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금융계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의욕만 앞선 채 합병에 따른 부작용이나 실패 가능성 등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조차 정부가 ‘합병 조급증’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 대우차 매각실패가 기폭제
전임 이헌재 재경부 장관과 이용근 금감위원장 때까지만 해도 은행 합병에 대한 정부입장은 공적 자금 투입 은행들에 대해서는 적극 개입하겠지만 우량은행들에 대해서는 자율에 맡기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포드사가 대우차 인수를 거부하면서 야기된 금융불안과 경제 주체들의 위기감 고조, 진념장관-이근영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새 경제팀 출발, 공적 자금 40조원 추가 조성 등이 겹치면서 은행 합병에 대한 정부 입장이나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우선 재경부와 금감위는 은행간 합병 구도를 보다 정치화해 주택-한미-하나은행 등 우량은행간 합병을 유도하는 한편 국민-외환은행 또는 국민-조흥은행이 결합하는 ‘우량+부실’ 구도까지 내비치고 있다. 이와함께 한빛+광주+제주은행 식의 몇몇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을 지주회사로 묶는 방안과 공적자금 투입은행과 부실 종금사를 묶는 이업종간 결합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난무하는 합병 구도에 대해 금융계는 우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금융 전문가들중에도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전문가들 조차 우려의 시각
우선 주택-한미-하나은행의 통합으로 상징되는 우량은행간 합병에 대해 현실적으로는 그럴싸한 조합이라는 점을 인정해도 과연 성공하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 하나은행의 경우 기업문화가 비슷하고 합병에 따른 인력 및 점포 폐쇄의 부담이 적다는 점에서 무리없이 합병이 추진될 수 있겠지만 여기에 주택은행이 들어가게 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기업문화 측면에서 주택은행과 한미-하나은행은 크게 다르다. 인력이나 중복점포 감축 부담이 크고 이는 노조의 반발을 불러 올 게 뻔하다. 또 합병이 성공하려면 대등합병보다 흡수합병이 돼야 하는데 주택은행이 총자산이나 시가총액 등에서는 앞서지만 과연 합병을 주도할 소프트웨어를 갖췄는지 회의적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세계 보험시장에서 앙숙인 주택은행의 외국인 대주주 ING와 하나은행 대주주인 알리안츠가 합병을 동의할 지도 물론 미지수다.
국민-외환, 또는 국민-조흥은행식의 합병 구도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감위 관계자들은 “정부 지원으로 외환은행이 클린뱅크가 되기 때문에 국민은행과 합병하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외환은행이 6000억원의 증자로 클린뱅크가 된다는 사실은 금감위와 외환은행 사람들만 믿지 누구도 납득하지 않는다는 점이 당장 문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외환은행에 4조원 정도의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면 합병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어렵다면 제일은행처럼 2년정도의 풋백옵션이 전제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도 우량은행과 부실은행간의 합병은 정부의 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의 원리에 따라 정부가 부실은행에 얼마를 투입할 테니 원매자가 있으면 사가라는 식으로 부실은행을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적자금 투입은행간 또는 공적자금 투입은행과 부실 종금사, 공적자금 투입은행과 부실 생보사의 결합 등 지주회사식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회의론이 만만찮다.
프라하에서 열린 IMF 총회에서 외국인 투자가들을 만나고 돌아온 금융계 관계자들은 지주회사식 구조조정에 대한 해외의 시각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실패사례를 거울로 삼아야
우선 지주회사식 결합으로 부실 금융기관들이 덩치를 키울 경우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논리가 적용될 수 있고 부실금융기관 종사자들의 모럴 해저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 입장에서는 어차피 나중에 민영화를 해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스스로도 경영하지 못해 정부에 기대고 있는 공적자금 투입은행에 이업종을 맡겨 지주회사를 만들도록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2차 은행 구조조정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1차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실패 사례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적으로 한빛은행의 실패에서는 대등합병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배우고 대우차 매각 실패에서는 구조조정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전제하에 2차 은행 구조조정은 우선 6개 경영개선 계획서 제출 은행과 서울은행등 7개 은행의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우량은행의 문제는 시장의 논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중론이다.
특히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이 아무 의미도 없는 세계 50대 은행의 탄생 등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개별 은행들이 내실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