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적 과제 삼되 정부는 지원만 자율경영 전제돼야”
우리금융그룹 일괄 매각을 위한 예비 입찰이 오는 29일로 다가온 가운데 여전히 산은금융지주가 유력한 후보로 꼽히면서 초대형 합병의 실익과 장단점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다. 주요 쟁점과 관련 대표적 논자들의 입장을 연이어 싣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한다.<편집자>
“이미 굵직한 합병을 거쳐서 대형화된 민간 시중은행들이 지난 10년 동안 무얼 했습니까?”
날선 물음부터 던진 인천대 이찬근 교수(동북아국제통상학부·사진)의 자문자답은 “주택담보대출을 위시한 국내 소매금융시장과 우량 중소기업 대출, 신용카드 등 과당경쟁만 벌였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독과점화의 와중에 경쟁은 오히려 치열해졌다는 점에서 경제학의 통설을 뒤집는 재미난 일이 벌어졌는데 따지고 보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 교수는 과거로 과감히 돌아가서 현재와 이어 보는 접근법을 두 번 썼다.
“우선, 10년 전 옛 국민은행과 옛 주택은행이 합병했을 때로 돌아가 봅시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한국현대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라고 치켜세우며 금융산업 발전에 일대전기가 마련된 것처럼 기대를 모았는데 과연 결과가 그렇습니까?”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하나은행이 서울은행을 인수합병한 것도 대형합병이었지만 이들 민간 시중은행들은 태생적으로 국제화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 교수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민간 대형시중은행 대주주가 해외 기관투자가 등 외국자본입니다. 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외국인 주주 이익극대화 원리에 충실히 한다면 국내 은행의 국제화는 불합리한 선택이고 택해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에 국민·주택 합병 10년이 지나도록 국제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아울러 그는 반문한다.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은 곧바로 환리스크와 컨트리리스크 등 막대한 리스크를 떠 안는 일인데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비즈니스를 벌여 놓은 해외기관투자가들이 국내 시중은행 주요주주로 참여해 있는데 그런 위험한 자산 운용에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인력과 자본력을 따지기 전에 시중은행 지배구조로는 국제화가 불가능하다고 그는 확신한다. 그럼에도 “국제화는 대한민국 금융산업이 반드시 수행해야할 임무”라고 그는 규정한다.
“국제화가 뭘까요? 우리 경제가 제조업 수출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흔히 말합니다. 하지만 금융자본이 성장성 높은 해외 시장에 나가서 대출을 해주고 자본투자를 해서 그 성장의 열매를 이익으로 나눠 갖는, 수준 높은 금융국제화를 구현할 만큼 준비를 갖춘 국내 금융회사는 아직 없어요”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70~80년대로 되돌아 간다. “세계 무대에서 1,2등을 다툰다는 포스코, 삼성, LG, 현대차가 어떻게 세계적 기업이 됐는지, 성장모델을 되짚어 보지도 않고 막연히 국내 금융회사더러 해외에 나가 돈을 벌어오라고 등을 떠미는 것은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국내에서 확보한 초과이윤으로 해외 수출과정에서 발생한 역마진을 감당하는 방식으로 성장한 것이 대한민국의 국제적 제조업 브랜드”라는 사실에 그는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원리에만 맡긴다면 대한민국 금융산업은 절대로 진정한 국제화에 뛰어들 수 없어요. 국가적 과제라면 더욱더 공적인 주체가 해외진출 리스크를 견디면서 풀어가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 연장선에서 그는 산은지주와 우리금융이 통합하는 과정에서 100% 민영화가 아니라 정부가 20~30%의 지분을 갖고 나머지는 국내외 투자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업공개를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주장한다. “국제화 미션 수행이라는 특수성을 감내할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어 “국내 상업금융 베이스를 확보하고 우리은행과 산업은행, 그리고 대우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다른 은행이나 증권사보다 우위에 있는 역량을 하루빨리 극대화해서 국제화하는 길이 지름길이고 금융산업 국제화의 공적 역할 수행이란 점에서 산은지주와 우리금융 통합은 의미 있는 모델”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그는 초대형은행으로 바꿔주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전략산업화한다는 큰 틀에서 뒷받침하면서 제대로 하는지 살피되 사실상의 관치를 꾀하면 안되고 산은이나 우리금융 내부 인력과 기업문화 역시 환골탈태하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유 또한 국내 대형화를 바탕으로 한 국제화엔 필수적 선결과제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구성원과 이를 지원해줘야 할 정부 및 사회인프라를 겨냥한 듯 그는 끝으로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국제화 성패여부는 인력과 조직문화, 경영 의사결정 과정 등 전분야에 걸쳐 DNA를 확 바꾸는 수준의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