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근감사제 폐지유력
정부가 금융회사 상근감사제도를 폐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감독원 출신 낙하산감사에 따른 ‘부실감사’에 대한 부작용이 커지면서 투명경영강화 차원에서 도입된 상근감사제가 제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영국, 미국, 독일은 감사위원회 전원이 비상근인데, 감사위원회를 두고 거기에다 상근감사를 따로 두니 골치아픈 문제가 생긴다”며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며 상근감사제의 폐지를 내비쳤다.
최근 민간전문가, 관계부처차관 등으로 구성된 ‘금융감독혁신T/F’에서 논의중인 금융감독 및 검사선진화, 금감원 업무 및 관행 혁신방안도 상근감사제도의 폐지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상근감사제 폐지방침으로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쪽은 증권사다. 금융업계에서 금감원출신 감사를 가장 많이 두고 있는데다, 감사를 승인하는 주총시즌과 맞물려 이들의 진퇴를 결정해야 할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영업중인 46개 증권사 가운데 금감원 출신의 감사(상근)를 둔 곳은 26개다. 올해 감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증권사는 대신, 동부, 신영, 한국투자증권 등 13개로 절반을 차지한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상근감사제 폐지방침을 밝혔으나 금감원출신 감사임명자격이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증권사들이 ‘교체’, ‘중도퇴진’, ‘유임’ 등 결정을 내리기기가 쉽지않다는 점이다.
교체 쪽으로 방향을 튼 증권사를 보면 대신증권은 윤석남 전 금감원 회계서비스국장을 상근감사로 선임한다고 밝혔으나 지난 9일 정정공시를 통해 김경식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 상무이사로 감사후보자를 재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최근 상근감사제 폐지와 관련 경영상의 부담이 우려돼 이사회에서 선임된 감사위원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을 밝혔다”며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신임 감사후보자를 재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도 6월초로 연기된 주총에서 윤진섭 전 금감원 신용정보실장이 임기가 만료되지만 연임, 교체 쪽으로 논의가 진행중이며 다음주초에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트레이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도 기존 감사의 연임방침을 철회하거나 임기가 남아도 후임을 물색하는 등 교체를 준비중이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석진 감사위원을 연임한다는 방침이다. 김위원은 금감원 증권감독국 경영지도팀장 출신으로 뉴욕사무소 파견 근무 당시 김남구닫기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출신에 관계없이 능력이 우선된다는 게 기본방침”이라며 “능력, 전문성을 갖춰 연임하는 것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기업경영에 부담, 주총앞두고 ‘혼란’
상근감사제 폐지방침만 밝혔을 뿐 나머지 의사결정은 증권사에게 떠넘긴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만만치않다. 감사제도가 주총결정사항일 정도로 중요한 의사결정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를 코앞에 앞두고 제도를 변경하는 자체가 기업경영에 부담이라는 것이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상근감사제가 옳든 그르든 주총을 앞두고 논의하는 자체가 부담”이라며 “보수적인 금융업무의 특성을 감안하면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임에도 갑자기 개선안이 발표돼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상근감사제 폐지를 밝히면서 자격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아 결국 뒷짐은 증권사가 지게 됐다”며 “연임해도 교체해도 뒷말이 나올 것 아니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