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로 세운 자본의 성벽: 숫자에 가려진 일본 은행권의 민낯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https://cfn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31321473103554c1c16452b012411124362.jpg&nmt=18)
그러나 이 연쇄 도산의 이면에는 기이한 통계적 평온함이 존재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들 은행이 공표한 BIS 자기자본비율은 모두 안전하다고 간주되던 8%를 상당폭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 3월 결산 당시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은 약 9% 수준을 유지했고 일본장기신용은행 역시 1998년 3월 결산에서 두 자릿수 비율을 기록했다. 일본채권신용은행 또한 폐쇄 직전까지 규제 기준을 상회하는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여기서 치명적인 역설이 드러난다. 은행의 건전성을 입증해야 할 지표가 오히려 위기의 실상을 가리는 장막으로 기능한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착시가 아니라 제도와 관행이 결합된 구조적 왜곡에 있었다. 일본 은행들은 국제 기준상 허용된 범위 내에서 이연법인세자산(Deferred Tax Assets, DTA)을 자본으로 폭넓게 인정했고 담보 중심 평가와 느슨한 자산 분류 기준을 통해 부실을 재무제표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손실은 실제로 계속 누적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상 자기자본비율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러한 왜곡을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일본 금융 시스템 특유의 정보 비공개 관행과 ‘호송선단 방식’으로 대표되는 보호주의적 감독 체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시장 규율 대신 당국의 관리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은행들은 자산의 질을 외부에 충분히 공개할 유인을 갖지 못했고 감독 당국 역시 시스템 불안을 이유로 엄격한 공개를 요구하지 않았다.
실제로 일본 은행권은 1993년 3월 이전까지는 부실채권 규모에 대한 공식 통계조차 공표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이미 상당한 부실이 누적되어 있었지만 자산 가치에 대한 낙관적 평가와 부실 채권의 재분류를 통해 손실 인식을 지속적으로 지연시켜 겉으로는 건전한 수치를 유지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은행 건전성을 평가할 최소한의 정보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심각한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합리적 판단에 제약을 받았고 이는 시장의 감시·규율 기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1993년 이후 부실채권 공시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그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파산 기업 대출이나 6개월 이상 연체 채권만이 공시 대상이었고 금리 감면이나 상환 유예가 이루어진 ‘요주의 채권’은 여전히 정상 자산으로 분류되었다. 이로 인해 부실 규모는 구조적으로 과소평가되었고 위기의 전조를 조기에 포착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당시 대장성의 ‘시간 벌기’ 전략이 더해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당국은 부실이 한꺼번에 드러날 경우 발생할 뱅크런과 시스템 붕괴를 우려해 강제적인 자산 실사나 대규모 부실채권 정리를 회피했다. 대신 은행들이 장부상 이익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손실을 처리하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온적인 대응은 감독 역량의 한계와 금융권과의 구조적 유착이 맞물려 정확한 자산 건전성 평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부실채권의 폭발적인 누적을 초래했다.
부실 대출 공시 의무화와 공시 범위 확대는 위기가 정점에 달한 1998년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 금융 시스템은 이미 자체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지연된 정보 공개와 형식적 지표에 대한 의존은 부실의 실체를 은폐했고 그 결과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국가 신인도 훼손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숫자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지표가 아니라 교묘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1990년대 일본의 경험은 투명한 자산 평가와 엄격한 회계 원칙이 결여된 상태에서 형식적 건전성 지표에 의존할 경우 그것이 위기를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럼에도 당시 일본 은행들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8%를 훨씬 상회할 수 있었던 것은 경영의 내실이라기보다 회계 관행과 제도적 유예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대손충당금 적립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던 점을 감안하면 잠재적 손실이 충분히 반영되었을 경우 실제 자기자본비율은 크게 낮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장부상 자본은 양적으로 충분해 보이는 기만적인 수치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실질적인 질은 이미 철저히 훼손된 상태였다.
이러한 괴리는 BIS 자기자본비율 산정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은행들의 자본이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기업 주식의 상호보유 관행과 평가 방식의 자의적 운용이다. 일본 은행들은 오랜 기간 기업들과의 상호출자를 통해 대규모 주식을 보유해 왔는데 주가 상승기에는 이로 인한 평가이익이 자본 확충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버블 붕괴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과거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주식 자산은 순식간에 자본을 잠식하는 막대한 평가손실로 돌아섰다. 감독 당국은 취득 원가와 시가 중 선택을 허용함으로써 평가손실의 즉각적인 반영을 회피할 수 있게 했다. 특히 1998년 결산을 앞두고 취득 원가 평가를 용인한 조치는 시장 가격 하락이 재무제표에 반영되는 것을 인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부실 은행들이 형식적인 자본 건전성을 유지하는 기만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둘째, 이연법인세자산(DTA)의 광범위한 인정이다. DTA는 회계상 비용으로는 인정되나 세무상으로는 즉시 비용으로 처리되지 못한 항목들로 인해 발생하며 현재의 손실을 미래의 과세 소득과 상쇄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계상되는 자산이다. 따라서 그 실현 가능성은 향후 수익 창출 여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는 경영 상태가 크게 악화된 은행들에도 향후 5년간의 예상 이익을 근거로 DTA 계상이 폭넓게 허용되었다.
예를 들어 향후 1년간 1,000억 엔의 이익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그 범위 내에서만 DTA를 인식할 수 있지만 5년간 누적 5,000억 엔의 이익을 가정하면 그만큼 더 큰 규모의 DTA를 자본으로 계상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실현 가능성이 불확실한 장기 수익 전망을 토대로 이연법인세자산을 자본에 산입하는 조치였으며 결과적으로 실제 손실 흡수 능력과 괴리된 신기루 같은 자본을 양산했다.
더욱이 이러한 이연법인세자산은 별다른 상한 없이 기본자본(Tier 1)에 포함될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의 규제는 DTA를 사실상 전액 기본자본에 반영하는 것을 허용했는데 이는 미국이 미래 수익에 의존하는 DTA를 기본자본의 일정 비율(대략 10% 내외)로 제한한 것과 대비되는 완화된 기준이었다. 그 결과 자본의 외형은 유지되는 듯했으나 질적 수준은 급격히 저하되었으며 일부 대형 은행의 경우 자기자본의 20~30%가 이연법인세자산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셋째, 부동산 자산 재평가를 통한 보완자본 확충이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1998년 ‘토지재평가법’은 은행 보유 자산의 장부가 조정을 허용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평가 차익의 일부는 보완자본(Tier 2)으로 인정되었다. 이는 실질적인 현금 유입 없이 장부상 자본을 확충하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하락한 자산 가치가 건전성 지표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결국 당시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의 재무 건전성을 정확히 반영하는 지표라기보다 부실 인식을 지연시키는 제도적 완충 장치에 가까웠다고도 볼 수 있다. 1998년의 부실대출 공시 의무화와 공시 범위 확대 역시 회계 왜곡을 근본적으로 교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일본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은 주식 평가, 이연법인세자산, 부동산 재평가라는 세 가지 회계적 장치를 통해 유지된 측면이 컸다. 문제는 이러한 장치들이 단기적으로는 위기의 표면화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위험 신호를 왜곡해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지표가 경고 기능을 상실하는 순간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은 더 깊고 광범위하게 축적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왜곡은 자본의 구성뿐만 아니라 자산의 위험도를 평가하는 방식에서도 반복되었다. 당시 일본 은행들은 대출 자산의 위험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함으로써 지표상의 건전성을 유지했다. 그 핵심에는 은행이 스스로 자산 건전성을 분류하는 ‘자기 사정(Self-assessment)’ 제도가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가이드라인이 존재했지만 실제로는 은행에 지나치게 방만한 재량을 허용함으로써 통계적 수치를 주무를 길을 열어주었다.
이 같은 느슨한 자산 분류와 방만한 재량권의 그늘 아래 은행들은 담보 가치를 낙관적으로 산정하거나 정부의 묵시적 지원 가능성을 전제로 부실 징후가 뚜렷한 대출조차 ‘정상’ 또는 ‘요주의’로 분류하며 손실 인식을 지연시켰다. 당시 자산은 통상 ‘정상(제1분류)’과 ‘요주의(제2분류)’ 등으로 구분되었으며 분류에 따라 충당금 적립 수준이 달라졌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도 과거의 높은 감정가를 기준으로 담보를 평가함으로써 대출 자산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등급에 머무르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는 위험가중자산의 증가를 억제해 자기자본비율의 하락을 방지하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실제 신용 리스크를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왜곡으로 인해 제2분류 자산 내에서는 악성 부실과 일시적 채무 불이행의 경계가 사라졌다. 즉 단순 유동성 부족 기업과 좀비 기업이 동일한 범주로 관리됨에 따라 은행은 대규모 부실을 숨긴 채 최소한의 충당금으로 연명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금리 감면이나 상환 유예가 반복되는 대출조차 장기간 제2분류에 머물며 장부상으로는 ‘회수 가능한 자산’으로 유지되었다. 그 결과 충당금 적립은 구조적으로 지연되었고 자본 확충의 필요성 역시 체계적으로 희석되었다.
이러한 문제의 핵심에는 자산 등급을 은행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 제도적 한계가 있었다. 감독 당국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도입된 ‘자기 사정’ 제도는 실질적으로 내부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건전성 평가의 객관성을 크게 훼손했다. 특히 BIS 자기자본비율 8%라는 규제 기준을 유지해야 했던 경영진에게 자산 분류는 위험을 정확히 반영하는 과정이 아니라 목표 비율을 맞추기 위한 관리 대상에 가까웠다. 이 과정에서 여신 심사와 자산 평가 기준은 점차 완화되었고 자산 등급의 상향 조정은 관행처럼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자산 평가 체계는 위험 식별 장치가 아닌 손실 인식을 지연시키는 완충 장치로 기능했다. 이는 앞서 살펴본 자본 확충의 회계적 왜곡과 결합되어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심화시켰으며 그 결과 자기자본비율은 위험 통제 지표가 아닌 규제 충족을 위한 형식적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평가 체계의 부실은 곧바로 대손충당금 적립의 과소 산정으로 이어졌다. 당시 일본 은행들은 왜곡된 자산 분류를 근거로 대출 회수율을 낙관적으로 가정하여 충당금을 쌓았다. 이는 손실의 즉각적 인식보다 장부상 이익 유지를 우선시한 결과였다. 감독 당국 또한 엄격한 기준을 강제하기보다 은행에 광범위한 재량을 허용함으로써 가시화된 부실조차 충당금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낳았다.
이와 동시에 은행들은 BIS 자기자본비율의 분모인 위험가중자산을 축소하기 위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왜곡했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기업 대출을 줄이는 대신 국채 보유를 확대하는 방식은 규제 비율을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산 포트폴리오의 급격한 재편은 민간 산업부문으로의 자금 공급을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은행들이 지표 준수를 위해 위험 자산인 대출을 회수하고 안전 자산인 국채 비중을 늘리는 데 치중하면서 금융중개 기능은 마비되었고 경기 하강 압력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자산 운용상의 고육지책은 앞서 언급한 회계적 수단들과 결합되어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즉 자산 평가의 왜곡과 충당금 적립의 지연이 손실 인식을 체계적으로 늦추는 내부적 방어막이었다면 포트폴리오 재편은 규제 수치를 맞추기 위한 외부적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부상의 허구적 안정은 1997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처참히 붕괴되었다. 1997~1998 회계연도를 전후해 그간 은폐되었던 손실이 대규모 상각과 충당금 적립의 형태로 일시에 터져 나오면서 은행의 수익성과 자본 기반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약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 크게 훼손되었다. 은행들이 공표하는 수치가 실제 위험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본은행들은 국제 자금 시장에서 추가적인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받았고 이른바 ‘재팬 프리미엄’이 형성되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건전성 지표와 실제 위험 사이의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러한 문제는 실물경제로 파급되었다. 은행들은 추가 손실 인식을 피하기 위해 회생이 불투명한 부실 기업에 대한 대출을 연장하거나 신규 자금을 공급하는 이른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관행을 지속했다. 그 결과 회생 가능성이 낮은 기업에 자금이 묶이는 한편 생산성과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으로의 자금 공급은 위축되었다. 이는 금융중개 기능의 왜곡을 초래하며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저하시켰다.
한편 형식적으로 유지되던 자기자본비율은 정책 대응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주요 은행들이 ‘BIS 자기자본비율 9%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자본 확충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활용되었고 공적 자금 투입에 대한 저항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동원되었다. 공적 자금 수용을 곧 경영 실패의 낙인으로 여겼던 은행 경영진은 이 허구의 숫자를 방패 삼아 구조조정을 회피했다. 실제로 1998년 일본은행 하야미 마사루 총재가 주요 은행의 자본 부족 가능성을 경고했을 때도 은행권은 이를 과장된 평가라며 일축하는 등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지표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적기시정조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정책 대응의 골든타임은 점차 소진되었다.
결국 자기자본비율의 신기루는 1999년 두 번째 공적 자금 투입 과정에서 시행된 자산 실사를 계기로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외부의 냉정한 기준으로 장부를 재평가하자 그간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부실의 규모가 분명해졌고 서류상 건전해 보이던 다수의 은행이 이미 심각한 자본 잠식 상태에 놓여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형식적 건전성 지표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문제는 2002년 9월 다케나카 헤이조가 금융 담당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정리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이는 그때까지 손실 인식과 자산 재평가가 지속적으로 지연되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일본 금융위기는 자산 가격 버블 붕괴와 그에 따른 경기 침체에서 출발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손실 인식을 지연시키는 회계 관행과 규제 구조가 결합되면서 위기는 구조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건전성 지표가 실제 위험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 시장의 신뢰는 유지될 수 없으며 위기 대응 역시 필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금융 안정의 출발점은 수치상의 자본비율이 아니라 자산 평가의 투명성과 손실 인식의 엄격성에 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애덤 포젠(Adam Posen)은 야마이치 증권과 홋카이도 다쿠쇼쿠 은행이 파산한 1997년 11월부터 금융재생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1998년 10월 사이를 일본 금융위기의 정점으로 규정했다. 이 시기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대내외적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며 사실상 시스템적 붕괴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국내에서는 예금자들이 자금을 인출하거나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진 우체국 예금으로 이동시키는 움직임이 확산되었고 해외에서는 외국 은행들이 일본 금융기관에 대한 초단기 자금 공급까지 중단하면서 달러 자금 조달이 급격히 어려워졌다. 이른바 ‘재팬 프리미엄’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일본의 은행들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 조달 시 현저히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하는 가혹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러한 금융 불안의 근저에는 버블 붕괴 이후 장기간 지속된 자산 가격 하락이 있었다. 부동산과 주가가 급락하면서 담보 가치가 무너졌고 그 결과 은행 자본이 잠식되었다. 은행들은 대출을 축소했고 이는 기업 투자와 경기 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여기에 물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채무자의 실질 부담이 증가하는 이른바 ‘부채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이 형성되었다. 자산 가격 하락에서 시작된 금융기관의 부실과 신용 공급 위축이 맞물리며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최고조에 달했다.
정부는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금융 감독 체계를 개편하는 한편 공적자금 투입 등 재정 수단까지 동원했다. 1998년 2월 금융 시스템 안정화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시장은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고 같은 해 3월 정부는 약 1.8조 엔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주요 은행의 자본 확충에 나섰다. 이는 전후 일본에서 정부가 민간 은행의 자본을 직접 보강한 첫 사례였다. 이어 6월에는 금융감독청을 신설하고 ‘적기 시정 조치(Prompt Corrective Action)’ 제도를 도입하는 등 금융 감독 체계를 정비했다. 여기에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과 약 4조 엔 규모의 특별 감세 조치를 단행하며 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한 총력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의 부실 규모와 정부의 해결 의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특히 3월에 단행된 공적자금 투입은 은행권에 누적된 부실채권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제한적이었다. 이는 부실채권을 근본적으로 정리하기보다는 자금 수혈을 통해 금융기관의 외형적 건전성을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 결과 은행 자산의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남았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도 지연되었다. 시장은 단기적인 처방이 아닌 부실의 실체를 인정하고 금융기관을 근본적으로 수술하는 단호한 조치를 원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대응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채 사태의 본질적인 해결을 미루며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말았다.
정부의 미온적 대응은 곧 시장의 거센 매도 공세로 이어졌다. 1998년 6월 한 달 동안 외국인 투자자의 일본 주식 순매도 규모는 5,078억 엔에 달했고 엔화 가치는 다시 달러당 140엔 선을 돌파하며 대폭 약세로 돌아섰다. 이는 금융기관의 부실 규모와 정부의 해결 의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결과적으로 1998년 상반기의 정책 대응은 부실 규모에 대한 오판과 제한적인 자본 투입이라는 한계를 드러냈고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을 지연시키며 위기의 장기화를 초래했다.
금융 불안의 장기화는 곧 정치적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국민적 불만은 1998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참패로 표출되었고 패배의 책임을 지고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은 총사퇴했다. 뒤이어 출범한 오부치 게이조 내각은 기존의 점진적 대응에서 벗어나 보다 강도 높은 금융 구조 개편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호송선단식’ 보호 체제 아래에서 가려져 있던 금융기관들의 구조적 취약성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일본 금융의 중추를 이루던 장기신용은행들이었다. 일본채권신용은행(Nippon Credit Bank, NCB)과 일본장기신용은행(Long-Term Credit Bank of Japan, LTCB) 등 장기신용은행들의 경영 위기는 이미 심각한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이들 은행은 자산 규모가 수십조 엔에 달하는 일본 금융의 핵심 기관들이었다. 이들 은행은 일본흥업은행(Industrial Bank of Japan, IBJ)과 함께 고도성장기 동안 대규모 산업 자금을 공급했던 이른바 ‘3대 장기신용은행’으로 일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축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금융 자유화와 자본시장 개방이 진행되면서 이들의 사업 모델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 과거 장기신용은행들은 장기 채권 발행을 사실상 독점하며 기업의 장기 설비 투자를 지원하는 핵심 금융기관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금융 규제가 완화되고 자본시장이 발전하면서 대기업의 자금 조달 방식은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대기업의 이탈은 장기신용은행의 수익 기반을 잠식했으며 결과적으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 우량 차주였던 대기업이 이탈하자 장기신용은행의 전통적 수익 구조는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생존 압박 속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야 했던 이들은 부동산, 건설업, 그리고 주센(주택금융전문회사) 등 고위험 분야로 대출을 확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는 이후 막대한 규모의 부실채권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금융위기의 파고를 더욱 높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자산 거품 붕괴 이후 수년간 잠복했던 대출 부실은 금융기관의 자생력이 한계에 다다른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전면적인 위기로 분출되었다. 특히 고도성장기 일본의 산업화를 견인했던 장기신용은행들의 타격이 컸다. 정부가 대응의 골든타임을 허비하는 사이 이들 기관은 막대한 부실채권의 늪에 빠져들었다. 결국 LTCB와 NCB는 시스템 리스크의 진원지로 전락하며 일본 금융위기를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NCB의 상황은 특히 심각했다. 3대 장기신용은행 가운데 규모는 가장 작았으나 부동산 담보 대출과 고위험 자산 투자 비중이 높았던 탓에 NCB는 버블 붕괴의 직격탄을 맞으며 높았던 탓에 자산 가치 폭락에 따른 리스크에 가장 취약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1997년 초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자금 조달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금융시장 불안이 재점화된 1998년에 들어 재무 상태는 빠르게 악화되며 사실상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시 재무성은 직접적인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민간 금융기관을 동원하는 전통적인 ‘호송선단 방식’의 구제를 시도했다. 이에 따라 1997년 4월 NCB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경영 재건 계획을 발표했고 같은 해 7월 총 2,906억 엔 규모의 자본 확충이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2,106억 엔은 민간 금융기관 컨소시엄이 분담했고 나머지 800억 엔은 일본은행이 신금융안정기금을 통해 우선주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긴급 수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부실채권이 계속 증가하면서 NCB의 자산 가치는 빠르게 하락했고 시장의 신뢰도 회복되지 않았다. 상황이 악화되자 재무성은 같은 해 10월 일본흥업은행(IBJ)과 일본장기신용은행(LTCB) 등 다른 장기신용은행들에게 약 2,000억 엔 규모의 추가 출자를 압박하며 이른바 ‘공동 구제’를 추진했다.
하지만 NCB의 실제 부실 규모가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신용등급이 추가로 강등되자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NCB 구제에 동원된 IBJ와 LTCB마저 동반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었다. 이들 참여 기관의 거센 반발로 인해 결국 대장성의 구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사건은 일본 금융당국의 위기 관리 능력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으며 개별 금융기관의 부실이 언제든 금융 시스템 전체의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공포를 금융시장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NCB 문제 해결의 결정적 전환점은 1998년 6월 재무성으로부터 금융 감독 기능을 분리해 금융감독청이 출범한 데에 있었다. 새로 출범한 금융감독청은 같은 해 7월부터 NCB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으로 현장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그동안 장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던 부실 규모가 드러났고 은행이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라는 점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실효성이 없었던 자본 확충 시도는 중단되었고 NCB 정리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NCB에만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여름 자산 규모 약 26조 엔에 달하는 거대 금융기관인 LTCB 역시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장기간 누적된 부실채권과 자산 가격 하락으로 자산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은행의 실질적인 자생력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국제 기준을 상회하는 BIS 자기자본비율을 공표했으나 이는 부실의 은폐와 회계적 착시에 기반한 위태로운 수치에 불과했다. 자본이 빠르게 잠식됨에 따라 국제 영업 은행으로서의 건전성 지표는 사실상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추락했으며 LTCB의 위기는 단순한 유동성 부족을 넘어 존속 가능성 자체가 의문시되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겉으로 드러난 지표상의 수치와 달리 시장은 이미 냉혹한 심판을 내리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LTCB를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아닌 존립 기반이 와해된 구조적 지급불능 상태로 규정했다. 이러한 불신은 자금 조달 창구를 차단하며 LTCB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LTCB는 금융 시스템의 중추적 기관이었기에 이들의 몰락은 개별 은행의 파산을 넘어 시스템 리스크로 급격히 확산되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일본 금융권에서는 대형 은행의 국유화라는 전례 없는 조치까지 공론화되기에 이르렀다.
LTCB의 취약성은 자금 조달 구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일반 예금 기반이 취약했던 LTCB는 은행 간 시장과 채권 발행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장 신뢰가 흔들리자 조달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여기에 장부가격 기준 약 50조 엔에 달하는 방대한 파생상품 포지션까지 겹치면서 시장의 불안은 더욱 증폭되었다. 실제 손실 규모와는 별개로 “LTCB가 붕괴할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도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빠르게 퍼지며 일본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 시스템으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까지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책 당국의 운신의 폭은 사실상 사라진 상태였다. 당초 정부는 스미토모신탁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LTCB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스미토모 측이 막대한 부실 규모를 확인한 뒤 합병을 거부하면서 이 시도는 무산되었다. 과거 NCB 사례에서 활용했던 민간 주도의 자본 확충이나 제한적인 공적자금 투입만으로는 이미 역부족이었다.
LTCB의 위기는 민간의 자율적 구조조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장기간 누적된 부실채권과 자산 가치 하락으로 자본 기반이 잠식되면서 개별 은행의 파산을 넘어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었다. 결국 당국은 기존의 미온적 대응에서 탈피하여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직접적이고 강력한 국가 개입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그러나 당시의 제도적 틀만으로는 자산 규모가 거대한 대형 은행을 시장 혼란 없이 정리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웠다. 기존 제도는 개별 금융기관의 파산이나 제한적 지원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스템 리스크를 동반한 대형 은행 위기를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이에 따라 부실 금융기관을 공적 관리 아래 두고 정리할 수 있는 새로운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작업이 시급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국회는 1998년 10월 금융 시스템 위기 대응의 핵심 입법인 ‘금융재생법’과 ‘금융기능 조기건전화법’을 제정했다. 두 법률은 공적자금 투입과 대형 금융기관의 국유화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조치였다.
금융재생법은 부실 금융기관 정리를 위한 핵심 장치였다. 이 법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금융기관을 공적 관리 아래 두거나 일시적으로 국유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공적 관리 대상이 된 금융기관은 금융재생위원회의 감독 아래 영업을 계속하면서 채무 이행을 보장받게 되었고 필요할 경우 예금보험기구를 통해 자본 확충과 자금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정부는 대형 금융기관을 갑작스럽게 파산시키지 않고 질서 있게 정리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확보하게 되었다.
새로 출범한 금융재생위원회는 법 통과 직후 즉각적인 실행에 나섰다. 1998년 10월 LTCB를 시작으로 같은 해 12월에는 NCB까지 ‘특별공적관리’ 대상으로 지정하며 사실상의 국유화를 단행했다. 국유화와 동시에 기존 경영진은 전원 해임되었고 이어진 정밀 실사 결과 두 은행 모두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실질적 지급불능 상태라는 사실이 공식 확인되었다.
정리 과정에서 주주와 채권자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우선 자기책임 원칙에 따라 기존 주식은 전액 소각되었고 주주는 경영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부담했다. 반면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채권자 보호는 철저하게 유지되었다. 예금 전액 보장 제도는 물론 금융기관 간 대출까지 사실상 전액 보장함으로써 대형 은행의 파산이 신용 경색으로 전이되는 경로를 차단했다. 이처럼 정부는 주주에게는 엄격한 책임을 묻되 채권자는 두텁게 보호하는 방식을 통해 민간 재매각을 최종 목표로 한 질서 있는 정리 절차를 밟아 나갔다.
부실 자산 정리는 ‘적격 자산’과 ‘비적격 자산’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회수 가능성이 낮은 비적격 자산은 정리회수기구로 이전해 집중적으로 정리했고 상대적으로 건전한 적격 자산은 향후 영업을 승계할 새 주인에게 이전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금융 중개 기능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부실 자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장치였다.
민간 투자자의 인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도 도입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사후 손실 보전(Buyback) 조항’이었다. 인수한 자산이 1억 엔 이상이고 이전 후 3년 이내에 가치가 20% 이상 하락할 경우 정리회수기구가 해당 자산을 다시 매입해 주는 방식이었다. 이는 공적 부문이 일정 부분 손실을 흡수함으로써 민간의 인수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였다. 실제로 2009년 3월 말까지 LTCB와 NCB의 후신인 신세이은행과 아오조라은행으로부터 총 1조 2,200억 엔 규모의 자산이 이 조항에 따라 환수되었고 이 가운데 약 6,500억 엔은 원금 회수에 성공했다.
정리 과정에서 일본은행도 금융시장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은행은 특별공적관리 아래 놓인 은행의 영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한편 콜시장 등 단기 자금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자금을 투입해 시장 경색을 완화했다. 이러한 유동성 지원 규모는 1998년 11월 약 3조 7,000억 엔을 정점으로 확대된 뒤 금융시장 안정과 함께 점차 축소되었다.
LTCB 사태는 일본 정책 당국이 직면한 전례 없는 규모의 은행 위기였다. 당시 당국의 핵심 과제는 1997년 야마이치증권 파산 당시 경험했던 통제 불능의 시장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부실 금융기관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즉각 퇴출된 야마이치증권과 달리 LTCB는 ‘국유화 후 민간 매각’을 전제로 영업을 계속하는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이러한 선택은 LTCB의 시스템적 중요성을 고려한 결과였다. LTCB가 제공하던 대규모 기업 금융 서비스가 갑작스럽게 중단될 경우 실물 경제와 금융시장에 미칠 충격이 매우 클 것으로 판단되었다. 특히 약 50조 엔 규모에 달하는 파생상품 포지션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실제 손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거대한 계약들이 일시에 청산될 경우 복잡하게 얽힌 계약 관계 속에서 연쇄적인 채무불이행이 발생해 국제 금융시장으로 충격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러한 위험을 고려해 당국은 파산 청산 대신 영업 계속을 전제로 한 정리 방식을 선택했다.
장기간의 매각 협상 끝에 2000년 2월 LTCB는 미국 투자회사 미국 투자회사 리플우드 지주회사(Ripplewood Holdings)가 주도한 투자자 그룹 ‘뉴 LTCB 파트너스’에 10억 엔이라는 상징적인 가격으로 매각되었다. 매각 조건에 따라 투자자 그룹은 약 1,210억 엔 규모의 보통주를 인수해 자본을 확충했고 정부 역시 약 2,400억 엔의 공적자금을 우선주 형태로 추가 투입해 자본 건전성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2000년 6월 LTCB는 신세이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새롭게 출범했다. 부실 자산을 상당 부분 정리한 신세이은행은 이후 경영 정상화를 거쳐 2004년 도쿄증권거래소 상장에 성공했다. 이는 국유화와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파산 위기에 놓였던 대형 은행을 구조조정한 후 민간 투자자에게 재매각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NCB 역시 금융재생법에 따라 1998년 12월 국유화 절차에 들어갔다. 정밀 실사 결과 NCB는 심각한 자본 잠식 상태로 판명되었고 이에 따라 기존 주식은 전액 소각되었다. 이 과정에서 1997년 긴급 구제 당시 투입되었던 약 2,906억 엔의 자본금도 모두 소멸했다. 여기에는 일본은행이 신금융안정기금에 출연해 투입된 800억 엔의 자금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중앙은행 자금마저 정책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최종 손실로 확정되었음을 의미했다.
국유화 이후 NCB는 소프트뱅크 중심의 컨소시엄에 10억 엔이라는 상징적 가격으로 매각되었다. 투자자 그룹은 1,000억 엔 규모의 신주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했고 정부는 우선주 형태로 2,600억 엔의 공적자금을 추가 투입해 자본 구조를 보완했다. 이후 2001년 NCB는 ‘아오조라은행’으로 사명을 변경하며 재출범했다.
그러나 아조라은행의 경영 정상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03년 대주주였던 소프트뱅크가 보유 지분을 미국계 사모펀드 서버러스(Cerberus Capital Management)에 매각하면서 지배 구조는 다시 외국계 자본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서버러스 체제 아래에서 고강도 구조조정을 거친 아오조라은행은 2006년 도쿄증권거래소 재상장에 성공하며 정상화의 길에 들어서는 듯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또 다른 시련이 되었다. 특히 사상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로 평가되는‘버나드 매도프 사건(Bernard Madoff)’과 관련된 투자 손실은 은행 재무구조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 여파로 2009년 3월 결산에서 약 2,000억 엔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 안정성은 다시 흔들렸다.
위기 타개를 위해 신세이은행과의 합병이 추진되었으나 경영 주도권과 자산 평가 방식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2010년 협상은 최종 결렬되었다. 이후 대주주이었던 서버러스는 보유 지분을 단계적으로 매각해 2013년 투자를 완전히 회수했다. 매각된 지분은 시장 투자자들에게 분산되었고 그 결과 아오조라은행은 특정 대주주가 없는 분산된 주주 구조의 상장 은행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두 장기신용은행의 몰락은 단순히 버블 붕괴 때문만은 아니었다. 금융자유화로 전통적인 사업 기반이 약화되자 이들은 부동산 금융과 각종 투자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했고 버블 붕괴에 따른 지속적인 자산 가격 하락은 이러한 전략적 변신 속에서 축적된 위험을 한꺼번에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부동산 대출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취약한 예금 기반 그리고 도매금융에 의존한 자금 조달 구조는 경기 하강 국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민간 차원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부실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고 이들의 국유화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을 차단하기 위한 마지막 안전장치로 기능했다.
이 경험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위기 국면에서 금융기관의 부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문제 해결을 미루는 정책은 결국 더 큰 비용을 초래한다. 금융 시스템의 신뢰는 문제를 은폐하는 데서가 아니라 손실을 인정하고 구조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회복된다. 일본의 장기신용은행 구조조정은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것이 시간 벌기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부실을 정면으로 처리하는 정책적 결단임을 보여준 사례였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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