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외국이나 우리나라의 사례에 비춰 3개 은행의 대등 합병이 성공할 지 미지수이고, 은행권 기업여신의 50~60%를 차지하는 합병은행이 실패할 경우 한국경제가 하루아침에 거덜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위험한 실험’을 하려 한다는 게 금융계 관계자들은 물론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3개 은행의 합병 방침 발표이후 은행주가가 급등한 것을 놓고 정부가 시장의 평가가 긍정적인 것으로 쉽게 해석해 무모하게 합병을 밀어부쳐서는 안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당국자의 말처럼 이헌재 장관이나 이용근 위원장이 3개 은행의 합병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조흥 한빛 외환은행을 지주회사방식으로 묶어 긍극적으로는 합병을 유도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3개 은행을 합병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내 은행 산업을 IMF 체제 이후 여러 차례 밝혔던 대로 3~4개 선도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로 재편해 오버뱅크 문제를 해결하고 정부가 투자한 공적자금도 조기에 회수하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위험한 실험’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합병은행이 성공할 확률이 지극히 낮고 만약 합병은행이 실패로 끝날 경우 예상되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조흥-한빛-외환은행의 합병은 외형이나 성격이 너무도 유사한 대등합병으로 정의해야 한다. 따라서 합병은행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려면 인력이나 점포를 60~70%는 줄여야 한다.
이와 관련 국민은행의 대주주인 골드만 삭스와 주택은행의 대주주인 ING 베어링은 국민-주택은행의 합병시 점포와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게 쉽지 않고 업무의 90%이상이 중복돼 합병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 파트너를 신한 하나 한미은행 등으로 바꾼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금융노조가 7월 11일 영업점 셔터를 내리는 진짜 총파업을 선언한 상황에서 과연 정부는 자신이 3개 은행의 대주주라 해서 인력의 60~70%를 줄일 수 있을까. 물론 정부는 지주회사 방식을 도입해 인력감축은 앞으로 2~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생각이지만 이럴 경우 합병은행의 성공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경험적 분석에 따르면 선진은행의 경우 합병 성공률은 대략 25% 수준에 불과하고 특히 대등합병은 성공확률이 더 낮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의 짧은 금융사에서도 대등합병은 성공한 예가 드물다.
단적으로 서울은행과 신탁은행의 합병이 실패했고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도 판단이 이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실패했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반해 한쪽이 확실한 주도권을 쥔 국민-장기신용, 하나-보람, 조흥-충북-강원은행등의 합병은 큰 문제없이 잘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 관계자는 “기업문화가 어느 나라보다 폐쇄적인 한국적 현실에서 조흥 한빛 외환은행이 지주회사 방식으로 묶여진 후 어떻게 운영될 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측면에서 보면 합병을 하려면 한 은행에 확실하게 주도권을 쥐어줘 그 은행 중심으로 합병은행을 끌고 가야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흥 한빛 외환은행의 합병이 지주회사 개념을 도입, 초기 2~3년간은 병렬식으로 결합해 있다가 나중에 사업부별로 헤쳐 모여하는 식으로 추진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인력이나 점포 감축 등 합병의 일차 목표인 비용절감 효과가 희석된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현정부의 집권 말기로 접어들어 강력한 구조조정이 더욱 어려워진다. 병렬식 합병에 대해 전문가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벌기’로 해석하는 것은 이같은 점을 여두에 뒀기 때문이다.
조흥-한빛-외환은행을 합치면 총자산 200조원, 총수신 130조원, 총여신 120조원 규모의 초대형 은행이 탄생하게 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세계 100대 은행의 반열에 들어가는 은행이 탄생한다고 환호하고 있지만 이는 한쪽 면만 보고 있다는 것이 금융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계 10대 은행중 3개나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행들이 경쟁력 측면에서는 세계 삼류은행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는 점을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초대형 은행의 탄생은 국가 경제적으로 초대형 리스크를 안겨 준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흥 한빛 외환은행은 우리나라 64개 계열기업군중 90%정도와 주거래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은행권 전체 기업금융의 50~60%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조흥-한빛-외환 합병은행이 서울은행이나 제일은행처럼 경영위기에 몰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제일은행이 흔들리고 서울은행이 흔들려도 다른 은행들이 완충역할을 해 줬지만 앞으로는 3개 합병은행을 대신할 은행이 없다는 점에서 보통 문제가 아니다. 외형면에서는 국민은행이나 주택은행이 조흥 한빛 외환을 앞서지만 이들은 기업금융에는 관심이 없고 앞으로도 홀세일에 나설 생각이 없다.
이런 점에서 3개 은행을 묶는 것은 마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것과 같다.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묶겠다는 생각이라면 3개 모두 합병하지는 말고 하나 정도는 남겨두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금융 전담은행인 3개 은행을 묶는 것은 지금처럼 투신과 은행신탁, 종금사의 고사로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재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합병이 추진되면 최종 안착때까지는 영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투신 은행신탁 종금사에 이어 그나마 기업금융의 주력인 조흥 한빛 외환은행이 7월부터 합병추진으로 여신이 위축된다면 한계 기업들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제 “다른 대안이 있느냐, 왜 개혁을 거부하냐”며 공적자금 투입은행들만 다그칠 게 아니라 정말로 다른 대안을 생각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