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TIMES 대한민국 최고 금융 경제지
ad

(장태민 칼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장태민

기사입력 : 2020-04-07 13:29

  • kakao share
  • facebook share
  • telegram share
  • twitter share
  • clipboard copy
사진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사진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로베스피에르에 얽힌 일화.

프랑스 혁명을 진두지휘했던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어린이에게 '우유를 마실 수 있는 기쁨'을 안겨주고 싶었다.
혁명을 이끈 로베스피에르는 우유 가격 인하를 지시했다. 물가 안정과 국가의 미래인 아이들의 영양 보충을 위한 정책이었다.

누구도 로베스피에르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았고 그의 명령을 어기려는 사람도 없었다. 우유 가격도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유가격이 떨어지자 우유를 생산하는 소의 가격도 덩달아 떨어졌다.

우유가 돈이 되지 않자 농민들은 젖소를 내다팔았다. 소고기 가격도 급락하면서 젖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반전이 일어났다. 로베스피에르의 압력으로 하락하던 우유 가격이 폭등했다. 젖소가 사라져 우유 공급이 줄면서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이제 우유 가격은 로베스피에르가 가격 인하를 명령하기 전보다 훨씬 비싸졌다. 우유도 이제 귀족 자제들만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의 세상도 복잡했다. 사실 우유가격이 하락하자 소 먹이가 문제였다.

소가 먹는 건초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농민들은 우유를 싸게 팔아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당국이 우유 가격을 억지로 내리자 농민들은 소를 먹일 건초 가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선의, 그리고 짧은 생각이 농업경제를 망쳐버렸다.
이 일화는 서양의 오래된 속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과 함께 자주 회자된다.

우유 가격 인하라는 로베스피에르의 '선의'는 목축업 위기라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됐다. 시장에 대한 몰이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오래된 사례다.

로베스피에르는 법률에 정통한 엘리트로 서민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인물이었지만, 공포 정치를 펼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국내에선 로베스피에르 사례보다 더 유명한 마오쩌뚱의 사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선의로 포장된 지옥길은 너무나 많았다. 서양에서 이 속담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이유다.

선의로 포장된 지옥길 중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마오쩌뚱과 참새' 이야기일 것이다.

중국 공산화에 성공한 마오쩌둥이 참새 박멸을 지시한 일화는 로베스피에르 사례보다 국내에선 더 유명하다.

마오쩌뚱이 참새가 곡식 낟알을 쪼아먹는 모습을 보면 참새를 없애야 식량 증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전역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참새 소탕의 결과는 처참했다. 아이들까지 새총으로 참새를 다 잡고 나니 대대적인 흉년이 들었다.

천적인 참새가 없어지자 해충이 창궐하면서 곡식을 모두 갉아먹어 버렸던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 인민 3천만, 4천만명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모든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모택동의 선의가 중국의 농업경제를 절단내고 말았던 것이다.

전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도자의 선의가 얼마나 큰 폐해를 안겨주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례다.

■ 미국에서도 선거철만 되면 나오는 '선의로 포장된 지옥길' 논쟁

정치가가 경제 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으면 국가의 미래는 위험해진다.

이러다 보니 선거철엔 각종 공약이나 정책을 놓고 '그런 선의는 지옥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라는 말들이 나오곤 한다.

작년 말엔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정책을 두고 미국에서 이런 목소리가 꽤 나왔다.

당시 워런 의원은 부유세 도입, 탈원전, 대기업 반독점 규제, 건강보험 공공성 확보, 최저임금 인상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일반 노동자들이 볼 때 다 좋아보일 수도 있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미국 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공약을 우려했던 게 사실이었다.

특히 늘 돈독이 올라있는 월가에선 '서민을 위하는' 정책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작년 11월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CEO는 "워런은 성공한 사람을 비난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면서 워런의 공약에 속지 말라고 주장했다.

다이먼 입장에선 부유세 도입을 주장하는 워런의 주장이 자신과 같은 부류를 겨냥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워런 의원은 자산 5000만달러 초과분에 연 2~6% 부유세를 부과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이먼은 워런 의원을 비판한 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을 남용했다. 물론 이런 발언엔 다분히 자신의 계급을 위하는 속내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한국에선 2년간 최저임금을 무려 30%나 올리자 자영업자들이 흔들렸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여 소비를 촉진하면 전체 내수경제가 좋아질 수 있다는 '좋은 의도'의 정책이었지만 적지 않은 개인사업자들이 이 정책 덕분에 먼저 쓰러졌다. 또 더 가난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기가 더 힘들어기도 했다.

■ 한국의 현금 살포와 '선의의 지옥가는 길'

6일 더불어민주당이 긴급재난지원금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4인 가구 기준 100만원 수준이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각계 의견을 수렴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하여 신속하게 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지난 3월 정부가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1,400만 가구를 대상으로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하는 긴급재난지원금 계획을 발표한 바 있지만 이를 더 확대한다는 발표였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역·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재난지원금을 정당화했다.

문제는 돈이다. 민주당 계산으로 소득 하위 70%를 기준으로 하면 추경 소요비용이 9조 1000억원 정도지만, 100% 다 할 경우에는 13조 내외에 달했다.

선거철이다. 민주당만 돈을 주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1인당 50만원 지급'을 제안했다. 이에 따른 재원은 대충 계산해도 20조원을 훌쩍 넘는 것으로 나온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더 베팅해야 한다. 소수 정당도 급해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인 가구든, 4인 가구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100만원은 지급해야 위기 극복을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판돈은 4인 가구 기준으로 100만원에서 200만원, 400만원까지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들먹이는 이 돈들은 다 국민의 것이다.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빼낸 돈들을 다시 국민에게 누가 많이 주느냐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이를 두고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비판이 나온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면서 국민의 돈으로 장난을 치는 정치가들에게 본 때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들도 보였다.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보니, 국민들도 괴로울 따름이다.

말 그대로 현금 지급 등 선의가 가득 담긴 정책들이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고 국가 재정에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를 걱정하고 있다.

■ 정치인 중에도 악성 포퓰리즘 비판자 있다

선거철이니 만큼 각종 공약들이 순수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선량이 되려는 자는 한 표라도 더 얻는 게 시급한 만큼 지키든 못 지키든 사탕 발림을 통해 어리석은 국민들을 꼬셔야 한다. 선거기간에만 국민의 충복이 되는 정치인들의 악성 포퓰리즘이다.

공돈을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국가의 미래를 볼 때 이런 행태가 바람직한지 의심이 많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행히 정치권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유승민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 국민에게 5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든, 전가구에 10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든 모두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돈으로 국민의 표를 매수하는 악성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당초 기재부는 소득 하위 50%에 대해 100만원(4인 가구 기준)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방침을 세웠으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소득 하위 50%를 70%로 확대했다. 대상자를 70%로 할 때 골머리를 앓던 민주당은 '전국민 지급'이란 편한 길을 택했다.

유승민 의원은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을 비난해왔던 우리 당의 대표가 4월 5일 '전국민에게 50만원씩 주자'고 나왔다"면서 황교안 대표를 비판하기도 했다.

■ 돈 쓸 일 많은 한국..그럴수록 아껴써야

정부가 당초 재난지원금으로 9.1조원(중앙정부 7.1조, 지방정부 2조)을 잡아놨으나 정치권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13조원 이상에서 20조원대 중반까지 늘어날 수 있다. 가능성은 없지만 심상정 의원 주장대로 하면 50조원 가까이 커질 수도 있다.

국가가 쓸 수 있는 재원은 세금과 국채를 통해 조달한 돈 밖에 없다. 당장 세금을 더 걷든지, 국채발행으로 마련한 부채를 활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간 재난지원금 지급 용도의 2차 원포인트 추경을 적자국채 발행 없이 추진하는 게 정부의 방침이었지만, 정치권에서 더 큰 규모를 요구하면서 미래가 불확실해졌다.

각 가정에 사실상의 현금을 얼마나 뿌릴지를 놓고 옥신각신할 때 기재부 내에선 두 자리수(10조원 이상)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여야가 선거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포퓰리즘 성격의 주장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경기가 어렵다보니 정부는 3차 추경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예전에 보지 못한 '추경 시스템'이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3차 추경 규모가 10조원을 훌쩍 넘을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현재로선 2차 추경을 적자국채 없이 넘긴다고 하더라도, 예산안의 전면적인 구조조정 등 특별한 일이 없다면 3차 추경의 경우 적자국채를 통해 해결할 수 밖에 없을 듯한 상황이다.

현재 돈 쓸 일이 많은 상황에서 국민의 위임을 받은 정부는 돈이 귀한 줄 알고 잘 써야 하지만, 마치 자신의 돈 인양 인심을 쓰는 척하고 있다.

■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얍삽한 정치인들이 국민의 돈을 자신의 쌈짓돈 마냥 여기면서 이런저런 말잔치를 벌이는 모습에 좌절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돈은 쓸 곳에 써야 한다.

돈은 코로나19로 큰 타격은 입은 국민들이 낙오하지 않도록 쓰여져야 한다. 또 건전한 기업이나 상공인들이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닫는 일 또한 없도록 하는 방향으로 사용돼야 한다.

당초 정부가 말한 것처럼 소득 하위 50%에 지원금을 주고 추가적인 정책을 펴는 게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굳이 이 돈 안 받겠다는 사람도 많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돈을 가지고 마치 화투판의 판 돈 키우듯이 마케팅을 해대는 모습이 꼴사납다는 평가도 나온다.

증권사의 한 분석가는 이런 평가를 내렸다.

"정치인들이 자기 돈 아니니 마음대로 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단 쓰게 하고 나중에 세금 내라는 것인데, 파퓰리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추경도 하고 돈도 주고 그럼 세금은 누가내고 국채 발행의 뒷감당은 누가 합니까?"

세금이나 뒷감당은 정치인이 아닌 우리 국민들의 몫이다. 이 분석가는 그러면서 한국이 선진국 흉내를 내는 것을 경계했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기축통화국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우리 한국이, 또 우리 원화가 그들과 형편이 같습니까. 마치 선진국인냥 겉멋만 들어서 미국이 하는 걸 다 따라하려는 작태는 말이 안 됩니다. 이건 한국이라는 국가의 일탈입니다."

국가재정 측면의 우려를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GDP 대비 국가부채 40% 라인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부채가 얼마나 늘어날지 지금 상황에선 자신하기 어렵다.

금융시장의 한 펀드매니저는 이런 평가를 내놓았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다른 나라보다 좋다고요? 그래서 한번 망했던 유럽처럼 재정을 엉망으로 만들어야 하나요? 그들이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50%, 60%, 70%를 넘어갈 겁니다. 포퓰리스트들의 독주를 막아야 합니다."

돈이 많이 드는 시기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반드시 써야 할 곳을 잘 가려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곳간지기에 불과하다. 그들의 사탕발림이나 좋은 말, 선의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정부는, 그리고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위해 '선의'로 돈을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재정건전성이 위협을 받아 국가재정이 위험해져 국가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한다. 우리의 정부가 적어도 마오쩌뚱이나 로베스피에르보다 낫긴 한 것일까.

혹시 이기적인 정치인들의 생존 마케팅에 국가와 국민이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오늘의 뉴스

ad
ad
ad
ad

한국금융 포럼 사이버관

더보기

FT카드뉴스

더보기
[카드뉴스] 국립생태원과 함께 환경보호 활동 강화하는 KT&G
[카드뉴스] 신생아 특례 대출 조건, 한도, 금리, 신청방법 등 총정리...연 1%대, 최대 5억
[카드뉴스] 어닝시즌은 ‘실적발표기간’으로
[카드뉴스] 팝업 스토어? '반짝매장'으로
[카드뉴스] 버티포트? '수직 이착륙장', UAM '도심항공교통'으로 [1]

FT도서

더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