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는 저성장을 벗어나기 어렵고 미국 양적완화 축소를 필두로 글로벌 유동성이 쪼그라든다면 외국 자본 이탈 내지는 대외조달 비용상승에 따른 금리 상승이라는 이중고가 확실시되고 있다. 1997년 이후 최악의 경영난관이 닥치려는 때 차 떼고 포 뗀 채 냉혹한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생존해야 하는 백척간두에 바짝 다가가고 있다는 형편이다.
◇ 민영화 처리 방향이 아니라 금융모델 해체가 핵심
둘 모두 처음엔 대한민국 금융사에 새로운 획을 그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새 금융그룹 모델 구축의 첨병이었던 한 때의 영화가 아련해 보이는 점마저 흡사하다. 정부는 우리금융지주 조속한 민영화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23일 경남·광주은행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이 예정돼 있다.
기업은행이 막판에 가세하면서 경남은행 인수전의 경우 4파전 이상의 흥행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여기다 정부는 우리투자증권과 일부 비은행자회사 매각을 따로 진행 중이다. 사실 경남·광주은행 매각까지만 놓고 보면 국내 제 1호 금융지주인 우리금융그룹 사업라인 효율화에는 득이 더 클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오는 10월 21일로 예정돼 있는 우리투자증권 예비입찰이 성공리에 진행된다면 그것은 은행계 금융지주 해체를 뜻한다. 이 곳에서 민영화 조속 추진은 원조 은행계 금융지주 해체로 직결된다.
산은금융지주는 반대다. 정부는 대우증권 매각을 잠정유보하고 대부분의 자회사를 매각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무대를 주로 공략하는 CIB(기업금융기반 투자은행) 모델로 발돋움 하기 위해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을 주축으로 캐피탈, 자산운용 등에 이어 사업라인을 확대해 왔다. 가장 최근엔 생명보험까지 비은행 영역을 키운 상태지만 2009년 지주사 출범 5년도 안돼 해체 작업이 착수된 상태다.
◇ 그룹 해체 외통수 경영으로 닥쳐올 난관 견딜 수 있나
이와 관련 은행권 전직 고위 임원 A씨는 2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리금융지주를 출범할 때는 분명히 유니버셜뱅킹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 금융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기대했던 것인데 왜 갑자기 공적자금의 조속 회수라는 목적에만 함몰된 채 종합금융그룹 10여 년의 역사마저 파 묻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뜻 있는 금융계 관계자들과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산업에 닥치고 있는 총체적 위기를 감안하면 우리금융과 산은지주 모두 민영화 정책방향이 아니라 금융산업의 안정성과 시장 위기 완충력 활용에 집중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이들 두 그룹은 농협, 기업은행 등과 함께 시스템 리스크 차단을 위한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외국계 비중이 높은 은행들이 포기한 부분까지 부담하면서 시장 안정 역할에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들 그룹이 지주사 체제를 해체해 가면서 은행만 남기는 외길 수순으로는 자력으로 지금까지 맡아왔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쉽지 않다는 사정에서 우려가 싹트는 것이다. 국내 은행지주사 상반기 실적이 최종 집계된 가운데 이들 그룹의 경영지표는 국내 금융산업이 처한 상황의 전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양태를 드러냈다. 둘 모두 부실채권 규모가 V자를 그리고 있는 반면 이자부문 이익과 수수료 이익 등 핵심이익 규모가 부실채권 총액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등 경고 지수가 있다면 크게 오르는 중이다.
◇ 지금도 경영개선 요구되는데 대내외 이중고 폭발 땐?
특히 우리금융과 산은지주는 상당 수준의 경영개선 노력이 우선해야 할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우리금융은 고정이하 부실채권에 대한 충당금적립률을 은행권 평균 수준에 가까운 120%로 맞추려 했다면 상반기 적자가 불가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은지주가 비록 충당금 잔액을 7908억원 더 늘리는 결단 덕분에 3080억원 적자가 났다. 물론 이렇게 충당금을 쌓고도 부실채권에 대한 적립률은 132.16%로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이익이 크게 줄어든 우리금융과 지금은 엇비슷한 산은지주가 대외 불안요인이 본격 엄습하고 대내 저성장 이중고가 지속되거나 심해지면 취약성이 커지는 금융그룹이라는 사실 또한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들은 기업금융 비중이 높기로도 대표적이다. 기업부실이 심화된다면 연체율이 치솟고 부실채권은 늘어나며 이익은 또 줄어드는 일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청한 민간 연구기관 한 전문가는 “대우증권을 뺀 산은지주 비은행 자회사가 제대로 팔리느냐 마느냐에 앞서 핵심본체인 은행 경영마저 여건이 만만치 않은데 업무를 축소하고 정책금융전문 기관으로 전환한다면 현재의 부실과 앞으로의 부실을 흡수할 완충력은 어디서 찾을 것인지가 큰 숙제”라고 지적했다.
한 때 금융산업을 우리 경제 주력산업화 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했던 금융지주 모델이고 그 원조격인 우리금융과 CIB모델 금융그룹 맏이로서 국제무대 도전의 꿈을 키우던 산은지주에겐 당장의 위기를 돌파할 사업의 다양성도 조직의 안정성도 미래 비전의 명확함도 없이 그룹 해체와 당면 경영여건 악화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우는 전략 하나로 극복해야 하는 동병상련의 처지에 놓였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