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공적자금 투입은행 및 잠재손실을 반영한 BIS 자기자본비율이 8%에 미달하는 은행들을 중심으로 단행될 향후 인력감축은 과거 IMF 위기 직후에 비해서는 은행이나 금융당국 모두 좀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고 근본적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은행을 떠나도록 유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98년이나 99년초의 인력감축처럼 명퇴신청을 받고 그래도 나가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정리해고를 했다간 자칫 은행측이 낭패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98년 10월과 99년 1~3월 두차례에 걸쳐 명예퇴직을 실시하고 명퇴를 수용하지 않은 일부 직원들에 대해 정리해고를 했던 조흥 한빛 외환은행의 경우 현재 5건의 소송에 휘말려 있다. 조흥은행과 한빛은행이 지난 99년초 인력감축과 관련 각 1건, 외환은행은 98년 10월 2건, 99년 3월 1건 등이다.
조흥은행의 경우 지난 6월초 1심 판결에서 피고인 은행측이 승소, 일단 안도하고 있지만 원고측이 항소를 해 2심 재판이 진행중이다.
한빛은행은 지난 2월 1심 판결에서 은행측이 패소, 항소를 제기했고 외환은행의 경우 98년 정리해고 건은 이겼지만 99년 건에서는 은행측이 져 역시 항소를 제기했다.
<정리해고 쟁점사항 표 참조>
은행 관계자들은 이같은 1심 결과에 대해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IMF 경제위기 이후의 열악한 은행 경영상황을 감안하면 정리해고가 불가피했고 법적으로도 이를 용인해야 하는데도 일부이긴 하지만 은행측에 대해 패소판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판사 개개인의 주관도 일부 작용했고 은행측이 정리해고를 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신중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 인사담당자들은 조흥은행이 99년초 정리해고 건과 관련 비록 1심에서 승소했지만 한빛 외환은행의 경우 모두 패소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부터 IMF 위기 상황이 어느 정도 극복돼 ‘경영상의 긴박한 이유’라는 정리해고의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분석대로 라면 앞으로는 정리해고가 더욱 어렵게 되고 명퇴를 거부하고 버틸 경우 은행 입장에서는 달리 수단이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명퇴금이나 해고 대상자 선정기준 등에 불만을 갖고 퇴직을 하지 않고 버틸 경우 은행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이다. 관리역이나 조사역으로 발령을 내는 정도이다.
이 경우 급여가 20% 정도 삭감되기 때문에 당사자 입장에서는 타격을 받지만 지금처럼 벤처열풍이 가라앉고 경제가 다시 침체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라면 급여 삭감을 일부 감수하더라도 은행을 계속 다니는 게 나을 수 있다.
정리해고라는 최종 수단을 상실한 인력 감축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단적으로 한빛은행은 연초 1000명 정리를 목표로 12개월치의 명퇴금을 주면서 신청을 받았지만 자발적으로 은행을 떠난 사람은 200명도 안됐다.
이같은 상황은 이번에도 되풀이 될 수 있다. 현재 은행권에서 예상하는 명퇴금은 대략 12개월치 정도. 여기에 설령 남아있는 직원들이 상여금을 반납해 도와주더라도 명퇴금이 18개월치를 넘기 어렵다. 금융계의 여론을 종합해 보면 은행원들의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려면 최소 24개월치 정도는 추가 지급돼야 한다는 중론이다.
이와 관련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정리해고가 어려운 현실에서 목표한 대로 인력을 줄이려면 명퇴금을 현실화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도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모럴 해저드만 강조할 게 아니라 명퇴금을 현실화 해 인력감축이 제대로 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누구보다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고 손익개념에 철저한 제일은행의 뉴브리지 캐피털이 무려 30개월치의 명퇴금을 주면서까지 계획한 대로 사람을 줄인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