줘야만 했다. 아울러 상당수의 일본 증권사 및 은행들이 외국 금융기관에 인수 합병됐고, 일본 국내 금융기관간 금융구조조정 및 외국 금융기관에 대응한 자발적 제휴 합병이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니꼬증권이 트레블러스그룹(이후 씨티그룹으로 병합됨)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이는 지분제휴로 까지 발전했다. 니꼬증권은 재무건전성 강화 및 선진 영업기법을 습득하기 위한 기회로 이같은 제휴를 선택했고, 트레블러스그룹은 일본내 소매영업의 진출교두보를 확보하려는 판단에서 니꼬증권을 택한 것이다.
또한 스위스방크와 장기신용은행이 제휴하면서 투자금융 자산관리 프라이빗뱅킹업무 부문을 담당할 3개의 합병 벤처기업을 새로 설립하는 창조적인 형태도 선보였다.
▶메릴린치의 야마이치증권 인수
일본 금융시스템 붕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띈 외국금융기관과 일본금융기관 사이의 합병 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야마이치(山一)증권은 1917년 증권업을 시작해 97년 파산 때까지 일본내 4위로 성장한 증권사다. 97년 기준 총자산이 3조1519억엔, 자본금 1266억엔, 예치자산 23조9609억엔, 고객계좌수 268만계좌, 지점수 118개, 해외지점 28개, 종업원수 7516명에 이르는 거대한 금융기관이었다.
그러나 총회꾼에 대한 이익공여사건 연루 등으로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고 일본경제의 버블붕괴에 따른 고객 감소가 수익구조 악화로 이어지면서 벼랑끝으로 내몰리다 해외은폐중이던 자본금 2배규모의 환평가 손실과 채권운용 손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야마이치증권은 자력갱생을 포기, 97년 11월24일 자진폐업을 결정하고 청산절차를 밟았다.
메릴린치는 당시 야마이치증권 인수를 전격 결정하면서 법인인수가 아닌 직원과 일부 지점을 선별적으로 인수(사원수 2000명, 자본금 300억엔, 지점 31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메릴린치의 포석은 일본시장이 부동산가격 붕괴로 헐값에 인수할 수 있다는 점,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우수한 일본 영업인력의 흡수가 용이한 점, 야마이치증권 인수로 일본내 소매영업망을 단기간에 구축할 수 있는 점 등에 집중됐다.
▶메릴린치재팬 설립의 일본내 파장
일본 금융계는 메릴린치의 야마이치증권 인수를 “일본의 개인금융자산 시장을 노린 외국 우량 금융기관의 공격적 인수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일본내 금융기관간 치열한 금융서비스 경쟁 유발과 금융기관간 인수 합병을 시작한 첫 시도”라고 평가했다.
메릴린치재팬이 설립되면서 일본내 증권사들은 회사 규모별로 상이한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메릴린치가 미국의 랩시장에서 선두주자라는 점을 간파한 노무라증권 등 대형증권사들은 소매금융 영업전략을 기존 증권매매에만 집중했던 관행에서 자산관리업(수탁고증대)으로 재빠르게 전환했다. 기업금융 부문에서는 인수업무에 편중했던 행태에서 탈피, 투자금융 업무를 대거 보완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중소형증권사는 대부분이 주식위탁수수료를 인하하고 인터넷 영업 등으로 특화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메릴린치재팬이 구사한 지역밀착형 영업(영업직원의 타지역 전근을 억제하고 고객의 자산운용에 대해 지역내에서 끝까지 책임지고 관리)과 상품전략(세계 최고수준의 자산운용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랩구좌를 통한 종합적 고객 자산관리 업무를 지속적으로 강화)을 원용하기 시작한 일본 증권사들이 늘어났다.
▶메릴린치재팬의 이후 실적
99년 10월 기준 예탁자산이 134억달러(약 15조원)에 달한다. 이는 자본금보다 50배나 많은 규모다. 동경증권거래소 거래량 점유율은 2000년 6월 기준 3.80%를 차지하며 6위를 기록하고 있다. 운용하고 있는 뮤추얼펀드도 40여종에 이른다.
문병선 기자 bsmoo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