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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중개 무거운 책임 아는지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기사입력 : 2015-05-06 22:22 최종수정 : 2015-05-06 22:47

[기자수첩] 금융중개 무거운 책임 아는지
“금융조합을 털리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얻어 맞은/ 남편은 무우 구덕에 돌아와 숨었다/(중략)/ 찜질에 닳아/ 쑥물을 흘리며 구덕 속으로 떨어지는 해/ 땅은 흐느끼고 피는 마르고/ 한밤중 떨리는 입술로 짚벼늘을 헤쳤을 때/ 이마에 서리를 인 채/ 남편은 시퍼런 백발이 되어 있었다”

이시영 시인이 1973년 썼다는 <매형>이라는 작품이다.

지면 사정상 중략했던 부분엔 가을이 지나 겨울이 와서도 빚쟁이들의 추적과 괴롭힘은 계속됐던 상황 묘사가 처절하다. 무 구덕에 들기 전 혈기 방장했던 사람이 불과 반 년 사이 폐인이 되다 못해 백발에 이르게 했던 비극적 사태가 누구 때문이었는지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식민지 시절 농촌 경제 깊숙이 파고들어 체계적인 수탈을 수행할 목적으로 활성화 시켰던 금융조합은 아니었을 것이고. 지금 농협의 전신이었던 농업은행이 등장했던 시절 금융조합에서 대형 자금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참변을 겪은 가족사를 담아 낸 것으로 보인다.

넉자로 말해 ‘자금중개’, 두 자로 불러서 ‘금융’이란 공동의 이익을 함께 꾀해보자고 약속한 조합원끼리의 금전이건 불특정 다수가 누군가는 돈을 내놓고 누군가는 빌려 가는 자금중개이건 원금 손실이 나면 절대 안되는 무거운 책임을 지는 업무다.

특히 불특정 다수로부터 예치 받은 돈으로 다시 불특정 다수에게 대출 또는 적절한 곳에 투자했다가 나중에 돈 맡긴 사람에겐 원금에 수익을 더해 돌려주고 이 때 일부 수익을 이자나 수수료로 챙겨서 유지 운영하는 예금취급 금융조직이라면 어떻겠는가.

매형이 주범이 아니라는걸 얄면서도 채권자들은 평생 피땀이나 다름 없는 제 돈이 날아간 결과에 허리가 부러지지 않을 만큼 끔찍한 분풀이를 가했고 자금회수가 안됐기에 독촉과 해코지를 지속한 셈이다.

저축은행이 파산해서 예금보호 한도 만큼만 원금을 건졌던 사람들, 아예 노후자금 대부분을 후순위채에 걸었다가 무일푼으로 전락했다는 사람들, 사회시스템이 법치화된 탓에 몽둥이를 들고 직원들을 폭행하는 사태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인터넷 뉴스 게시판에는 다 때려 죽여야 한다는 댓글이 등장하지만 현실화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금융업을 한다는 것이 가벼운 일인가? 간편결제 업무조차 이용자끼리나 편하게 끝내는 것이지 궁극에는 최종 결제 단계에선 해당 실물을 누군가는 가져다 주거나 보증해줘야 완전히 끝난다. 전통적 지급결제 방식 대신 편리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데 누가 돈을 댈 것인지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포털에 배너광고 달 듯 해서 유지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핀테크 바람이 불어오면서 ICT업계는 물라도 금융계에선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다. 실체도 불분명한 핀테크를 위해 출자와 투자 환경을 정비하는 정부당국의 움직임에 대해 이를 테면 지친 눈길로 지켜 본다고나 할까.

NH투자증권은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금융규제와 온라인 IT규제 둘 다 벗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지금도 금리나 수수료 수준을 통제하고 있는 금융당국이 금융계에 가하는 현행 규제수준과 완전히 다른 수준으로 바꿔야 하고 통신 및 IT산업 당국이 인터넷과 유무선 통신은 물론 방송 등을 이용한 영리행위에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는 규제를 대거 풀어야 활성화된다고 봤다.

쉬운 일인가? 그간의 행태에 비춰보면 불가능에 가깝다. ICT업체가 만들건 금융회사가 만들건 핀테크 업체는 금융관련은 물론 정보통신 관련 여러 법규가 형성한 그물을 ‘물’처럼 통과해야 할 지경이다. 게다가, 규제를 푼다고 장자에 나오는 ‘곤’이 붕새가 되어 구만리 날 듯이 크게 성공하리란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시인 박태일은 <장터거리 노래>라는 시에서 “세상만사 밝은 이치 돈이 들면 집이 서고 사람 들면 장이 서”는 법이라고 했고 “눈덩이 일수 월수 증권노름 집이 서면 돈이 불고 돈이 불면 총칼 나니 두 판 쓸이 나라노름”이라서 “에고 답답.”하다 탄식했다.

핀테크 돌풍이 나라에서 벌이는 노름판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가 성공시켰던 모델이라고 막연한 기대에 빠져서 따라 하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누가 세웠건 신생 핀테크 업체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고 기존 업계에 일일이 옥죄어 놓은 규제를 두고 핀테크 업체에 특혜를 주는 식은 더욱 곤란하다. 단순 지급결제가 아니라 핀테크 업체가 자금중개 또는 투자까지 겸한다면 최소한의 예금자보호와 지급준비능력은 물론 금융경제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고 정상 영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새로운 카드업자나 대부업자 등장에 그칠 노릇이라면 금융개혁이나 혁신이 아니라 아니함만 못한 대실패로 남을 공산이 짙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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