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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탁 핀크 대표이사] 규제의 역설, 빅테크 독점 막으려다 빅테크 키운다.

편집국

기사입력 : 2021-10-25 00:58 최종수정 : 2021-10-25 01:03

규제 대상 플랫폼 세밀한 기준 나눠 적용
디지털 혁신 스타트업 시장진입 열어둬야

[권영탁 핀크 대표이사] 규제의 역설, 빅테크 독점 막으려다 빅테크 키운다.
육상 경기를 할 때 경기장 바닥은 수평을 이뤄야 한다. 달리는 거리, 원심력 및 구심력이 모두 다르게 작용하는 둥근 경기장의 특성을 고려해서 각 레인마다 출발 위치도 다르게 한다. 모두 공정성을 위해서다.

그런데 만약 운동장의 컨디션과 선수들의 특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두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완만하고 직선 구간이 많은 트랙에 배정받거나, 우수한 신체 조건을 갖춘 선수가 승리를 독차지하게 될 것이다. 시시하고 불공정한 게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최근 정부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빅테크에 ‘동일기능 및 동일규제’를 적용한다고 밝히며, 거대 플랫폼 옥죄기에 나섰다. 이번 규제의 화살은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 빅테크를 조준했는데, 무고한 중소형 핀테크사들이 더 큰 타격을 입게 생겼다.

정부는 지난 9월 25일부터 소비자의 금융피해를 줄이기 위해 금융상품 가입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을 의무화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시행했다. 플랫폼이 자사 앱을 통해 금융상품 가입 서비스를 제공할때 단순 '광고'가 아닌 경우 '중개행위'로 간주하여 판매대리 중개업을 등록한 경우에만 허용하게 한 것이다.

빅테크와 핀테크는 대부분 전자금융업자·마이데이터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는데, 현행법상 해당 사업자들이 보험(GA)과 투자 관련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출’만 판매대리 중개업자로 등록할 수 있을 뿐, 보험, 투자 등의 상품은 사실상 중개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빅테크와 핀테크는 중개업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화면(UI) 및 서비스 제공 방식 등을 변경하는 개편 작업에 서둘러 착수했다.

문제는 이미 대규모 고객을 보유하고 있고, 사업구조가 다변화되어 있는 빅테크와 달리 금융을 주력 사업으로 둔 중소 핀테크 업체들이다. 금융상품 추천과 소개를 ‘중개’ 행위로 보는 당국의 해석에 따라 보험 및 펀드 등의 금융상품 ‘추천’을 할 수 없어 차별화된 서비스를 선보이기 어렵게 됐다. 특히 내년 1월부터 열리는 ‘마이데이터’ 사업과 연계해 고객에게 최적화된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것이 핀테크 기업들의 서비스 지향점이었으나, 규제에 막혀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핀테크 업체들의 미래에 먹구름이 가득 낀 상황이다. 빅테크에 비해 규모, 매출, 플랫폼 파워가 떨어지는 중소 핀테크 업체들은 성장을 위해 적극 투자를 유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혁신적인 서비스 및 상품을 제공해 플랫폼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런데 빅테크에 적용되는 고강도 규제가 모든 핀테크에 똑같이 적용될 경우 혁신적인 서비스 창출을 저해해 이들을 폐업으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반면 빅테크는 모기업들의 플랫폼 파워를 기반으로 두터운 이용자 수를 확보하고 있으며, 미래 먹거리와 자본도 충분하다. 잠깐 생채기를 입고 다시 성장할 것으로 보는 게 업계 시각이다.

스타트업이 무너져 경쟁자가 줄어들면 빅테크의 독식 구조가 더 강화될 게 분명하다. 빅테크 잡으려다 기존 핀테크사들은 물론, 후발 주자들의 진입도 막아 빅테크만 살아남는 격이다. 이는 플랫폼 갑질, 골목상권 침해, 산업 발전 둔화, 일자리 감소 등의 사회적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

독점적 시장의 폐해를 막는 동시에 핀테크가 상생하기 위해선 규제의 일률적인 적용이 아닌, 정교한 기준에 따른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 미국, 유럽 등의 국가에서도 빅테크들의 정보 독과점 및 개인정보 무단 사용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규제 대상 플랫폼에 대한 세밀한 기준을 나눠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온라인플랫폼법의 규제 대상은 ‘매출액 100억원 이상이거나, 중개 거래액이 1,000억원 이상인 플랫폼’이다. 이와 함께 미국 내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 5천만 명 이상, 시가총액 6000억 달러 이상 등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플랫폼 규제 법안인 ‘디지털시장법’은 매출 65억유로(약 8조9700억원) 이상 또는 기업가치 650억유로(약 89조7000억원) 이상인 기업에 해당된다. 영국은 디지털 서비스 수익 총액이 5억 파운드(한화 약 8000억원) 이상이고, 국내 수익이 2500만 파운드(한화 약 400억원)를 넘을 경우 과세 대상이 된다.

미국, 유럽이 마련한 플랫폼 규율 법안에 적용되는 기업은 각 10개 이내이다. 빅테크의 승자독식을 막고, 디지털 혁신을 일으킬 스타트업들의 시장 진입을 열어두기 위함이다.

거대 플랫폼을 향한 규제의 불씨가 빅테크의 독식을 잠시 잠재울 순 있지만, 자라나고 있는 스타트업을 타 태우고, 그 잔재 위로 빅테크의 불씨가 되살아나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을 형성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땐 이미 진압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그렇다고 늦은 것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면 된다. 플랫폼의 형편에 맞게 차등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면 된다. 빅테크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되, 강소 핀테크 기업들이 싹을 틔울 수 있는 길은 열어줘야 할 것이다.

경기장의 출발선이 같다고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부여된 게 아니다. 선수들의 특징과 경기장의 컨디션에 대한 꼼꼼히 분석을 기반으로 명확하고 세부적인 기준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공정한 게임 환경이 조성되길 기대해 본다.

[권영탁 핀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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