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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소연이나 들어주시죠...”

주성식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09-01-14 23:24

지난주 대치동에 있는 모은행 PB센터를 방문했던 기자는 소위 ‘바람’이라는 것을 맞았다. 그날 취재를 겸한 인터뷰가 대치동 근처에서 잡혀있던 터라 일정이 끝난 후 평소 친분이 있던 PB팀장과 신년인사나 나눌 겸 해서 사전에 방문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PB센터 내 한 상담실에서 하릴없이 기다리던 기자에게 PB팀장이 굉장히 미안해 하는 얼굴로 나타난 건 예정된 약속시간보다 무려 1시간이 넘게 지난 오후 5시 30분경. 고객과의 상담이 당초 예정보다 길어진데다, 그마저도 겨우 끝내고 나니 이번에는 다른 고객이 사전약속도 없이 막무가내로 찾아와 면담을 요청하더라며 또 다시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귀한 시간을 1시간 가량이나 헛되이 보내버리게 돼 슬그머니 화가 났지만, 기자보다 고객의 요구에 더 귀기울여야 하는 PB팀장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도 마냥 이해 못할 일만은 아니었다. 더불어 그 고객은 무슨 일 때문에 사전약속도 없이 급하게 면담요청을 해야만 했는지 궁금증도 일었다.

그 궁금증이 풀린 것은 그 다음날, 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겨야만 했던 그 PB팀장으로부터 사과의 전화를 받고나서였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담당 PB를 찾아와 그저 하소연이라도 하려는 심산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고객들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는데, 어제는 유난히 그런 고객들이 이른 오전부터 찾아오더니 오후 늦게까지 줄을 잇더라는 것이었다.

PB팀장이 밝힌 고객들의 하소연은 다름 아닌 보유 자산가치의 하락에 관한 것이 대부분. 요즘 들어 널리 회자되고 있는,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의 가치와 주식·펀드와 같은 금융자산의 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현상을 뜻하는 ‘자산 디플레이션(Asset Deflation)’이 최근 강남부자들의 최대 고민인 것이다.

하지만 답답하기는 PB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실물경기의 상황이나 금융시장의 동향에 따라 그에 맞는 자산배분 리밸런싱을 해줄 수 있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금융 및 부동산시장의 분위기가 싹 가라앉아 있는 지금의 상황 하에서는 뭐라 속시원히 답변해줄 수 있는 묘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고객들도 이런 PB들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특별한 대책없이 보유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고객들로서는 담당PB를 찾아와 하소연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제 PB팀장이 기자를 바람 맞혔던 것도 무턱대고 상담실로 찾아온 고객이 내뱉은 한 마디를 듣고 차마 사전약속이 있다고 내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팀장님, 죽겠습니다. 하소연이나 들어주시죠...”



주성식 기자 juhodu@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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