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은 한국의 ‘명동’ 같은 곳으로, 상하이를 찾은 관광객들이 꼭 찾는 명소다. 난징루 시작점이 상하이 랜드마크인 동방명주 반대편에 있는데, 그곳에서 약 한 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아모레퍼시픽 ‘이니스프리’ 홍이광장점이 있었다.
홍이광장점은 1층 매장, 2층 카페, 3층 라운지로 구성된 큰 장소였다. 중국인 직원들이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이니스프리입니다”라며 고객을 맞았다. 중국 직원들의 한국어 인사는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아니었다. 한국어 인사가 중국인 고객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A씨는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흥’하는 K-뷰티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매장은 지난해 10월 문을 닫았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매장 철수 배경에 대해 “현지 유통 환경 변화와 디지털 집중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홍이광장점뿐만이 아니다.
아모레퍼시픽 매장은 중국 곳곳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니스프리 오프라인 매장 철수를 비롯해 화장품 유통 채널을 온라인으로 바꾸고 있다. 1990년 진출해 이니스프리로 정점을 찍었던 아모레퍼시픽 아성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아모레퍼시픽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니스프리는 2012년 중국에서 100호점을 기록한 이래 승승장구했다. 2016년 330개, 2017년 443개, 2018년 516개, 2019년에는 608개까지 확장했다.
하지만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과 중국 사이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 정부의 한한령이 떨어졌다. 동시에 중국 내 K-뷰티 위상이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2020년 이니스프리 매장은 280개로 절반 이상 급감했다. 현재까지도 이니스프리는 중국 시장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2분기 이니스프리 실적을 보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1% 감소한 720억원, 영업이익은 3.6% 하락한 55억원을 기록했다.
이니스프리가 추락하는 사이 중국 소비 시장에서 변화 기류가 감지됐다. 중국 정부 정책도 달라졌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부터 중국인의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는 ‘내수 소비 강화’ 정책을 펼쳤다.
지난해 4월 중국은 화장품의 효능·효과를 20종으로 구분하고 인체 적용 시험, 소비자 사용 테스트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화장품 효능·효과 홍보 평가 규범’을 수정했다. 이어 8월에는 화장품 생산허가, 관리 등을 명확히 규정하는 ‘화장품 생산경영 감독 관리 조례’에 “일반 화장품은 특수 화장품 관련 효능을 홍보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았다.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중국 소비자도 달라졌다. 가격 경쟁력이 있고 효능도 좋았지만 K-뷰티에 대한 인식이 이전 같지 않았다. 2009년과 2020년 중국 화장품 시장 점유율 상위 10대 기업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다. 2009년 10위 안에 중국 브랜드는 없었다.
하지만 2020년 순위를 보면 상메이(CHICMAX), 바이췌링(PECHOIN), 쟈란(JALA)이 각각 7위, 9위, 10위를 차지했다. 차이나 뷰티가 급성장하는 가운데 K-뷰티를 이끄는 아모레퍼시픽는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을 잃었다.
아모레퍼시픽 지난해 광군제 성적을 살펴보자. 중국 플랫폼 ‘더우인’에서 브랜드 ‘설화수’는 판매액 3.29억 위안(약 634억원)으로 2위를 기록하며 체면을 차렸다.
하지만 올해 6.18 쇼핑 페스티벌에서는 상위 10권 내 아모레퍼시픽 브랜드가 없었다.
2018년 이니스프리가 6위, 2019년 설화수가 8위를 차지했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코트라 중국 칭다오무역관 관계자는 “2021년 광군제 기간 스킨케어류 매출 톱50 브랜드 중 전체 중국 브랜드 증가 속도는 78.9%로 전체 외자 브랜드 증가 속도 26.8%보다 훨씬 높았다”고 평가했다.
2019년 아모레퍼시픽 해외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9.7% 떨어진 1040억원을 기록하며 반토막이 났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중국 광군제 마케팅 비용 확대, 홍콩 시장 매출 하락, 미국 이니스프리 출점 등 영향으로 해외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우선 중국 시장에서는 주력 브랜드 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박종대 하나투자증권 연구원은 2019년 보고서에서 “아모레퍼시픽은 프리미엄 라인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외 중저가 매출 비중이 큰 아모레퍼시픽 입장에서 온라인·벤처 시대 반드시 극복해야 할 현안”이라고 지적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니스프리 대신 럭셔리 브랜드 ‘설화수’ 마케팅에 집중했다. 2018년 설화수 브랜드에 처음으로 모델을 기용했다. 중국 내 온·오프라인 매장 확장도 지속했다.
2019년 설화수 TV광고를 확대하며 중국 내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설화수’는 살아남았다. 지난해 2분기 중국 설화수 매출은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했다. 특히 면세점을 제외하면 설화수 브랜드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60%를 기록했다. 이는 설화수 ‘자음생’ 라인 리뉴얼 효과였다. 다만 올해는 중국 정부의 상하이 봉쇄 정책으로 2분기 영업 적자 494억원을 보였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북미 시장도 적극 개척하고 있다.
지난해 아마존닷컴에 이니스프리를 입점하는 등 멀티 브랜드 숍 중심 유통 전략을 펼치는 중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 변화하는 시장 환경과 고객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이커머스 중심 영업 기반을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미 시장 내 성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북미 시장 매출이 60% 증가한 348억원을 기록했다. 2분기 역시 전년 동기 대비 66% 성장한 360억원을 달성했다.
지난달 아마존 프라임 데이에 참가해 역대 최대 성과도 거뒀다. 특히 브랜드 라네즈는 아마존 뷰티&퍼스널케어 부문 전체 1위(판매 수량 기준) 브랜드로 선정된 바 있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화장품이 새롭게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고 있고 수출도 잘 되고 있다”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중국, 동남아에서 인지도가 높은 설화수 등 럭셔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단지 K-뷰티 흐름에 의존하지 않고 효능, 안전성, 효과 등 기술력을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아모레퍼시픽 북미 시장 전략과 관련해 “새롭게 북미 시장에서 공장을 짓고 진출하기에는 여건이 쉽지 않다”며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적극적으로 효율적인 M&A(기업 인수·합병)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나선혜 기자 hisunny2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