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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블리 소비자 운동'의 교훈

구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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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6-10 00:00 최종수정 : 2019-06-10 00:14

[한국금융신문 구혜린 기자]
"'해당 화장품으로 인한'이라는 의사 진단 내용이 명확하게 기재돼 있는 서류 제출이 돼야 처리 가능합니다."

지난 5월부터 부건에프엔씨가 '블리블리' 화장품 환불 및 트러블 치료비 배상을 받고 싶어한 고객들에게 보낸 안내 문구다. 의사 소견서에 '해당 화장품으로 인한'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말은 누가 봐도 '해당 화장품=블리블리 화장품'으로 읽힌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몇몇 소비자들은 "'블리블리'가 기재돼 있지 않은 소견서를 냈더니 환불·배상을 해주지 않더라"고 말했다. 의사에게 소견서 내용에 '블리블리'를 써달라고 했지만, 거절을 당해서 부건에프엔씨 측에 환불·배상을 신청하길 아예 포기했다는 소비자도 있었다.

실제로 환자가 지목한 화장품 이름을 소견서에 적어주는 피부과 의사는 드물다. 한 피부과 전문의는 "써줬다가 소송 걸리면 저만 병원 문 닫아야 돼요"라고 날카롭게 반응했다. 피부 트러블이 생기는 원인은 미세먼지, 스트레스, 불면 등 너무 많은데,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는 상태에서 콕 집어 '0000 화장품'이 원인으로 보인다~ 라고 써줬다간 큰일 난다는 얘기다.

놀랍게도 부건에프엔씨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알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블리블리 소견서' 받기에 성공한 소비자에게 "'허위진단서'를 제출한 범죄행위를 했으니 환불은 당연히 못 해주고, 의사와 함께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점이다. (관련 기사: '임블리' 부건에프엔씨, 화장품 피해 주장 고객에게 협박·회유..."사진 내리면 배상해줄게")

부건에프엔씨가 '허위진단서'를 주장한 배경에는 △고객이 의사를 졸라서 '블리블리'가 써진 소견서를 받았다는 점 △의사가 확신 없이 '블리블리'를 적어줬다는 점 △원래 소견서에 브랜드명, 제품명 적어주는 것은 불법이라는 점 등이 있다.

부건에프엔씨는 허위진단서를 제공한 의사를 찾아가 고백(?)을 들었다고 했다. 회사 측이 공개한 녹취파일에서 경기도 소재 종합병원 피부과 의사는 "저희 입장에서는 이제 그분이 그 화장품을 바르는 걸 제가 본 것도 아니고,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피부과에서도 그럴 적에는 그냥…통상적으로 오랫동안…어떻게 쓰냐면은, 뭐 그게 그렇다고 전혀 가능성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럴 적에는 그냥 추정되는 것이라고 쓰거든요. 환자가 그렇게 요구를 하게 되면은 의사 입장에서는 그렇게밖에 써줄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 녹취록이 '허위'를 주장하기 위한 부건에프엔씨의 '히든카드'인 셈이다.

즉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피해 주장 고객들에게 부건에프엔씨가 증빙자료로 요구한 소견서는 허위소견서다. 환자의 강력한 요구와 의사의 불확신으로 만들어지는 게 허위소견서니까. 어떤 소비자가 이 어려운 관문을 뚫고 환불·배상 받기에 골인했는지 모르겠지만, 조심해야 한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부건에프엔씨 측에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 뒤 또 한 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소견서에 쓰여야 할 '해당 화장품으로 인한'에서 '해당'은 문자 그대로 '해당'이라고 한다. 부건에프엔씨 관계자는 "제품명이나 브랜드명 포함된 소견서를 요청드린 것이 아니며, '화장품으로 인한 피부트러블' 의사 소견서를 고객들께 요청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CS센터 상담원이 '블리블리'를 소견서에 받아오라고 안내한 기록이 있다고 반박하자, 이 관계자는 "고객 안내 과정에서 일부 직원이 잘못 안내드린 부분이 있으면 확인 후 시정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대화가 오간 5월 말 이후 CS센터의 환불 안내문에서 더는 '해당'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부건에프엔씨의 소비자 기만적 행위는 '허위소견서'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그간 폭로된 일들은 "한국 땅에서 이런 일도 있구나"하고 감탄케 했다. 그러나 부건에프엔씨는 결백만을 주장한다. 임블리 사건을 취재할수록 정신적 피로를 느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대상과의 대화는 화자를 지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스타그램을 장으로 펼쳐지는 '임블리 소비자 운동'이 감탄스럽다. 일개 기자와 달리, 직접 불이익을 경험한 이들은 지치지 않고 개개의 경험을 모아 '운동화(化)'했다. 미디어를 영리하게 이용했다. '억지스럽다' 싶은 피해 제보는 자체적으로 삭제를 요구하는 등 배제시켰다. 집단 지식의 힘에 때로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눈가리고 아웅'식의 영업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기업의 기만적 경영은 소비자 주권에 의해 제동이 걸린다. 뉘우침을 기대하기 힘들 경우 강제적인 힘을 동원한다. 초기 20명 남짓이었던 화장품 피해 공동소송인이 점점 늘어났다고 한다. 법정 다툼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넨다.

구혜린 기자 hrgu@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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