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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빚 덫에 갇힌 서민경제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기사입력 : 2016-11-11 20:33 최종수정 : 2016-11-11 20:38

김의석 금융부장 겸 증권부장

가계빚 덫에 갇힌 서민경제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한국 사회란 것이 내게 빚을 권한다오. 알았소? 팔자가 좋아서 한국에 태어났지, 딴 나라에서 났다면 대출이나 받아볼 수 있겠나….”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 나오는 남편의 대사를 조금 고쳐봤다. 1921년 소설이지만 '술' 대신 '빚'이나 '대출'을, '조선' 대신 '한국'을 집어넣으면 지금의 현실과도 얼추 들어맞는다.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 시대에 힘입어 사회 이곳저곳에서 빚을 내도된다는 시그널이 빗발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가끔씩 지상매체에서 갓 때어난 신생아부터 고3 수험생, 병석에 누워있는 할아버지까지, 경제력이 있건 없건 우리나라 국민 한 명당 '-2400만원'이라고 찍힌 마이너스 통장을 갖게 됐다는 소식을 전한다. 4인 가족이라고 가정하면 한 가구당 이미 1억원에 육박하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매킨지(McKinsey)는 우리나라를 세계 7대 가계부채 위험국으로 분류했고, OECD는 ‘가계부채(Household credits outstanding) 때문에 한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11일 이주열닫기이주열기사 모아보기 총재 주재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1.25%로 동결하면서 지난 6월 사상 최저 수준인 1.25%로 내려간 이후 5개월 연속 같은 수준에 머무르게 됐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계부채 부담과 미국 대선 이후 불투명해진 국제 금융시장 상황 등이 기준금리 동결 결정의 배경으로 풀이되지만 문제는 가계부채 규모는 급속도로 커지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 증가 속도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 빠른 증가세의 가계부채 '블랙홀(Black hole)'이 우리경제를 다 빨아들일 지경이 됐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저렴한 금리로 돈 빌려 줄 테니 집 사라’고 감언이설(甘言利說)로 부추기는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정책이 가계빚 폭증의 '방아쇠' 역할을 한 만큼, 그 총에 맞아 죽는 건 다름 아닌 돈 없는 우리네 서민들일 것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만 해도 경제 회복세의 발판이 됐던 가계가 과도한 빚더미에 짓눌리면서 향후 경제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부터 내년 말까지 5년간 가계 빚은 496조원 불어나 노무현 정부 5년(200조7000억원)과 이명박 정부 5년(298조4000억원)의 증가액을 뛰어넘게 된다. ‘가계부채 해결’을 대선 공약 1호로 내세웠던 현 정부의 부채 관리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그 결과 가계부채 위험 수준이 9년 6개월 만에 국제적인 평가 기준으로 '주의' 단계에 도달하게 됐고, 민간부채 증가율로는 주요 19개국 가운데 3위 수준에 달했다.

무엇보다 이자부담이 높은 제2금융 쪽으로 옮겨가면서 부채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 증가속도는 2013~2015년간 연 평균 8.2% 중가 속도를 유지해오다 올들어 13%대 증가로 가속도가 붙은 상황이고 이 가운데서도 상호금융권이 무려 13.6%의 증가를 보여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용자들이 주로 신용도가 낮은 서민층이나 다중·고액 채무자가 많다는 점에서 금리가 올라가면 채무불이행자가 대량으로 발생할 수 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도 제2금융권인 대규모 대부업체가 파산하면서 시작된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부채에 대해 매년 내야 하는 이자만 40조원에 이르니 소비 또한 원활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도 말이다.

여기에 경제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더욱 힘겨워지고 있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고소득층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재산이 불어나는 반면 경기 위축 등으로 돈 나올 구멍이 막힌 저소득층 서민들은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 속에서 빠지면서 저신용자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서민들에게 은행 문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이들은 제 2금융권 고금리의 돈을 빌려 쓰면서 약탈적 금융부채로 고통 받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양극화를 가속화시켜 경제는 물론 갈등으로 사회적 혼란을 초래 할 수 밖에 없다.

기자가 만난 금융권 관계자들도 대부분 주택담보대출보다 생활자금대출, 즉 저소득층의 비은행권 대출을 더 우려된다고 걱정한다. 이들의 다른 특징은 다중채무자(비은행권 내 3건 이상 대출 보유자)가 많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빚이 있을 경우 빚에 대한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두 곳에서 연체가 되면 한 달 내내 빚 독촉(督促)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기면 가정 경제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고, 이런 가정이 많아지면 서민경제도 휘청거리게 된다.

경기악화가 지속되는 작금의 상황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부실 시한폭탄인 셈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잇따른 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비심리는 예년 수준으로 올라서지 못하고 빚만 쌓여가는 형국이다. 서민경제의 '풍전등화'가 아닐 수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만약 지금과 같은 가계빚 증가 속도가 지속된다면 '-3000만원'이라고 씌어있는 마이너스 통장이 우리 손에 쥐게 될 것이다.

경기 부양책이 만병통치약(萬病通治藥)은 아니다.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국민들 손에 하나씩 쥐고 있는 마이너스 통장이 보이지 않는가. 무엇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국민적 공분이 증폭되는 추세여서 밑바닥 서민경제에 미칠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되지 않아 고민이 깊어진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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