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 은행에 대해 금융기관이 아닌 금융회사로써 인정하겠다는 발언을 해 놓고서도 민간회사의 임금 삭감을 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은행 간부.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국내 금융시장 유동성 위기가 결국 국내 금융 업계를 외환위기 이후 최대 난국에 빠지게 했다.
유동성 위기의 한 가운데 있는 시중은행들은 정부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대신 사실상 경영간섭을 받게 됐다. 은행들은 이번 금융 위기의 원인이 은행들의 모럴헤저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며 최근의 비판에 대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번 위기 이후 자칫 시장의 자율성이 무시되고 관치가 강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합병을 통해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가 개선되자 임금을 대폭 올리는 등 ‘돈잔치’를 벌였고, 게다가 수익구조 다변화나 선진금융 전문가 육성 등과 같은 질적 성장을 소홀히 하다 위기가 닥쳐 또다시 정부에 손을 내밀면서 연일 질타를 받는 신세가 됐다.
◆ 은행들 자구책 외면에 어쩌나
시중은행들이 22일 정부의 유동성 지원과 관련해 은행장을 포함한 임원들의 연봉을 삭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자구책에 대해 그간 은행들의 ‘모럴헤저드’를 꼬집으며,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이런 자구책이 정부의 등 떠밀기에 억지로 나온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19개 시중·국책은행의 은행장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결의문의 주요내용은 ‘임원들의 연봉 삭감 및 영업비용 절감’, ‘내년 6월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중소기업 대출의 만기 연장’, ‘가계 고객 보호를 위한 금리 부담 완화’ 등이다.
그간 정치권과 국민들은 ‘모럴헤저드’를 지적하며, 은행들의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은행의 외화차입 지급보증 및 외화유동성 공급’과 관련해서 “은행들이 또 국민세금으로 혜택을 보게 됐는데, 고임금 구조에 받을 임금은 다 받다가 일이 터지면 지원을 받는 식이 돼선 안된다”고 압박했다.
이에 개별은행들이 앞다퉈 임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업은행은 즉각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연봉을 15%이상 삭감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지주는 그룹 및 계열사 임원 임금 10%를 삭감키로 했고, 하나금융그룹도 임원 임금의 10%를 반납하기로 했다. 또 국민은행은 본부장급 이상의 임원 임금 5%를 반납하기로 했으며 추가로 반납분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같은 연봉 삭감에도 불구,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연봉이 수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스톡옵션, 성과보수 등을 포함하면 수십억원대 달한다.
실제로 시중 은행들의 평균 임금은 6800만원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계 은행의 경우 1억원이 넘는 곳도 있으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연봉도 1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 외형경영 해석 둘러싼 논쟁도 가열
이 같은 은행의 고임금 구조는 그동안 은행들의 최근 수년간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하면서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 시기에 은행들은 대출을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외형성장을 꾀했다.
은행들의 외형성장 경쟁이 불붙은 시기는 2004년 이후. 2005년부터 2007년초까지는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늘었다. 이시기에 주택담보대출은 28%이상의 성장세를 시현했다.
또 중소기업대출은 200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에 중소기업대출은 무려 58%성장하며 은행의 대출 성장을 견인했다.
이 때문에 은행이 가계 및 중소기업을 상대로 이자수입 올리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은행들이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대출하면서 미스매칭(만기불일치)현상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곧 은행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대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등 과도한 외형성장에만 급급했던 은행권이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로 ‘돈 가뭄’에 시달리면서 갑자기 유동성 위험에 빠지기 시작했다”며 “대출 늘리기에만 열중하고 리스크 관리에는 소홀했던 은행은 철저히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모럴해저드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각 은행들이 성장전략을 택한 것은 경영전략상의 문제이지 도덕적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면서 “정부가 금융허브를 위해 해외 진출을 적극 장려해왔는데 해외 자산 매입으로 외화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질책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의 해외 차입이 어려워진 것은 다른 나라의 은행들이 먼저 국가 보증을 받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해외 차입 조건을 맞추기 위해 국가 지급보증을 받는 것이고, 은행들은 이에 상당하는 보증료를 내는 데 이를 두고 도덕적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정부가 은행의 모럴해저드를 지적하고 나선 것은 오히려 금융 불안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금융감독 당국, 경영합리화 각서 요구
정부는 은행 경영합리화 각서를 받는 등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요구할 방침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양해각서(MOU) 체결 등의 형태로 (은행별로) 하나하나 자구노력을 어떻게 하는지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임승태닫기

임 사무처장은 “은행장을 포함한 임원들이 책임지는 자세를 가지고 연봉을 삭감할 필요가 있으며 은행원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며 “자구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은행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과 은행들이 체결하게 될 양해각서에는 비용절감 등 경영합리화 계획과 함께 정부 지급보증 채무의 운용지침도 포함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이 자산 확대를 목적으로 정부의 보증을 받아 외화를 차입하는 행위를 제한하고 방만하게 외화자산을 운용했을 때 페널티를 부과하는 내용이 MOU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의석·정하성 기자
< 금융권 경영합리화 방안 발표내용 >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