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필이면 그 가방이 백화점에 진열된 것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건이 마음에 들기에 진열된 것이라도 가져오려했는데 꼼꼼히 살펴보니 여러 군데 흠집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탄 탓이리라. 종업원이 “본사나 다른 대리점에 수소문해서 새것으로 갖다 주겠다”고 한다. 2일 후면 집으로 배달이 된단다. 어쩔 수없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대금을 결재하였다. “꼭, 완벽한 새것으로 갖다 달라”고 당부하면서.
- 고객을 속이다니
이틀 후, 가방이 배달되었다. 반가웠다. 얼른 포장을 뜯어보니 은근히 풍기는 가죽냄새가 싫지 않다.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새것답게 반짝인다. 나무랄 데가 없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 안쪽을 살펴보다가 한쪽 벽에 붙어있는 지퍼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어! 이게 뭔가? 봉투가 있다. ‘종업원이 내게 보낸 감사 편지? 아니면 사은품 교환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내용물을 끄집어내 봤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동사무소(주민자치센터)에서 발급한 주민등록등본과 몇 가지 서류였다.
그렇다. 이건 누가 이미 사갔던 물건이다. 사용한 가방이라는 말이다. 아마도 뭔가 사정이 있어서 반품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쪽 주머니에 있던 서류를 깜빡하고 그냥 남겨둔 것이다. 반품 받았던 종업원도 그 안에 그런 것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리저리 추리할 것도 없이 진상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게 뭔가. 새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다른 사람이 반품을 할 정도라면 심각한 결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 수리를 해서 새것처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어쩐지 유난히 반짝이더라니! 반짝이는 것조차도 의심을 부채질하였다.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기분이 언짢다.
“이건 안 돼요. 기분 나빠서 사용할 수가 없어요. 더구나 일류 백화점, 일류 가방회사라는 데서 이럴 수가 없어요. 비싼 돈을 지불하며 백화점을 이용하는 이유가 뭔데요. 믿을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고객을 속이다니.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해요. TV의 고발프로에 신고해야겠어요. 고객만족 좋아하시네!”
아내의 논리는 고객만족을 강의하는 남편보다도 훨씬 명쾌하였다. 이런 경우 나는 기분이 묘해진다. 한편으로는 당연히 언짢지만, 한편으로는 쾌재를 부른다.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인용할 좋은 사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때도 백화점이었다. 마음에 꼭 드는 양복이 있어서 그것을 사기로 하였는데 세밀히 살펴보니 한쪽 어깨가 일그러지는 것이다. ‘운다’고 표현하는 바로 그런 형태다. 그런데 가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사이즈의 옷 역시 그것 한 벌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새 옷을 배달해 주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 배달된 것은 누군가 입었던 옷이었다.
이처럼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것 같은 곳에서조차 고객을 속이는 일이 적지 않다. 입으로는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얼렁뚱땅 물건만 팔아먹으면 된다는 인식이 짙게 깔려있다. 한심스럽다. 보험을 비롯한 각종 금융기관에서도 혹시 고객을 속이는 일은 없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 당신은 왜 그곳에 있는가?
고객을 속이는 건 슬픈 일이다. 속임을 당한 고객도 슬프고 고객을 속인 점원도 슬프고 점원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든 기업의 풍토도 슬프기는 마찬가지다.
고객만족은 단순히 고객만을 만족시키는 일이 아니다. 단지 그 목적만으로 고객에게 굽실대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얼마나 힘들고 초라하고 역겹고 때려치우고 싶겠는가? 고객을 만족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당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삶의 보람을 만든다는 ‘자기만족’의 철학이 있어야 진정한 고객만족이 가능하다.
그러려면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이 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내가 왜 이일을 하는가? 나의 가치와 보람은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일합니다. 일을 위해 채용된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라는 디즈니랜드 사원들의 철학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고객을 기만하는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