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4500억원의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었던 평화은행이 신용카드부문을 SK그룹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경영정상화의 발판을 마련, 금융계 안팎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정보통신(SK텔레콤) 및 정유부문(SK주식회사)에서 총 1천만명의 자체 서비스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SK그룹의 신용카드업 진출이 가지는 의미도 매우 크지만 국내 은행산업 측면에서도 알짜배기 사업부문을 분리, 매각함으로써 경영정상화를 추진하는 것은 이번 평화은행이 처음이어서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평화은행이 신용카드부문의 분리 매각을 놓고 SK와 접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경. 대외적으로 발이 넓고 흡인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는 김경우 행장이 직접 나서 SK측 고위 인사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평화은행의 카드사업 매각은 SK측이 외환카드로 눈을 돌리면서 흐지부지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9월 하순들어 협상이 급진전돼 경영개선계획 제출 시한을 하루 앞둔 29일 평화은행과 SK그룹은 양해각서 서명에 이른다. SK측은 외환카드 지분을 51% 이상 요구했지만 외환카드 2대 주주인 올림푸스 캐피털측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드사업 폭발적 증가세
9월말 현재 평화은행의 카드 회원수는 92만명에 이르고 카드계정 잔액은 신용카드 이용 4557억원, 카드론 5526억원 등 총 1조83억원이다. 평화은행은 올들어 회원수 기준으로는 184.5%, 계정잔액 기준으로는 353.4%라는 폭발적 증가세를 보여 전산투자 인력 소요등의 문제가 제기됐고 이에 따라 내부적으로는 자회사로 분리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평화은행과 SK그룹이 체결한 MOU에 따르면 평화은행은 우선 독립된 신용카드 자회사를 설립해 은행의 카드사업 부문을 넘기게 되며 카드 자회사의 지분은 우선 50 대 50으로 하되 장기적으로는 증자를 통해 SK그룹의 지분을 80%까지 높이게 된다. 경영의 주체도 물론 SK가 된다.
◆BIS 비율 2%P 상승
평화은행은 이 과정에서 영업권에 대한 대가로 매각대금 3000억원을 받고 실사를 거쳐 카드자산 1조원도 자회사로 넘기게 된다. 일각에서는 3000억원의 매각대금이 너무 비싼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지분 80%에 대한 가격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평화은행은 이달말 경영평가위원회로부터 카드사업 분리 매각을 통한 경영정상화가 타당한 것으로 판정받으면 정부로부터 자회사 출자 및 신용카드업 승인을 받고 12월말에는 임시주총을 열어 영업양도를 결의하게 된다. 내년 1월에는 신용카드 자회사를 설립해 카드자산을 넘기게 되며 2월쯤 영업을 개시한다는 계획이다.
SK그룹에 대한 카드사업 매각이 최종 성사되면 평화은행은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없이도 독자생존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카드 사업 매각으로 평화은행은 우선 3000억원의 특별이익이 생긴다. 특히 신용카드 위험 자산 1조원을 넘기게 되면 BIS 비율이 2%포인트 오르게 된다.
평화은행은 당초 4500억원의 공적자금을 요청할 계획이었지만 3000억원의 특별이익과 자산 양도에 따른 2%포인트의 BIS 비율 상승으로 이를 커버하고도 남게 된다. 평화은행은 해외 투융자 업무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BIS 기준 비율이 다른 은행들보다 2%P 낮음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평화은행은 신용카드사업 부문을 SK와 공동 설립하는 자회사에 넘김으로써 받는 3000억원의 영업권(특별이익) 외에 정확한 금액은 실사 후 확정되겠지만 카드자산 매각 대금으로 1조원을 받게 된다. 평화은행 분석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카드사업을 자체적으로 했을 경우에는 7239억원의 이익이 발생하지만 매각할 경우 1조7283억원의 수익이 기대되는 등 1조원 정도의 수익증대 효과가 발생한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알짜배기 사업 부문을 매각해 앞으로 평화은행이 무얼 먹고 사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사실과 동떨어진 분석으로 보인다.
평화은행이 SK그룹과 공동으로 신용카드 자회사를 설립 운영함으로써 기대되는 시너지 효과도 대단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재벌 기업과의 제휴로 수신 외환 등의 거래 유치가 가능하고 카드업무 취급에 따른 결제 대행, 수수료 수입 증대 등 부수 효과도 발생한다. SK그룹은 현재 011, 017 가입자 1500만명 외에도 3400여개의 전국 주유소 및 수백만명의 엔크린 카드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평화은행의 잠재 고객이 될 수 있다.
◆ 정부 승인이 변수
이처럼 평화은행의 신용카드 사업 분리 및 매각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지만 내년 2월 카드 자회사가 정식 출범하려면 몇 가지 과제가 해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로 정부당국의 승인과 관련된 문제다.
우선 당장 10월 경평위에서 평화은행의 정상화 계획이 타당하다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음 단계로 자회사 설립 및 출자를 승인받아야 하고 SK그룹의 신용카드업 진출에 대해서도 정부당국의 양해가 필요하다.
재경부나 금감위는 평화은행이 자력으로 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당장 4500억원의 공적 자금을 절약하게 됐다는 점에서 이같은 계획을 가능한 지원하려는 분위기다. 자회사 설립 및 출자 측면에서는 전산업무 아웃소싱 업체인 평화은행의 넷스비텍 설립을 금융당국이 인가한 전례가 있어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도 삼성 LG등이 이미 신용카드업에 진입해 있고 SK의 카드사 설립이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도 아니라고 판단, 제동을 걸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경평위가 이같은 경영개선 계획의 타당성을 인정할 것이냐는 점인데, 1조3000억원의 현금 유입에 따른 수익증대와 수신 외환등 부수거래 증대 효과에다 국내 은행산업의 새로운 구조조종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승인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