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우 회장이 지난 1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도입하겠다고 밝힌 노후의료비보장보험은 장기저축성과 실손의료비보장을 결합해 노후의료비보장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여겨지는 상품이다. 젊고 소득이 있는 시기에 저축처럼 적립해 나이가 들면 본인부담의료비와 실손보험료로 지출하는 구조다. 이 상품의 도입이 주장된 배경은 현행 실손보험의 경우 갱신형으로 60세 이상 노령에 접어들면 보험료 부담이 급속히 높아지는 한계가 있어 경제활동기에 재원을 적립, 소득이 없는 노령기에 의료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상품개발의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고령화시대에 노후의료비를 보장하는 상품을 도입하겠다는 점에서 문 회장의 발언은 좋은 취지로 해석되지만, 그 배경엔 의구심이 든다는 게 생보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손보업계는 그동안 장기보험 기간제한(15년) 폐지 및 완화를 수차례 시도했는데, 초장기상품인 노후의료비보장보험의 도입도 그 일환이란 것이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문 회장의 발언은 원론적인 취지에선 동감하지만, 아직 영역이 정해지지 않은 상품을 도입하겠다고 공표한 것은 좀 아닌 것 같다”며 “그 배경엔 저축성보험 기간을 늘리려는 손보사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보험연구원 조용운 연구위원에 따르면, 노후의료비보장보험은 필연적으로 장기저축성보험의 성격을 가지며 현행규제 하에선 손보사의 취급에 한계가 있다. 노후의료비를 보장하려면 보험기간 15년으로는 부족하기에 노후의료비보장보험은 15년 이상의 초장기상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 연구위원은 “노후의료비보장보험은 15년 보험기간으론 효용성이 적다고 봐야한다”며 “손보사가 이를 취급하겠다면 보험기간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보협회장이 노후의료비보장보험을 도입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에 대해 생보업계가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 상품은 장기보장성과 장기저축성이 혼합돼있어 생·손보 영역분쟁을 유발하는데다, 손보사가 이를 취급하려면 15년이란 제한을 어떻게든 우회해야한다. 생보업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 과정에서 손보사의 저축성보험 기간제한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생보사 관계자는 “15년 마지노선이 깨지면 정말로 생·손보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며 “손보사들이 15년 이상의 장기보험도 취급할 수 있게 되면 생보사들로선 고유시장을 잠식당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손보업계는 금융위원회에 15년으로 제한된 저축성보험 기간의 폐지를 수차례 요구한 바 있다. 장기저축성보험의 경우, 대부분 복리체계라 운영기간이 오래될수록 수익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기간이 긴 상품이 유리하다. 또 보험은 가입 후 10년간의 보험료에서 사업비를 공제하는데, 손보사의 장기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15년마다 재가입할시 10년간 사업비를 중복으로 내야하는 단점이 있다. 이에 손보업계는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내세워 장기저축성보험처럼 생보와 동일한 성격의 상품엔 동일한 규제를 할 것을 건의해왔다.
반면 금융위는 리스크관리 등을 문제 삼아 이를 계속 거절해왔다. 15년 이상의 장기상품을 취급한 적이 없는 손보사들이 리스크를 관리할만한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금융위 보험과 전치활 사무관은 “손보협회장의 발언은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며 “아직 장기보험 기간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얘기도, 논의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원충희 기자 wch@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