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외인 연속순매수, 유럽계 팔고 미국계로 사고
외국인 투자자가 최근 잇따라 순매수에 나서고 있다. 지난 11일 이후 5일연속 순매수에 나서며 그 규모는 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과정에서 코스피는 1700P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처럼 증시의 수급이 외국인에 의해 숨통이 트이면서 외국인의 귀환여부가 관심사다. 외국인의 순매수 기조가 확인되면 실적호조세의 훈풍을 타고 하반기 증시는 본격적인 상승장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이번 반등에서 눈에 띠는 건 매매주체인 외국인의 손바뀜이다. 겉으론 외인은 지난 5월 증시에서 약 6조원 정도 주식을 팔며 하락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속을 보면 상황은 다르다. 매도에 나선 주체들은 대부분 유럽계 자금들로 남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유동성 확보차원에서 주식을 팔은 경우가 많다.
실제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5월 한 달동안 영국 등 유럽계 자금의 순매도 규모는 3조9000억원, 케이만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지역 자금은 2조원으로 전체 외국인 순매도 자금의 각각 64%, 35%에 달한다. 남유럽재정위기로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의 대부분이 남유럽위기로 한푼이라도 아쉬운 유럽계 투자자들인 것이다.
반면 미국 등 북미계 순매수 자금은 전월 대비 1/10 가량으로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순매수기조다. 긍정적인 현상은 순매도물량을 쏟아냈던 유럽계 자금의 매도세가 문제의 진원지인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PIGS 국가들이 성공적인 국채발행으로 일단락되는 조짐이 보인다는 것.
한국투자증권 위세정 연구원은 “자금의 대부분이 유럽과 조세회피 지역의 투자자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외국인 수급 개선을 기대해 볼 수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저금리 기조로 인한 유동성 자금도 풍부하다”고 말했다.
키움증권 전지원 연구원도 “미국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 가운데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며 “미국계 뮤추얼 펀드로 자금유입이 발생해 남유럽쇼크로 급격한 자금유출이 진정되는 모습이 나타나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다”고 말했다.
◇ 환율하락으로 환차익도 기대, 저가메리트 부각
주된 관심은 외국인 매수가 미증시 회복에 따른 ‘이벤트성 매수’에 그치지 않고 순매수를 본격화하느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외국인 순매수의 지속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대신증권 최재식 연구원은 이번 외국인 순매수가 기술적 반등에 가깝다는 시각이다. 최재식 연구원은 “이번 순매수의 배경엔 5월 급락국면에서 늘어났던 공매도물량이 예상과 달리 지수가 오르자 빌린 주식을 되갚기 위해 주식 재매입에 나서는 숏커버링의 영향도 미쳤다”며 “경기회복을 확신하면 직접효과가 기대되는 핵심업종인 IT, 자동차, 화학, 조선, 은행 쪽의 비중을 늘려야 하는데, 그 외에 업종으로 매수세가 쏠리며 외국인의 매수 우위가 추세적으로 고착화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 한범호 연구원도 “자본시장의 관심이 유럽지역 경기회복 속도의 둔화 여부에까지 확장되고 유로화 가치의 의미있는 회복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며 “결과적으로 국내증시 수급 구도에서 외국인 순매수세의 확대 가능성도 그 절대적인 수준은 다소 낮춰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본격적인 매수세가 기대된다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남유럽사태 진정에 따른 안전자산쏠림현상이 완화된데다 1700P에서도 국내주식이 여전히 싸다는 주장이다.
삼성증권 황금단 연구원은 “코스피가 1664p에서 PER은 8.6배이고, 기업이익이 전혀 성장하지 않아도 위험 프리미엄이 낮아져 PER을 8.8배로 적용하면 1,703p”라며 “외국인 입장에선 절대적인 주가 수준보다 상대적인 주가를 보면 싸다고 느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원화 강세 기조가 한풀 꺾인 것도 외국인의 매수세를 자극할 호재다. 키움증권 전지원 연구원은 “4월 이후 고점대비 저점까지의 조정 폭은 원화기준으로는 -10.92%에 그쳤지만, 달러화 기준으로는 -22.18% 기록했다”며 “외국인 입장에서는 지수상승과 더불어 원화 강세현상에 따른 환차익으로 투자 시 기대수익률이 높아 국내 주식시장으로 복귀흐름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황금단 연구원도 환차익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시장환경에 주목했다. 황연구원은 “원화기준으로는 고점 대비 저점까지 하락률이 10.7%이고, 저점에서 최근까지 8.0% 반등해 거의 3/4 가량 회복했다”며 “이를 달러화 기준으로 봤을 때 회복률이 절반밖에 되지 않아 외국인 입장에서는 향후 주가 상승에 더해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한금융투자 한범호 연구원은 “글로벌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부각되고 있는 우리나라 증시의 낮은 PER비율이 외국인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임은 분명하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유로존 재정위기가 구체화된 5월 이후 국내증시의 외국인 매매동향은 밸류에이션 지표가 아닌 유로화 가치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어 외국인의 추가매수가 유입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나친 낙관론에 대해 경계하기도 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