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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의 자본시장 코멘터리] 펀드, ETF처럼 사고 팔 수 없나요?

서유석 전 금융투자협회장

기사입력 : 2026-06-02 10:11

공모펀드의 ETF 전환 상장, 지금이 기회입니다

[서유석의 자본시장 코멘터리] 펀드, ETF처럼 사고 팔 수 없나요?

저는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아무도 안 믿더라고요

2010년, 저는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TIGER ETF 사업부를 맡으면서 한 가지 확신을 품었습니다. "ETF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언젠가 ETF가 전통 펀드를 다 잡아먹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꽤 무서운 표현이지만,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ETF의 무기는 강력했습니다. 주식처럼 실시간으로 사고팔 수 있고, 비용은 싸고, 뭘 사는지 매일 공개됩니다. 반면 전통 공모펀드는 어떤가요. 오늘 샀는데 가격은 내일 알 수 있고, 수수료는 비싸고, 운용사가 뭘 사는지는 한참 지나야 공개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굳이 공모펀드를 이용할 이유가 점점 사라지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자산운용사 대표들을 만날 때마다 "제발 ETF 사업을 하십시오"라고 강권했습니다. 제 말투가 좀 강했는지 모르지만, 정말 급박한 심정이었거든요.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시쿵둥했습니다. "ETF 사업이 BEP를 맞추려면 꽤 걸릴 텐데, 내 임기 중에 굳이 할 이유가 없잖아요." "운용보수도 얼마 안 되는데 뭐하러 ETF를 합니까?"

지금 돌아보면, 그 분들이 틀린 말을 한 건 아닙니다. 그냥... 너무 단기적으로만 생각하셨던 거죠. 안타깝게도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500조 원짜리 기차는 이미 떠났습니다

2026년 5월 현재, 국내 ETF 시장 규모는 50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2010년 10조 원이던 것이 50배 성장한 것입니다. 반면 전통 공모펀드의 주식형 자금은 그동안 꾸준히 빠져나갔습니다. 투자자들은 이미 ETF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 500조짜리 ETF 시장조차 상위 3~4개 운용사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인데 이미 BBQ, 교촌, bhc가 골목마다 꽉 차 있는 상황에서 새 치킨집을 차리는 격입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손님이 안 옵니다.

이 답답한 상황을 타개하려고 제가 금융투자협회장으로 있을 때 추진한 것이 바로 '공모펀드 직상장'이었습니다. 기존 공모펀드를 거래소에 올려서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결과는... 솔직히 참담했습니다. 2개 운용사에서 2개 펀드만 상장하고 거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유동성도 없고 판매채널도 움직이지 않으니 제도만 있고 실질이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번에는 더 근본적인 해법을 들고 왔습니다.

그릇만 바꾸면 됩니다, 미국은 이미 하고 있습니다

해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새 ETF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있는 공모펀드를 ETF로 '전환'하면 됩니다. 요리로 비유하면, 레시피도 셰프도 그대로인데 그릇만 냄비에서 뚝배기로 바꾸는 것입니다. 뚝배기가 더 맛있고 편하니까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미국에서는 이미 검증된 방식입니다. 2021년 3월, Guinness Atkinson이라는 운용사가 업계 최초로 뮤추얼펀드를 ETF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같은 해 Dimensional Fund Advisors(DFA)는 무려 446억 달러 규모의 펀드 7개를 한꺼번에 ETF로 바꿨습니다. 이후 JPMorgan, Fidelity, BlackRock까지 합류했고,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전환된 펀드가 190개, 누적 규모는 1,70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뭘까요? 딱 하나입니다. 운용 전략도, 펀드매니저도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수수료가 싸지고, 주식처럼 편하게 거래할 수 있게 됐을 뿐입니다. 당연히 대환영이었죠.

법을 바꿔야 합니다,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

자, 이제 좀 딱딱한 얘기를 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최대한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첫째, 자본시장법 제234조를 고쳐야 합니다.
현재 법에서 ETF는 반드시 '특정 지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쉽게 말해 "코스피200을 따라가는 상품만 ETF"라는 규정입니다. 그러니 펀드매니저가 자기 판단으로 종목을 고르는 액티브 펀드는 아예 ETF가 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 조항만 없애면 길이 열립니다. 다행히 금융위원회가 2026년 1월 이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둘째, 관련 시행령과 규정도 함께 손봐야 합니다.
현재 규정상 기초지수와의 상관계수가 0.7 미만이면 액티브 ETF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상관계수가 뭔지 몰라도 됩니다. 핵심은 "지수를 70% 이상 따라가지 않으면 액티브 ETF 아님"이라는 규정이 있다는 것이고, 이것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전환 절차를 법에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공모펀드가 수익자(즉, 펀드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 총회 결의를 거쳐 ETF로 전환 등록할 수 있는 절차가 현행법에 없습니다.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서 자본시장법에 새 조항을 신설해야 합니다. 전환할 때 투자자의 기존 수익도, 운용 실적 기록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세금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 법대로라면 공모펀드를 ETF로 전환하는 순간, 투자자가 펀드를 환매한 것으로 간주되어 세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전환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은 이 문제를 세법으로 해결했습니다. 전환을 세금 내야 하는 사건으로 보지 않는 특례 조항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도 조세특례제한법에 같은 내용을 넣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거래소 상장 절차도 간소화해야 합니다.
전환 ETF는 이미 운용 실적과 투자자 기반이 있습니다. 새로 만든 ETF처럼 처음부터 심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패스트트랙 특례를 마련해야 합니다.

바뀌면 뭐가 좋아지나요?...세 가지 선물

공모펀드의 ETF 전환이 이루어지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첫 번째 선물, 실력 있는 운용사들의 귀환.
ETF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운용사들은 지금 브랜드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수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전환 제도가 도입되면, 10년·20년의 운용 역사와 검증된 성과를 가진 공모펀드들이 ETF라는 새 옷을 입고 당당히 시장에 설 수 있습니다. 실적이 있으니 마케팅 비용도 덜 씁니다. 묵묵히 좋은 성과를 내온 운용사들에게는 사실상 역전의 기회입니다.

두 번째 선물, 투자자 지갑이 두꺼워집니다.
이게 일반 투자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현재 공모 주식형 펀드의 보수는 연 1.0~1.5% 수준입니다. 여기서 상당 부분은 은행·증권사 판매보수(연 0.5~1.0%)입니다. ETF로 전환되면 판매채널 없이 거래소에서 직접 거래하니 이 비용이 거의 사라집니다. 결과적으로 총비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숫자로 보면 확 와닿습니다. 1억 원을 20년 운용할 때, 연 1.2% 보수의 공모펀드와 연 0.3% 보수의 ETF를 비교하면 수천만 원 차이가 납니다. 운용 전략과 매니저는 똑같은데 수수료만 낮아지는 것이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환영할 일입니다. 같은 음식, 더 싼 가격이니까요.

나아가 지금 ETF 시장은 대형 패시브 상품 중심입니다. 다양한 액티브 전략을 가진 우수한 공모펀드들이 ETF로 전환되면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훨씬 넓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좋은 운용 실력'과 'ETF의 편의성과 저비용'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제 둘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선물, 자본시장이 더 역동적으로 성장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거대한 머니 무브가 진행 중입니다. 저금리 시대를 지나며 수백조 원의 돈이 통장을 떠나 투자 시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동학개미운동이 보여줬듯,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에너지는 엄청납니다. 이 에너지가 다양하고 신뢰할 수 있는 ETF를 통해 시장으로 흘러들어올 때, 우리 자본시장은 더 깊고 단단해집니다.

마치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 진짜 늦기 전에

저는 2010년부터 ETF가 대세임을 확신했고, 그 확신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확신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ETF 시장이 진정으로 성숙하려면, 소수의 대형사가 아닌 더 많은 운용사가 더 다양한 전략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점은 시장에도, 투자자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공모펀드의 ETF 전환 상장은 단순한 제도 정비가 아닙니다. 오랜 경험과 실력을 쌓아온 공모운용사들이 국민 자산 형성의 진정한 파트너로 다시 설 수 있는 기회입니다. 동시에 투자자들이 검증된 운용 실력을 ETF라는 편리하고 저렴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하루빨리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 완전 액티브 ETF 허용과 공모펀드 ETF 전환 상장 제도를 함께 추진해야 합니다. 뒤늦게 ETF 사업을 권유했을 때 "임기 중에 할 이유가 없다"던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습니다.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 임기에도, 그 다음 임기에도 미뤄집니다.

한국 자본시장이 더 넓고 단단해지기를 바랍니다. 그 길 위에 공모펀드의 ETF 전환 상장이 있습니다.

필자 서유석닫기서유석기사 모아보기
1988년 하나증권(전 대한투자신탁) 입사를 시작으로 금융투자업계에서 35년을 걸어왔다. 1999년 미래에셋증권 입사 후 리테일사업부 대표, 퇴직연금사업부 대표를 거쳐 2010년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옮겨 TIGER ETF 사업부를 이끌며 국내 ETF 시장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16년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하고 2022년 12월 퇴임했으며,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을 지냈다.

서유석 칼럼니스트/전 금융투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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