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정부는 SW 교육을 초·중·고 교육과정에 포함해 정보 소양 능력을 갖춘 인력을 조기에 발굴·육성하는 내용을 골자로 ‘SW 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SW없이 국가 전반의 경쟁력 유지·향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영국·미국·일본 등의 선진국이 어릴 때부터 SW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도 정책 결정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SW 교육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지적을 받던 때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 ICT(정보통신기술) 교육을 적극 도입하면서 중·고교의 정보 교과 이수율은 2000년 22.3%에서 2006년 38.1%로 늘었다.
그러나 이후 관련 교사와 컴퓨터 등 학습 인프라가 줄고, 국·영·수 중심의 입시 위주 교육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2012년에는 그 비율이 6.9%로 떨어졌다. 교육내용도 정보통신기술(ICT) 활용과 일부 SW 기초교육이 혼재돼 체계적인 교육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2015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초등학생(대상 5~6학년, 적용시기 2019년) 17시간, 중학교(1~3학년, 2018~2020년) 34시간, 고등학교(1~3학년, 2018~2020년) 일반선택 전환 등이 이루어지게 됐다.
바뀐 SW 교육은 단순히 프로그래밍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SW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까지 어떤 체계가 필요한지 절차를 이해하는 컴퓨팅 사고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 SW 관련 분야가 중요해지면서 미래 시대에 필요한 창의·융합 능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자는 취지도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이런 취지가 왜곡될 위기다. 입시 위주 교육 시스템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한 SW 공교육 편입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국·영·수에 이은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강남, 강북 가릴 것 없이 코딩 경진대회 입상을 목표로 한 입시 코딩 교육이 활개를 치고 있고,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고액 코딩 교육 프로그램도 우후죽순으로 나오고 있다.
전문 인력 부족도 문제다. 현재 코딩 교육 대상 중학교 60%는 수업을 내년으로 미뤘다. 아직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중학교 약 3,200개 중 정보·컴퓨터 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교사는 약 3,000명에 불과하다. 담임교사가 전적으로 교육을 맡고 있는 초등학교는 더욱 문제가 심각해, 2016년 기준 초등학교 교사의 SW 교육 이수자 비율은 4.7%다.
학부모들 또한 코딩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 본인도 잘 모르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새로운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학원·교습소 현황 자료를 보면 서울에서 코딩 과목을 개설한 학원과 교습소는 2015년 3곳에서 지난해 25곳으로 크게 늘었다. 학원은 2곳에서 16곳으로, 교습소는 1곳에서 17곳으로 확대됐다. 특히 강남에만 2년 새 학원 10곳이 새로 생겼다.
그동안 코딩 등 컴퓨터 관련 수업은 컴퓨터학원에서 진행돼왔다. 그러나 최근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코딩만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들도 생기고 있다. 수학적 사고방식을 가르친다며 수학 과목을 추가로 넣거나 수학학원에서 코딩 강의를 특강으로 개설해두고 권유하기도 한다.
코딩 열풍은 교육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울 시내 코딩과목의 월평균 교습비는 29만 6,000원. 강남·서초지역은 37만 6,000원으로 집계됐다. 사교육비가 가장 많이 드는 수학과목의 월평균 교습비 29만 1,000원을 뛰어넘었다. 그런가 하면 3일에 90만원짜리 코딩캠프도 등장했다. 미국에 가 실리콘밸리 등을 돌아보고 오는 수백만원대 캠프도 있다.
이런 학원들을 통해 학생들은 낯선 명령문과 복잡한 문법을 외운다. 처음에는 재미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복된 암기식 교육으로 코딩은 점점 ‘재미없는 과목’이 된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을 일컫는 말)에 이어 ‘코포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프로그래밍은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교육은 기술을 이해하고, 인류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방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코딩을 위한 코딩’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딩은 컴퓨터와 대화하기 위한 언어다.
그럼에도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코딩이 활용되면 곤란하다. 코딩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SW 업계 한 관계자는 “SW만 잘해서 대학을 가겠다는 학생들은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보다 입시를 위한 공부에 급급할 수밖에 없다”며 “코딩 자체를 잘못해도 잠재력 있는 학생을 길러내자는 SW 교육 취지가 왜곡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딩 교육은 디지털 세상을 보는 관점은 물론 정보윤리, 동료와의 협업 능력까지 여러 장점이 있다. SW 공교육이 미래 사회를 이끌 인재 양성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아갈 수 있도록 제도 안착을 위한 노력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홍봉희 부산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초등학생에게 C언어나 자바 등 어려운 언어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며 “필수가 아닌 교양 과목으로 가르치고 소질을 보이는 학생에게 그 길을 유도하면 된다”고 말했다.
각종 시험이나 평가를 최소화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재미있는 코딩’을 모토로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코딩에 지친 아이들’이 나와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수준에 맞는 가벼운 코딩은 놀이처럼 흥미롭게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전문교사 확보가 시급하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되지 않으면 사교육시장만 커진다.
이태욱 한국교원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결국 관건은 공교육이다. 공교육이 정상화돼야 처음 취지에 맞게 코딩 교육이 진행되며 사교육 열풍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