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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Essay] 깊어지는 가을, 여러 향기로 기억되는 공간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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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1-0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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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Essay] 깊어지는 가을, 여러 향기로 기억되는 공간들
[WM국 김민정 기자] 축축한 푸른 숲 내음에 어느 비 오는 날의 산책을 떠올리고, 바람에 실려오는 코스모스 향에 지난가을 소풍을 생각하듯, 향기에는 저마다의 기억이 깃들어 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특별한 향기로 기억을 남기는 공간을 찾아 잠시나마 사색에 빠져보는 시간들을 만끽해보자.

향기로운 시간 여행, 레스케이프 호텔

프랑스어로 ‘좋은 시절’을 뜻하는 벨 에포크. 프랑스 혁명 후 격동의 시절을 지나 19세기 말부터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시기, 비로소 찾아온 평화와 번영의 시대는 풍요롭고 화려했다.

빛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의 인상을 담아낸 인상주의 화가를 필두로 예술과 문화가 번성했고, 레이스와 깃털 등으로 치장한 사람들이 파리의 거리를 메웠다. 레스케이프 호텔은 바로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호텔이란 공간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유럽의 정원을 옮겨온 듯 낭만적인 꽃 장식과 조각상, 체스판을 연상시키는 바닥의 타일과 붉은 벽 테두리를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나무 몰딩, 드레스를 입은 옛 여인을 그린 그림 장식에 그윽한 주황빛 조명,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은은하게 퍼지는 장미 향까지,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차를 타고 19세기 파리에 도착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시간 여행을 떠난 듯 어느 새 서울 도심 한복판의 풍경은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환상적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빠져든다.

2018년 서울 명동에 문을 연 부티크 호텔인 레스케이프 호텔은 파리, 뉴욕 등지에 고급 부티크 호텔을 탄생시킨 자크 가르시아가 인테리어를 맡았다.

디테일 하나까지 놓치지 않은 섬세한 장식은 객실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데,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디자인해 좌우 대칭이 균형을 이루는 내부 배치와 색색의 실로 수놓은 자수 장식, 프랑스 귀족의 저택에서 영감을 얻은 앤티크 가구가 절제된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선사한다.

프랑스풍 우아함의 화룡점정은 단연 시그너처향 ‘라 로즈 포에지(La Rose Poesie)’. 펜할리곤스, 메종 마르지엘라 등의 향수를 탄생시킨 세계적인 조향사 알리에노르 마스네가 직접 디렉팅한 플로럴 계열의 향기로, 첫 향부터 중간 향, 끝 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순간 모난 데 없이 감미롭게 코끝을 맴돈다. 라 로즈 포에지는 레스케이프 호텔에서 향수와 캔들, 룸 스프레이로도 만나볼 수 있으며, 방마다 고유의 색과 문양으로 분위기를 달리한 각각의 객실은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360° VR View’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 67

[Travel Essay] 깊어지는 가을, 여러 향기로 기억되는 공간들
향기가 있어 더욱 즐거운 책 읽는 시간, 교보문고

언제부턴가 교보문고에 가까워졌다는 걸 코끝이 먼저 알아채기 시작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나무숲 사이를 거니는 것 같기도 하고, 헌책이 빼곡하게 쌓인 고서점에 들어선 듯 느껴지는 향의 이름은 ‘The Scent of PAGE(책향)’. 사람들 사이에서 일명 ‘교보문고 향기’라 불리는 교보문고 시그너처 향이다.

서점을 찾는 사람들의 즐거운 독서 경험을 위해 2015년에 시작한 서비스로, 교보문고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수십 차례 버전을 달리한 끝에 완성한 향기다.

첫 향은 베르가모트와 레몬, 중간 향은 유칼립투스와 피톤치드, 로즈메리, 끝 향은 삼나 무와 소나무로 마무리해 상쾌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애초의 계획은 서점이란 공간에 교보문고만의 향기를 채우는 것이었으나, 향기를 기억한 사람들의 계속되는 문의와 요청에 현재는 디퓨저, 룸 스프레이, 향초, 종이 방향제 등 다양한 상품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최근 리뉴얼 오픈한 교보문고 잠실점은 책향에 더해 공간을 통한 보다 다채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새롭게 채워지는 교보문고의 기억’을 콘셉트 삼아 조성된 서점에는 테마형 독서 공간 ‘낭만서재’ 한낮과 달밤,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예약제 서점 ‘사적인 서점’ 등이 마련돼 단순히 책을 보고 구입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주소: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269 롯데캐슬골드 지하 1층(잠실점)

[Travel Essay] 깊어지는 가을, 여러 향기로 기억되는 공간들
향기를 재현하는 예술적인 오브제, 탬버린즈 플래그십 스토어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하얀색 외관이 인상적인 탬버린즈 플래그십 스토어. 분명 천연 향을 기반으로 한 코즈메틱 제품을 선보이는 곳이라 들었는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거대한 크기의 아티스틱한 오브제부터 눈에 들어온다. 손과 발, 블랙과 화이트, 석고와 우드, 식물의 초록빛과 사이키델릭한 조명의 대조가 강렬하다.

이질적인 오브제 사이에 놓인 핸드크림, 고체 향수, 무드 퍼퓸, 보디 에멀션 등 8~10가지 제품에는 각각의 쓰임새와 어울리는 향이 들어 있다. 3개의 숫자로 이뤄져 마치 암호 같은 제품명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해당 제품에 들어간 천연 향의 비율. ‘여인의 순수하고 맑은 외면에 감춰진 내면의 섹시함을 표현한 향’이라는 설명이 붙은 712는 갈바넘 향 7, 코파후 향 1, 파촐리 향 2를 배합한 것이며, 현재 2층의 메인 향인 284는 오렌지와 월계수, 올리바넘 향을 각각 2:8:4의 비율로 넣었다는 뜻이다.

암호를 풀고 나면 오브제의 의미도 한결 이해하기 쉬워진다. 투명하면서도 퇴폐적인 향의 712처럼 서로 상반된 이미지의 오브제들, ‘달콤하게 익은 오렌지 과육의 향’을 풍기는 284를 연상시키는 오렌지, 석양 등의 이미지가 불규칙하게 붙여진 보드판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향기를 눈에 보이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으로 구현하는 탬버린즈만의 방식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공간에 탬버린즈의 시그너처 향이 담긴 누드에이치핸 드크림 ‘000’이 있다.

베르가모트와 파촐리, 샌들우드를 조합해 첫 느낌은 상큼하게, 잔향은 그윽하게 마무리한 핸드크림으로, 시그너처 제품인 만큼 향의 배합 비율 또한 비밀에 부쳐 이름도 000이 되었다.

갖고 다니기 편리한 30ml와 65ml, 펌핑 용기로 되어 사무실 책상이나 파우더룸 등에 두고 쓰기 좋은 250ml 3종이 출시돼 있다. 직원에게 요청하면 제품에 쓰인 천연 향료의 시향도 가능하며, 매장 내 곳곳에 제품 테스트 전 손을 닦을 수 있는 세면대가 놓여 있으므로 느긋하게 둘러보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향기를 찾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듯하다.

• 주소: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10길 44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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