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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의 배신: 1990년대 일본 금융위기를 심화시킨 환율의 이중주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gmail.com

기사입력 : 2026-05-11 05:25

엔화의 배신: 1990년대 일본 금융위기를 심화시킨 환율의 이중주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1990년대 일본 금융 시스템 붕괴에 관한 기존의 분석 자료들을 보면 대체로 부동산 가격 폭락과 부실채권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불균형을 실제 위기로 증폭시킨 또 하나의 요인이 있었다. 바로 엔화 환율이다. 당시 엔화는 치명적인 강세와 통제 불가능한 약세를 오가며 일본 경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정밀한 타격을 가했다. 환율은 단순한 통화 가치의 변동을 나타내는 지표에 그치지 않고 금융기관의 담보 가치를 훼손하고 외화 조달 비용을 급등시키는 이중 경로를 통해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비극의 전반부는 기록적인 엔고에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초중반 자산 버블 붕괴의 충격으로 흔들리던 일본 경제에 엔화 강세는 수출기업의 수익성을 짓눌렀고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심화시켰다. 자산가격 하락과 신용 경색이 서로를 증폭시키는 악순환 역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던 후반부에는 정반대 방향의 충격이 찾아왔다. 급격한 엔저와 그에 따른 외화 조달 경색은 이미 약해진 금융기관들에 결정타를 가했다. 위기의 시작은 엔고였지만 그것을 폭발시킨 것은 엔저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는 기간은 환율이 경제 펀더멘털과 완전히 괴리되는 이른바 ‘탈동조화(decoupling)’ 현상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이론적으로 단기 환율은 내외 금리차에 민감하게 반응해 움직이지만 당시 엔화의 움직임은 기존 경제 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내외 금리차의 확대로 엔화 약세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엔화는 오히려 기록적인 강세를 이어갔다. 1995년 엔/달러 환율이 79엔대까지 상승한 것은 환율이 더 이상 내외 금리차와 같은 금융 변수만으로 설명되기 불가능한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는 환율이 금리라는 단일 변수보다 주요국 간 정치적 공조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기대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1997~1998년 위기 국면에서는 내외 금리차 확대와 함께 엔화 약세가 진행되면서 환율이 내외 금리차에 순응하는 이론적 메커니즘이 부분적으로 복원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시장 반응의 차이라기보다 내외 금리차가 실제 자본 이동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적 메커니즘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정권이 금융 빅뱅을 선언하고 1997년부터 외환자유화를 포함한 개혁이 본격 시행되면서 자본 이동에 대한 제약이 크게 완화되었고 이에 따라 일본 내 자금은 보다 자유롭게 해외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개인과 기관의 해외투자가 확대되고 이른바 ‘와타나베 부인’으로 상징되는 자본 유출과 엔캐리 거래가 확산되었다. 이는 단순히 금리 차이를 따르는 투자를 넘어 엔저와 자본 유출을 맞물리게 하는 결정적인 연결 고리로 작동하며 환율 변동을 결정짓는 실질적 변수로 부상했다. 결국 1997~1998년의 환율 움직임은 내외 금리차 자체의 변화라기보다 그 신호가 현실의 자본 흐름으로 전환될 수 있는 제도적·시장적 기반이 비로소 갖추어졌다는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엔/달러 환율과 미·일 금리차 추이

▲1990년대 엔/달러 환율과 미·일 금리차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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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90년대 일본 금융위기는 내부의 구조적 취약성에 외부의 환율 충격이 결합할 때 개별 금융기관의 불안이 어떻게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전이되고 고착화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엔고 국면에서 진행된 자산 가치의 붕괴와 엔저 국면에서 촉발된 외화 유동성 압박은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금융기관의 생존 기반을 동시에 잠식했다. 문제는 개별 충격의 크기가 아니라 이 두 충격이 시차를 두고 연속적으로 작용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 결과 일본 금융 시스템은 회복의 기회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점진적 붕괴의 경로로 진입하게 되었다.

일반적인 해석에 따르면 1995년의 사상 최고 수준 엔고는 전후 일본 경제가 직면한 가장 강력한 외부 충격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후의 장기 침체 역시 그 급격한 엔화 강세의 후폭풍으로 설명된다. 2002년 미국 연준 보고서가 지적하듯 1990년대 초 엔화의 급격한 강세는 실제로 국내 경제활동을 둔화시키고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당시 일본 경제가 안고 있던 보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충분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엔고는 위기의 원인이기보다는 이미 내부에 누적돼 있던 과잉 부채와 금융 부실을 표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엔화 가치는 일본 경제가 간신히 지탱해 온 구조적 결함을 증폭시켜 적나라하게 표면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문제는 엔화 강세 그 자체보다 그 충격을 흡수해야 했던 경제의 상태였다. 버블 붕괴 이후 기업 부문은 자산가격 하락과 과잉 투자 후유증으로 수익성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고 금융기관 역시 부실채권을 충분히 정리하지 못한 채 재무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엔고는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압박하며 실물경제의 둔화를 가속화했고 이는 다시 자산가격 하락 압력으로 이어졌다. 환율 충격이 실물과 금융을 동시에 압박하는 연결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핵심 변화는 가격 결정 메커니즘의 하향 고착화였다.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가격 인하 경쟁에 내몰렸고 이는 전반적인 물가 하락 압력으로 확산되었다. 이어지는 임금 상승 억제와 내수 위축은 '물가는 오르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점차 디플레이션 기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일본은행 이코노미스트들의 2012년 분석 결과가 시사하듯 1990년대 후반의 디플레이션은 단순한 수요 부족의 결과라기보다 기대 인플레이션의 하락과 환율 충격이 맞물린 구조적 산물이었다. 결국 문제는 일시적인 물가 하락이 아니라 경제 주체들이 물가의 지속적 하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었다.

디플레이션 기대의 고착화는 금융 부실의 누적을 가속화했고 이는 다시 경제 전반의 하방 압력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물가가 하락하면 명목금리가 낮아져도 실질금리는 오히려 상승하며 이는 부채의 실질 부담을 증가시킨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안고 있던 기업들의 채무 상환 능력이 급격히 약화되었고 이는 곧 금융기관의 자산 건전성 악화로 직결되었다. 폴 크루그만(Paul Krugman)이 지적했듯 디플레이션 환경에서는 실질금리 상승을 통해 부채 부담이 확대되며 이 메커니즘은 금융 불안을 구조적으로 증폭시킨다. 일본 사례 역시 디플레이션과 금융위기가

실질 부채 부담 증가를 매개로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엔고는 금융위기를 심화시키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작동했다. 첫째는 실물 부문의 위축과 담보 가치 하락이 서로 맞물려 진행됐다는 점이다. 엔고로 수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은 투자 축소와 자산 매각에 나섰고 그 결과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하락이 가속화되었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원금보다 담보 가치가 낮아지는 ‘담보 부족’ 상태가 확산되었고 이는 곧 부실채권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둘째는 정책 대응의 지연과 금융 중개의 왜곡이다. 일본은행은 엔고에 따른 경기 둔화를 완화하기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지만 이는 부실을 정리하기보다 연명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도쿄대학의 호시 다케오와 시카고대학의 아닐 카시얍(Anil Kashyap)이 지적했듯 완화적 거시경제정책은 총수요를 일정 부분 지탱하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동시에 부실 은행과 한계 기업의 퇴출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 결과 은행들은 자생력을 상실한 부실 기업들에 대해 무분별하게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이른바 ‘에버그리닝(evergreening)’관행을 반복하게 되었고 이는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과 생산성 저하로 이어졌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동안 금융 시스템 내부의 취약성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결국 당시의 엔고는 일본 금융 시스템의 수익 기반과 자산 건전성을 동시에 훼손한 결정적 충격이었다. 자산 가격 하락과 디플레이션 기대, 그리고 과잉 부채의 압박은 서로 맞물리며 금융기관의 손실 흡수 능력을 근본적으로 잠식해 들어갔다. 이로 인해 일본 금융 시스템은 이후 외화 유동성 충격에 직면했을 때 이를 흡수할 여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위기는 가랑비에 옷 젖듯 스며들면서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경로로 전개되었다.

19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미국과 일본 간 금리 차 확대 속에서 자본이 미국으로 이동하고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위험 자산 회피 성향이 강화되면서 엔화 약세 압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고사 직전의 일본 경제를 살리는 단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엔화 가치의 하락은 일본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국제 금융시장에서 노출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 시기 엔저와 금융위기의 결합은 전반기의 자산 가격 폭락과는 다른 경로로 금융 시스템을 압박했다. 핵심은 대외 신뢰도 추락에 따른 외화 유동성 경색이었다. 1997년 홋카이도 타쿠쇼쿠은행과 야마이치증권의 연쇄 파산은 일본 금융권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불신을 극대화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일본계 은행들에 대한 신용 위험 평가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달러 조달 가산금리인 ‘재팬 프리미엄(Japan Premium)’이 급등했다.

당시의 엔화 약세는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을지 모르나 단기 외화 조달에 의존하던 은행권에는 외화 유동성 압박을 가중시키는 직접적 충격으로 작용했다. 첫째,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외화 조달 비용과 외화부채 부담이 급증했고 은행들은 심각한 유동성 압박에 직면했다. 결국 1990년대 후반의 위기는 자산가격 하락이라는 내부 요인에 엔저와 외화 조달 경색이라는 외부 충격이 겹치면서 위기의 골이 한층 깊어졌다.

둘째, BIS 자기자본비율을 둘러싼 ‘환율 경로’의 충격이다. 일본의 대형 은행들은 상당한 규모의 해외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엔화 약세는 이들 외화 자산의 엔화 기준 평가액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BIS 자기자본비율의 분모인 위험가중자산 증가로 이어져 자본비율을 낮추는 압력으로 작용했고 은행들은 비율 유지를 위해 대출을 축소함으로써 위험가중자산 증가를 억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환율 변동에서 비롯된 회계상 압력이 실물 부문의 신용 경색으로 전이되었다.

셋째, 정책 신뢰의 붕괴와 구조조정의 본격화다. 버블 붕괴 이후 누적된 부실을 안고 있던 일본채권신용은행과 같은 장기신용은행들은 엔저와 재팬 프리미엄의 이중 압력 앞에서 버티지 못했다. 해외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정부의 공적 자금 투입과 국유화는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고 이는 1998년 '금융재생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뒤늦게 시작된 구조조정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금융 시스템의 훼손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는 자산 가격 하락과 부실채권 누적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었으나 그 부담은 회계상 손실 이연과 당국의 관용적 정책 대응에 의해 상당 기간 유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격한 엔고는 기업 수익성을 압박하며 물가 하락 압력을 증폭시켰고 이는 곧 디플레이션 기대를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물가 하락에 따른 실질 부채 부담의 확대는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직격하며 잠재적 부실을 표면화하는 수준을 넘어 기존의 부실을 증폭시키는 결정적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러한 일련의 상호작용 속에서 1990년대 후반 일본의 금융위기는 환율, 디플레이션, 금융 부실이 맞물리며 증폭된 복합적 위기로 전개되었다. 엔고가 촉발한 디플레이션 압력과 그 디플레이션이 다시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증폭시키는 악순환 구조가 위기의 핵심 메커니즘이었다. 일본의 장기 침체가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과 실물 경제의 취약성이 결합된 구조적 문제였다는 점은 이후 연구들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 대응은 위기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통화당국은 인플레이션과 자산 버블의 재발을 경계한 나머지 기대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릴 만큼 적극적인 정책 대응에 나서지 못했다. 크루그만이 지적했듯, 일본의 통화정책은 유동성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기대 변화를 유도할 만큼 과감하지 못했다.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 역시 지연되면서 부실채권 문제는 장기간 누적되었고 이는 단기적 안정을 유지하는 대신 구조적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1990년대 일본 금융위기는 환율 충격이 디플레이션과 금융 불안을 연결하는 경로를 통해 위기를 증폭시킨 사례였다. 엔고라는 외부 충격은 결정적이었으나 그 자체를 유일한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이미 내부에 쌓인 불균형의 골이 너무나 깊었다. 환율 충격은 이미 누적되어 있던 부채 부담과 금융 부실을 드러내고 확대시키는 증폭 장치로 작용했다. 엔고가 자산가격 하락과 신용 경색의 악순환을 심화시키며 금융 시스템의 복원력을 약화시켰다면 뒤이은 엔저는 외화 유동성 경색을 통해 금융기관들에 결정타를 가했다.

1990년대 일본 금융위기의 본질은 환율 변동이라는 현상 그 자체보다 그 변동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금융 시스템의 내재적 취약성에 있었다. 엔고와 엔저라는 상반된 환율 변동은 이미 누적된 시스템의 균열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파고들며 위기를 증폭시켰을 뿐이다. 당시 일본 당국은 환율 대응이라는 외부 충격 방어에 급급해 정작 내부의 부실을 정리할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

결국 위기의 원인은 내부에 있었고 외부의 충격은 그 위기를 폭발시킬 도화선에 불과했다. 일본의 경험은 금융위기의 파괴력을 결정짓는 것이 외부 충격의 크기가 아니라 그 충격을 받아내는 시스템의 복원력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부의 거대한 불균형을 외면한 채 외부 환경의 변화에만 일희일비하는 경제는 언제든 무너질 수밖에 없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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