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 9일 발표한 `랩어카운트의 부각과 투자자보호` 보고서에 따르면 투자일임업의 대표상품인 랩이 1년 사이(2009년 3월 기준)1조3316억원에서 2조1928억원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령화, 저금리 기조로 자산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된데다, 금융위기 이후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며 직접투자보다 전문가에 의한 자산운용이 안전하고 수익률이 높다는 인식이 확산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양적 성장에 비해 투자자보호 같은 질적 성장은 아직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먼저 펀드와 랩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자산운용상품 별 특성과 맞지 않게 판매될 경우 투자자보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고객요구에 따라 운용할 랩이 실질적으로 펀드와 비슷하게 운용사가 자유롭게 운용하거나 사실상 합동으로 운용할 여지도 있어 투자자보호규제의 공백이 발생될 수 있다는 것.
특히 분산투자원칙, 수익자총회 규정 등 투자자 보호장치를 둔 펀드와 달리 랩은 고객과 일대일 맞춤계약으로 운용돼 투자자들이 수동적 지위에서 형식적인 투자의사 등을 표현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투자자보호규제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랩을 운용하는 투자일임업자의 과도한 매매도 꼬집었다. 최근 고객유치 경쟁으로 랩 수수료가 인하되는 가운데 랩수익의 상당부분을 성과보수에 의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안정적 운용보다 고수익을 추구하는 위험이 큰 공격적 투자로 확대돼 투자일임업자의 위험추구행위가 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에게 책임전가 우려도 있다. 최소 2개월 이후 자산명세를 확인하는 펀드와 달리 랩은 HTS에서 수익률, 평가금액, 잔액 등을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이 같은 편의성으로 회사가 투자자의 자기책임원칙이 적용해 투자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우려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승진 연구원은 “랩수요가 늘며 모든 계좌를 맞춤형으로 관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우려도 있는 만큼 금융회사는 전문적인 자산관리 인력의 역량증대에 힘써야 한다”며 “단기적인 판매실적 향상이나 성과수익에 급급해 투자자 보호, 이익을 고려치 않고 공격적이고 무리한 판매에 치중하면 랩시장의 발전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또 “감독당국은 펀드와 랩 등이 고유특성에 맞게 판매/운용될 수 있도록 자산운용상품 간 구분기준 등의 준수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랩이 매매체결 단계부터 펀드와분명히 구별되도록 집합주문 허용규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최성해 기자 haeshe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