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동안의 교훈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달랐다. 연휴동안 집안에만 있기가 뭣해서 가족들과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강원랜드의 스키장을 거쳐 설날 아침에는 태백산 정상에서 해맞이를 하기로 하였다.
강원랜드 호텔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낸 밤은 의미 있었다. 늦은 밤, 아이들과 모처럼 자리를 함께하고 TV를 보던 우리는 우연히 개그우먼 박경림 씨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회상하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크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겨울철에 야외에서 CF촬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말을 할 때 입김이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입에 얼음을 물고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고통스런 일을 6시간이나 하고 결국 혼절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랬구나! TV화면으로 본 CF장면은 코믹하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불과 몇십 초의 장면을 위해 6시간 동안 사력을 다한 사연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저토록 사력을 다한 경우가 있었던가?” - 이것이 그날 밤 우리네 가족의 화두였음은 물론이다.
드디어 설날 아침. 새벽 4시 40분에 태백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람들로 붐빌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우리 가족, 딱 네 사람뿐이었다. 허긴,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지 않고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방은 춥고 캄캄하고 고요한데 사람은 전혀 없고… 등반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산속으로 갈수록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밤 산행이요 태백산 등반이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별 것 아니겠지만 우리들로서는 히말라야 등반대 같은 엄숙함이 있었다.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디서 사나운 짐승이라도 나타날까봐 은근히 겁이 났다. 가장이라는 막중한 책임 때문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 나중에 산에서 내려온 후, 아내의 말에 의하면 산행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준이다
헛기침과 수다로 두려움을 쫒으며 조심스레 산을 오르는데 딸아이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란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 깜깜한 산속의 맞은편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손전등 빛 속에 그가 들어오면서 자세히 보니 멀쩡한 ‘신사’였다. 인사를 나누며 살펴보니 등산복 차림에 나무 지팡이 하나뿐이다. 전등도 없었다. 태백산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길을 찾아오는 건지 의아했다. 산사나이들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건지 글을 마치면 친구들에게 물어볼 작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과의 만남 이후이다. 그와 헤어진 이후, 우리 ‘등반대’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스산하고 을씨년스럽고 두렵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저렇게 전등도 없이, 더 이른 시간에, 홀로 산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우리네의 ‘호들갑’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이 우리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하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오직 우리들만이 태백산의 아침을 독차지한다는 뿌듯함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오히려 등반객이 전혀 없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마저 생겨났다. 일부러 손전등을 끄고 걸어보기도 하였다. 기준이 바뀌자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었다.
그렇다. 문제는 기준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늘 그렇게 말해왔지만 체험을 통해 새삼 깨달은 바가 있었다. 우리 가족의 설날은 그렇게 밝아왔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