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투자증권의 독주체제로 이어져 온 발행어음 경쟁은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해소한 NH투자증권이 진출하면서 판도를 바꿨다. 다만 KB증권과 삼성증권은 발행어음 인가에서 다시금 발목이 잡히면서 유명무실한 초대형 투자은행(IB)이라는 타이틀만 지니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발행어음은 회사채 등 다른 수단보다 절차가 간단해 기업대출과 비상장 지분투자 등 기업금융에 활용할 자금조달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장점이 있다.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200% 한도 내에서 만기 1년 이내 기업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모집할 수 있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요건을 갖춘 대형 증권사 5곳(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대우, NB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을 초대형 IB로 지정했다. 이중 업계 최초로 단기금융업 인가를 취득한 한국투자증권에 이어 지난 6월 NH투자증권이 2호 사업자로 진출했다.
◇ 한투 2조7000억·NH 8000억 조달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말 제10차 정례회의를 열고 NH투자증권의 단기금융업 인가 안건을 의결했다.
NH투자증권은 현재 자기자본 약 4조8000억원 기준으로 최대 9조6000억원까지 단기 어음을 발행할 수 있게 됐다. 1년 만기 금리는 세전 연 2.3%로 한국투자증권과 같은 수준으로 설정했다. 적립식 발행어음인 ‘NH QV적립형 발행어음’은 세전 연 2.50%로 출시해 리테일 경쟁력을 갖췄다.
‘NH QV 발행어음’은 지난달 2일 출시 이후 한 달간 총 8500억원을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NH투자증권은 올해 3개월 안에 1조원, 연말까지 1조5000억원 규모로 발행어음을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속도 조절 전략으로 운용 마진을 확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NH투자증권은 기업금융, 부동산 등 수익성 있는 자산들 위주로 선별하고, 운용 규모가 일정 수준 확보된 이후에는 수익성 제고와 기업금융 투자 확대를 위해 사모펀드(PEF),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벤처캐피탈, 메자닌 등으로 운용영역을 넓혀 나갈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첫 번째 발행어음 상품인 ‘퍼스트 발행어음’을 내놨다. 5000억원 규모의 발행어음은 출시 이틀 만에 완판되는 성과를 거두고 2차 판매까지 돌입했다. 이달 초까지 발행된 발행어음은 2조7000억원이다. 올해 발행어음 목표액이 4조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 이상을 채운 셈이다.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실질 마진은 1.5% 수준으로 회사채 위주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초 조달 잔액의 61%가량을 기업대출 및 A급 이하 회사채 등 기업금융 관련 자산으로 운용했다. 나머지 17%는 부동산금융자산, 19.5%는 현금 및 예치금 등 유동성 자산에 투자했다.
이 기세를 몰아 올해 5조원 규모의 발행어음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투자증권이 연말까지 5조원을 조달할 경우 올해 총 350억원에서 500억원의 이익이 기대된다고 내다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내년 6조원, 2020년까지 8조원으로 발행어음 규모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 IB 시너지·유동성 리스크 ‘양립’
증권사들이 과거 위탁매매 수수료 위주의 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신규사업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여념이 없는 가운데 발행어음은 대형사들의 추가적인 사업기회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업계 최초로 업무를 개시하고 시장을 선점한 메리트를 기반으로 수익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다.
NH투자증권은 후발주자로 등장하긴 했지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IB 부문에 시너지를 더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실제로 발행어음으로 조달된 자금으로 기업금융이나 대규모 브릿지론에 활용하는 등 IB와의 연계성을 높이고 있다. IB 딜 수요에 맞춰 추가적인 자금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발행어음 사업은 신규사업 기회 확보 및 수익구조 다각화라는 기회 요인과 대손위험 확대, 유동성 리스크 확대라는 위험요인이 양립한다. 여기에 업무 초기인 현재 시점에서는 위험투자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수익개선을 통한 자본축적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나타난다.
이재우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신규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리스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그간의 업무영역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업기반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