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유정보 자체판단하고, 보유 이유 설명해야
정부는 그동안 금융사가 영업에 필수적이지 않은 과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장기간 보유했던 문제를 지적하며, 수집정보 항목을 기존 30~50개에서 6~10개 수준으로 줄이고 거래종료 후에는 일정기간 보관이 필요한 식별·거래정보를 제외한 신상정보는 3개월 이내에, 보관정보의 경우에도 거래종료 후 5년이 경과하면 원칙적으로 모두 파기토록 했다. 단, 10년간 보관해야하는 투자자 계약관련 자료 등 법률상 보존의무가 있는 정보나, 보험금 지급으로 계약이 종료된 후 발생할 수 있는 상해보험의 후유장애 보장 등을 위한 정보는 제외토록 했다.
문제는 보험은 계약기간이 길기 때문에 과거 자신이 어떤 보험에 가입했는지 잊고 있는 경우가 많아 보험금 청구가 늦어지거나, 실효된 계약이 부활되는 경우, 혹은 계약이 해지된 지 한참이 지난 후 보험금이 필요한 시기가 됐을 때 과거 부당하게 계약이 해지됐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 등이 비일비재한데, 이와 관련해 당국에서 명확한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위 서민금융과 최용호 과장은 “보험업권의 계약관계가 2000종이 넘는데, 금융위에서 이를 일일이 다 판단할 수 없다”며, “회사가 알아서 보유정보 범위를 판단하고, 이를 왜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지를 증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단 나중에 검사 시 문제가 있거나 고객의 정보가 유출됐을 경우 강력히 처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금융사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을 법령에 반영하는 이외에도 자체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부분에 자율성을 부여해 그에 따른 책임을 엄중하게 물도록 한다는 것.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최종책임이 금융사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실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부작용들을 보험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자율성’ 보이지 않는 족쇄될 수도
업계 한 관계자는 “파기 정보의 기준이 따로 정해지지 않고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보험사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 수 있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를 떠안은 격”이라며, “만약 보유정보의 필요성을 설명해도 당국에서 타당하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더 큰 제재가 올 수 있는 만큼 일정부분의 가이드가 있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말했다. 즉 검사당시 검사자의 기준에 따라 보유한 정보가 문제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보험계약은 상법이나 전자금융거래법상에 명시되어 있는 정보파기 기준인 ‘거래기록’과 성격이 다른데다, 개인정보보호법 상에도 정보보유기간 등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명시돼 있지 않아 대부분의 보험사들이 해지되거나 실효된 계약이라고 해도 파기하지 않고 거의 영구적으로 고객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보험사들이 요율산출, 고객관리 등의 명목으로 정보를 파기하지 않고 계속 보유하다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개별사의 문제가 아니라 보험업권 전체의 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이 커진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상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법적인 맹점을 이용해 고객정보 파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필요한 정보이긴 하지만 이러한 상태로 유지되다가 오히려 제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계약정보 모두 가지고 있어야”
그러나 보험사들은 가입권유 단계에서 쓰인 정보를 제외한 계약정보는 모두 보유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요율 산출을 위한 정보 이외에도, 해지되거나 이미 실효된 계약이라고 할지라도 차후 가입시 언더라이팅을 위한 자료로 사용하거나 혹은 계약의 부활 및 민원발생 등 어떠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
업계 관계자는 “주계약 만료 후 후유장애가 발생하는 것 이외에도 보험이 있는 줄 모르다가 나중에서야 알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경우도 많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한참 후에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특히 보험금 사고조사 등을 통해 고지의무 위반으로 계약을 해지했는데, 몇 년 후 적법치 않게 계약이 해지됐다며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 정보를 파기할 경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가입권유 단계에서 사용된 정보의 겅우 삭제하는 것은 맞지만, 계약정보의 경우 다양한 변수가 생길 수 있고 해지나 계약실효 이후에도 보험금 청구나 부활신청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계약정보를 파기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업권의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나 보험정보 파기와 관련한 명확한 법제화가 시급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미리내 기자 pannil@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