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정애 LG생활건강 사장

아모레퍼시픽과 ‘K뷰티 신흥강자’ 에이피알 사이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면서 ‘위기의 LG생활건강’이라는 말까지 나오면서다. 이 대표가 추진 중인 이번 음료 자회사 매각이 부진을 해결할 핵심 키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LG생활건강은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선정, 해태htb(옛 해태음료) 매각을 포함한 음료 사업 부문의 효율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해태htb와 함께 LG생활건강 음료 사업의 한 축인 코카콜라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
LG생활건강은 공시를 통해 “해태htb 등 음료 자회사 관련해 사업 경쟁력 강화 및 경영 효율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에 있으나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며 “코카콜라음료 매각 관련 사항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2007년 인수해 운영 중인 코카콜라와 함께 음료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기 위해 인수했지만 본업인 화장품 사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결국 포트폴리오 재정비에 돌입하게 됐다.
LG생활건강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 1조6048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8%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548억 원으로 65.4% 줄었다.
특히 핵심 사업인 뷰티는 매출이 19.4% 빠진 6046억 원에 그친 데다 영업손실 163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이 기간 음료 사업은 매출 4583억 원, 영업이익 42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2%, 18.1% 줄었다.
LG생활건강 뷰티 부문이 분기 적자전환한 것은 약 20년 만이다.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국내 뷰티 업계 ‘2강 구도’를 형성해온 전통 강자였지만, 중국 시장 부진이 지속되고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뼈아픈 결과를 가져왔다.
회사 측은 “브랜드와 채널 다변화를 지속했으나 면세 등 전통 채널의 비중 축소로 매출이 하락했고, 북미 투자 확대 등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도 외형과 수익성 모두 축소됐다. LG생활건강은 이번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액 3조3027억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3%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36.3% 줄어든 1972억 원이다.
이에 LG생활건강은 해태htb 매각이라는 카드를 꺼내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화장품 사업과 해외 진출 등에 적극 투자, 반등을 노리는 모습이다. 이정애 대표로선 전체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뷰티 경쟁력의 회복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중점 사업 전략으로 ‘글로벌 사업 재구조화(리밸런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주 시장에서 빌리프, CNP, 더페이스샵 브랜드를 중심으로 영 제너레이션(Young Generation) 고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보강하고 마케팅 투자에 집중하겠다”며 “아울러 아마존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채널에서의 퀀텀 점프와 오프라인 채널에서의 저변 확대에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MZ, 알파 세대 고객에 기반을 둔 브랜드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며 “미래 성장성과 수익 기여도가 미흡한 사업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효율화로 사업의 내실을 다지겠다”고 강조했다.

LG그룹 최초의 여성 대표이사로, 당시 LG생활건강 대표로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LG그룹에서 잔뼈가 굵었을 뿐만 아니라 생활용품사업부장부터 럭셔리화장품사업부장, 음료사업부장 3개 부문을 거치며 주력 사업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업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중국시장의 수요가 둔화되면서다. 중국시장 의존도가 컸던 LG생활건강으로선 그 충격파에 속수무책이었고, 빠르게 변화하는 K-뷰티 트렌드 대응마저 때를 놓치면서 실적 악화를 피하지 못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대표는 위기 타개를 위해 ‘뷰티 디바이스’ 시장 공략에 나섰다.
‘뷰티 디바이스’는 ‘신흥 K-뷰티 강자’로 불리는 에이피알이 주도하고 있는데,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1년 뷰티 디바이스 ‘에이지알’을 선보인 지 3년 만에 누적 판매량 400만 대를 돌파했고, 올해 2분기 뷰티 디바이스 부문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2% 증가한 900억 원을 기록했다.
그 결과 에이피알은 올해 8월 증시에서 시가총액 8조4600억 원을 기록하며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을 제치고 국내 뷰티 업계 1위에 올랐다.
상황이 이러하니 LG생활건강의 뷰티 디바이스 시장 진출이 다소 늦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이 대표는 해당 시장의 성장성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삼일PwC경영연구원에 따르면 뷰티 글로벌 디바이스 산업은 2022년 18조 원에서 2030년 119조 원 규모로 연평균 26%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LG생활건강은 즉각 움직였다. LG전자로부터 미용기기 브랜드 ‘LG프라엘’ 브랜드 자산을 인수하면서 제품 개발에 나섰다. 최근 신규 뷰티 디바이스 ‘LG프라엘 수퍼폼 갈바닉 부스터’를 출시하고, 디바이스 전용 화장품 브랜드 ‘글래스라이크(GLASSLIKE)도 론칭했다. 늦게 뛰어든 만큼 높은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다. 10만 원대의 합리적인 가격과 휴대성을 강조한 ‘LG프라엘 수퍼폼 갈바닉 부스터’로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했다. 디바이스와 전용 화장품을 모두 구매해도 약 20만 원 수준이다.
현재 LG생활건강은 지난 6월 론칭 이후 국내 자사몰 중심으로 판매 중이며 연내 제품 라인업 확대와 신규 채널 입점을 계획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운영 중인 사업의 성장과 M&A를 통한 신성장동력 확보 등 근본적인 기업 가치를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미래 성장을 위해 과거와 동일하게 M&A에 적극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박슬기 한국금융신문 기자 seulg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