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파라치 제도는 4만명의 카드 설계사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제도이다. 이동 통신사가 지급하는 경품이나 현금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이다.” 전광원 전국신용카드설계사협회장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일명 ‘카파라치’ 제도를 둘러싼 금융당국과 카드모집인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가 신용카드 불법 모집 신고 포상제를 12월 1일부터 운영할 방침이라고 밝히자, 카드모집인들은 생존권을 위협당한다며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은 카파라치 제도가 도입되면 많은 카드 모집인들이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카드모집인들이 함정단속 및 협박을 당할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많다고 지적한다.
◇ 오는 12월부터 불법 카드모집인 신고포상제 시행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카파라치’(카드+파파라치) 제도를 마련, 다음 달 1일부터 운영한다고 밝혔다. 카파라치는 신용카드 불법모집의 증거를 포착해 여신금융협회, 금감원, 각 카드사에 신고하면 심사를 거쳐 포상금을 주는 제도다.
카파라치가 신고할 수 있는 불법 모집 유형은 △길거리 모집 △과다 경품 제공 △타사 카드 모집 △미등록 모집 △종합카드 모집 등 크게 5가지다. 길거리 모집은 공원, 역, 터미널, 놀이동산, 상가, 전시관, 학교 등 여러 사람이 다니는 장소에서 카드 회원을 모으는 행위를 말한다. 과다 경품 제공은 회원 가입의 대가로 카드 연회비의 10%를 넘는 현금, 상품권, 입장권 등을 주는 것이다. 길거리 모집과 과다 경품 제공을 신고한 카파라치는 건당 10만원씩 포상금을 받는다. <표 참조>
타사 카드 모집은 ‘1사 전속제’를 어겨 자신이 속하지 않은 카드사의 회원을 모으는 경우다. 미등록 모집 행위를 신고하는 것과 더불어 포상금은 건당 20만원이다. 카파라치 1명이 이들 4가지 불법 행위를 신고해 받을 수 있는 포상금은 연간 100만원이 한도다.
모집 질서를 가장 심각하게 해치는 종합카드 모집 조직(일명 ‘종카’)의 신고 포상금은 특별히 200만원으로 높다. 연간 포상금 한도는 1000만원이다. 카파라치 신고는 사진, 동영상, 녹취록, 가입신청서 사본, 경품 등 불법 모집 증거를 확보해 20일 안에 해야 한다. 신고서는 서면·우편·인터넷으로 제출하면 된다.
◇ 카드모집인, 수당 줄고 규제 강화에 생계 직격탄
이처럼 금융당국이 내달부터 카파라치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지만 벌써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우선 카드모집인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생존권이 위협 당한다며 헌법소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카드모집인들의 모임인 전국신용카드설계사협회는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카파라치 제도와 관련해 카드설계사들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최소한의 생존권과 영업권을 위해 헌법소원에 나선다”고 밝혔다.
전광원 전국신용카드설계사협회장은 “카파라치 제도의 도입은 우리 4만 설계사의 목숨을 거둬가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며 “이 제도를 폐지하지 않으면 거센 물리적 저항을 끝까지 한다는 것을 금융위, 금감원 당국자들에게 엄중 경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회비 조건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봐야 한다”며 “이동통신사의 전화 가입시 지급하는 현금 및 경품은 상상을 초월하는 등 동일적용대상법의 업종 간에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카드모집인들은 거리 영업과 관련해서도 도로의 의미를 너무 추상적으로 유추 해석해 악용의 소지가 너무 많다며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우리 4만 설계사는 수긍이 가는 기준을 제시해 주길 바라고, 도로가 아닌 영역에서의 영업 행태 등에 대해서는 단속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카드사로 하여금 카파라치 재원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실행하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카드 불법모집은 사실상 카드사에는 회원 확보수단으로 도움이 된다. 따라서 카드사들은 포상금을 부담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불법모집인을 잡아들일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여신금융협회가 불법모집인을 잡는 단속을 나갔을 당시 단속 정보가 미리 새서 그냥 철수해야 했던 일도 있었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 카파라치 제도가 시행되겠지만 어느 정도 실효성이 있으며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카파라치의 경우 한해 수천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전문 신고꾼도 등장하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다가 2003년 초 폐지된 바 있다.
◇ 카드 모집인 올해만 1만명 감소
이런 가운데 카드시장이 포화되면서 회원을 새로 모집하는 게 쉽지 않아 수입이 크게 줄어들고, 카드모집인 수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된 카드모집인수는 2009년 3만5000여명에서 2010년 5만3000여명으로 대폭 증가한 이후,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까지 5만여명 수준을 유지한 후 9월말 현재 1만명 이상 줄어든 4만1000여명으로 나타났다. <그래프 참조>
신한카드는 지난해 4332명에서 9월말 현재 3678명, 현대카드는 같은 기간 7800명에서 7100명으로 줄었다. 삼성, KB국민, BC 등 대다수 카드사들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지금과 같은 카드모집인 이탈 현상이 지속될 경우 연말에는 4만명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카드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불경기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 보유량이 4.9장에 달한다. 또 1년 이상 쓰지 않은 휴면카드가 경제활동인구 1인당 한 장꼴인 2400만장에 달한다.
실제로 여신금융협회에 공시된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말 기준 전업계와 은행계 신용카드사의 휴면 신용카드는 총 2382만8372장으로 나타났다. 전업계 카드사 가운데 신한카드가 509만장으로 가장 많았다. 삼성카드(285만장), 현대카드(281만장), KB국민카드ㆍ롯데카드(249만장), 하나SK카드(173만장), BC카드(4292장)가 뒤를 이었다.
은행계 카드사 가운데는 우리은행(171만장)과 NH농협은행(144만장)이 비교적 많았다. 외환은행(95만장), 기업은행(70만장), 씨티은행(64만장), 대구은행ㆍ스탠다드차타드은행(20만장)이 뒤를 이었다. 모집인 수수료 등을 포함한 카드 1장당 평균 발급 비용을 1만5000원으로 계산하면, 휴면 신용카드로 버려지는 돈은 3600억원인 셈이다.
여기에 카드사의 유지비용까지 합치면 4000억원이 넘는다. 휴면 신용카드의 수만 줄여도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으로 카드사들이 경영난을 호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 간에 치열한 시장 점유율 경쟁이 벌어지면서 그동안 과다 발급된 경향이 있다”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의 지갑 속에 평균 1~2장 정도는 장롱 카드인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기존 카드도 사용액을 줄이고 있다. 카드사들은 수익이 줄어들자 카드 모집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발급만 해온다고 모집인에게 수당을 주는 게 아니라 새로 카드를 발급한 고객이 일정액 이상 사용해야만 수당을 주도록 방침을 바꾸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집인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들고 있다.
현대카드는 모집인에게 지급하는 총수당의 절반 정도를 발급수당으로 지급하던 것을 30%로 줄이는 대신, 이용수당 비중을 30%에서 50%로 높이는 방식으로 수당 체계를 변경해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KB국민카드도 6대4이던 발급수당과 이용수당의 비중을 올해 4대6으로 변경했다.
〈 신용카드 불법모집 행위 유형별 포상금액, 불법모집 단속반 변경 전·후 〉
(자료 : 금융위원회)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