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TIMES 대한민국 최고 금융 경제지

닫기

[박정수의 미술事色⑩] 풍경화, 본전 생각하게 하는...

박정수 정수아트센터관장

기사입력 : 2020-04-03 16:58 최종수정 : 2020-04-03 17:19

이미지 확대보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거공간이 마련되면 자신의 역사 혹은 사회성을 전달시킬 수 있는 기록물을 보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시작된다.

가족에 대한 기록이거나 사회와 관련된 어떤 것을 두어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종교적 신념과 같은 사회통치의 관계 등을 지나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생존을 위한 것 이외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하여 보존될 수 있는 무엇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욕망은 개인화 되면서 자신의 기록이나 관심도로 변환되면서 다양한 장식욕구로 발전한다.

인상주의 이후 시장경제와 개인적 욕망이 확대되면서 자연환경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에서 풍경화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풍경화는 사회에 대한 욕구와 시민사회에 대한 기록의 경향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격변기를 겪으면서 정서적 안정과 심적 위안을 위하여 70년대 이후 풍경화가 많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풍경이 그려진 미술작품을 소유하지 못하지만 이려한 욕구에 의해 거울 파는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이발소 그림을 구매하거나 이도 못하면 달력을 오려 붙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각 가정에는 가족사진이나 작은 그림이 걸려있는 벽을 선호한다. 미술품을 온전히 투자의 대상으로만 삼을 것이 아니라면 추억이 깃든 풍경화 한두점 집에 걸어봄직하다. 그림을 보면서 고향집을 그리워하고 옛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나은 미술품 활용도가 있을까.

그러나 미술품으로 본전 생각을 하는 이라면 풍경화를 구매할 때 신중을 기하여야 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풍경화는 말 그대로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풍경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십여년전만 하더라도 시골 아니면 계곡이거나 초가집을 중심으로 그려진 그림이 대다수였다.

풍경화의 풍경(風景)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내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의지로 경관을 화폭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의 예술품이다.

특히 풍경(風景)의 경(景)자는 볕과 경치, 햇살 등을 나타내는 말로 높은 경관“京” 위에 태양“日”이 떠 있는 상형문자로 경관을 바라본다는 의지의 글자로 해석되고 있다. 영어의 Landscape 또한 경치를 있는 그대로 그림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라보는 상태의 의지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을 말한다. 다만 그려지는 소재가 산이나 들, 건물, 하늘을 비롯한 자연의 경관일 뿐이다.

풋풋한 고향의 정취나 눈에 익은 산과 들을 그림으로 옮겨내어 한국의 감성을 적절히 표현한 풍경을 좋아한다. 그러나 미술시장에서 자연의 풍경을 꼭 같이 잘 그려낸 작품의 가격은 그리 높지 않다. 산이나 계곡 등이 예쁘게 그려진(화가의 감성보다 보기 좋음이 우선된) 풍경화는 투자적 관점에서 다소 멀어져 있음을 이해하자.

서양에서의 풍경화는 ‘신화나 신(神)’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인간의 의지로 세상을 바라보는 16세기 낭만주의부터 본격화 된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 1775~1851)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풍경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자유로운 색상과 느낌을 표현하였다.

인상주의와는 또 다르게 공기와 빛의 흐름과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사물의 움직임에 첨가하여 그렸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그리는 것에서 진일보 한 풍경화이다. 윌리엄 터너의 이러한 풍경화는 수년 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베니스 풍경’이라는 작품이 400억 정도에 낙찰되기도 하였다.

동양에서는 사람의 생각이나 의지를 시나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즐기다가 1000년경 서양의 풍경화라 할 수 있는 산수화가 발달한다. 우리나라의 풍경화도 산수화 또는 진경산수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의 화가 정선(鄭敾, 1676~1759)에 의해 실재의 풍경이 그림으로 옮겨지기 시작한다. 진경산수가 태동하기 이전까지는 중국의 영향에 의해 마음속의 풍경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17세기 유럽 회화의 거장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신의 모습을 잘 그렸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종교적 신념을 그림으로 그리던 시대를 지나 보이는 것만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던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 1877)라는 화가도 있다. 쿠르베는 제자에게 “천사를 본 일이 있는가. 그대 아버지를 보고 그려라”고 하면서 보이는 사실 그대로를 표현하는 것을 미술표현의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중국 북송시대의 정치가이자 문학자였던 소식(蘇軾 1036∼1101)은 “대나무를 그릴 때 거기에는 자연환경과 어울린 끊임없는 변화가 있다. 현재의 대나무는 대나무 자체가 아니라 세상만물의 한 모습이다. 따라서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에 감추어진 진실까지 파악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화가가 무엇인가를 그리고자 할 때는 사물의 모든 상황을 이해한 연후에 작품제작이 임하여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였다.

풍경화의 시작을 정확히 언제부터이라고 말할 수도 없거니와 사람이 그려진 그림 풍경화인가 인물화인가에 대한 기준 역시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세시대에는 자연의 정경보다 신화적 상황을 중시하여 눈에 보이는 인간의 생활 배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17세기이후 네덜란드에서는 청빈함을 중시하던 신교도들을 중심으로 소박한 자연의 풍광을 그려내기 시작하였고, 18세기이후에는 로마와 베네치아에서 신흥 상인층이나 여행객들과 같은 수요자들을 위한 고향의 풍경 같은 것들이 거래되기 시작하였다.

화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면서 그 속에 의미를 담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대상을 그림으로 그려낼까. 누군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고자 하나 형체가 없는 바람을 그려낼 방법을 찾지 못한다. 돼지꼬리를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낙엽하나를 그려낸다면 그것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의 문양일 뿐이다.

살아 있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바람이 스치고 지나는 또 다른 기물을 통해 재현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아주 예쁜 정물을 보고 예쁘다는 사실만을 그리고자 하는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예쁜 사실만을 그려야 온전한 예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풍경화는 애초에 장식을 위한 예쁜 그림인 아니라 당대의 상황과 추억 역사와 시대성 안에서 실제의 풍경을 담아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다. 풍경화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성과 장소성이 선명하였다.

2020년에 살면서 1860년대식 모양을 답습할 이유는 없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계곡이나 풍경 사진집에서나 볼 수 있는 깨끗한 산과 물과 하늘과 구름을 그려도 뭐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오늘의 문화와 지금의 시대와 지금의 장소가 중요하지 않을까?


화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눈에 보이는 사물과 감정으로 느껴지는 것 중에서 무엇을 먼저 중요시 여길까. 물건과 꼭 같이 그려진 그림(정밀묘사)은 왜 예술작품이라 하지 않을까? ‘이거 진짜 같아.’라는 감탄과 ‘어떻게 이렇게 그렸지?’라고 하는 감탄사가 예술작품에 잘 어울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품을 감상할 때 어떤 작품은 느낌으로 보아야 한다하고, 어떤 작품들은 그려진 모양을 보면서 자신의 느낌을 이입시켜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느낌으로 보는 방법은 무엇이며, 모양에 감정을 이입시킨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하늘을 하늘색으로 칠하고 구름을 구름같이 그리는 것은 기술일까 기능일까. 세상의 모든 물건 중에 공장에서 규격으로 생산한 것 말고 규격화된 무엇일 있을까.

기억과 추억이 있는 그림들이 있다. 어른이 되면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던 골목길이 어느 순간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모여 놀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친구들과 골목길을 돌아돌아 삼삼오오 힘겹게 오르던 골목언덕이 몇 걸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의아해 한다. 어른이 되면 거리가 달라지고 넓이와 폭이 달라지는 기묘한 골목길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송재진의 그림은 어른이 된 사람들의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만화경을 닮아있다. 특별하게 무엇을 하지 않음에도 그림을 통해 회상하고 기억하고 추억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정한 지역임에도 같은 역사와 같은 땅을 살아온 우리들에게 보편적 감성과 특별한 감정을 일으킨다.

좌)송재진. 흔적과 기억-관사골1. watercolor on paper. 53x44cm. 2008 / 우)송재진. 흔적과 기억-새지골. watercolor on paper. 51x36cm. 2009

이미지 확대보기
그림 <흔적과 기억_관사골>을 보자. 우리나라 어디서나 봄직한 골목풍경이다. 언덕길을 따라 좌우로 나눠진 집들에는 세간이 보인다. 빨래줄과 연탄난로의 굴뚝, 엿바꿔 먹을 수 있는 잡동사니가 있다. 무엇하나 버리지 못하는 부모님 세대의 풍경이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흙이 아니라 시멘트로 잘 발려진 골목길이라는 것뿐이다. 아직도 들릴것만 같은 아이들의 왁자지껄과 어른들의 아이 부르는 소리가 그림 곳곳에 묻어있다.

지금도 우리나라 어느 곳에는 이러한 풍경이 있을지 모르지만 30여년 전 만하더라도 우리나라 여느 곳에서라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흔적과 기억_새지골>이 있다. 건널목 차단기만 땡땡 거리는 무허가 외진 동내의 풍경이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라는 동요가 묻어나는 힘겨운 시절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새지골’의 새지가 송아지의 방언이라 한다면 오랜 시간 전에 소를 키우던 우사(牛舍)에 벽을 치고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동내를 형성한 것으로 유추되는 풍경이다.

좌)송재진. 흔적과 기억-행지골. watercolor on paper. 51x36cm. 2009/ 우)송재진. 흔적과 기억-후생시장. mixid media on paper. 49x41.5cm 2017

이미지 확대보기
화가 송재진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여전히, 골목은 현재진행형이며, 장소진행형이며, 사람진행형이다. 골목들은 언덕을 향하거나 웅덩마을로 스미거나, 뒤안처럼 환하게 숨어있을 따름이다. 얽히고설킨 전선줄이, 골목이, 산동네가 열외의 공간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삶의 현장성을 조형해내는 또 다른 장치처럼. 뒤새, 관사골, 숫골, 신사골, 사례골, 행지골, 보름골, 새지골, 곱작골. . . . 골과 골은 단절되지 않고 실핏줄처럼 이어진다.

나는 지금, 기억의 원형을 더듬으며 골목들을 바라보고 있다. 보존이냐, 개발이냐 라는 선택의 창이 아니라, 오로지 존재의 창을 통해서. 여전히 바퀴가 닿지 않는, 걸음의 오르막을. 그 막다름의 종점에서 안도하고 있을 어떤 마음을 짐작해보려 한다.“고 했다.

좌)송재진. 흔적과 기억-후생시장1. mixid media on paper. 72.7x50cm. 2017/ 우)송재진. 흔적과 기억-후생시장3. mixid media on pape.r 61x50cm. 2017

이미지 확대보기



박정수 정수아트센터관장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한국금융포럼

더보기

FT카드뉴스

더보기

FT도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