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음부도율이나 연체율 같은 지표엔 아무 징후가 없다. 하지만 일선 기업들의 여건과 분위기를 알기 때문에 선제적 대응책 마련에 ‘정중동’의 모습을 보이는 은행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금융감독당국이 주택담보대출 억제에 전력투구함에 따라 자산운용 창구는 중소기업대출과 소호대출이 전부나 다름 없다는 공감대가 팽배한 터여서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10일 대형 A은행 고위관계자는 “연초부터 중소기업들이 감내하기엔 걷잡을 수 없으리만치 환율이 요동치는 등 경기여건이 나빠지고 있어 신중하게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중소기업 가운데는 채산성이 지속적으로 나빠져 체력이 약화된 곳이 있는 게 사실이고 약체화된 일부 기업들에서 부실이 생기면 자칫 ‘경기악화→부실증가→대출 집중회수’의 악순환의 고리가 시작될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 역시 “은행권 대출태도가 보수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어 그는 “연체율이나 부도율 따위의 지표는 어차피 후행적이라서 드러난 뒤에 대응한다면 늦다”고 전제한 뒤 “아무리 자산증대 욕심이 난다 해도 전 은행이 올해는 리스크를 과도하게 해치면서까지 영업에 나설 처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은행권 안팎의 상황을 미뤄볼 때 중소기업대출 증가세가 크게 꺾이는 현상만큼은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최근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만났다는 C은행 고위관계자는 “어려움을 호소하는 강도가 어느 때보다 커진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D은행 관계자는 “경제성장률 수준의 자산확대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 은행일지라도 연체율이 소폭이나마 늘거나 경기악화 체감지수가 높아지면 보수적인 모습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와 관련 이미 지표상 중소기업대출 증가폭 둔화 예보는 나와 있다.
한은이 최근 낸 4분기 및 올 1분기 금융기관대출행태서베이는 은행들이 체감하는 영업여건 악화상이 상당부분 반영됐다.
그동안 은행들은 군집행동과 경기순응성이 지나친 수준이라고 지적받아 왔으나 근본적 체질개선에 나설 시간적 자본규모상의 여유가 충분치 않았다.
따라서 국내은행들은 모처럼 위기관리능력의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