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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돈을 버는 사회와 금융기능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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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6-09-25 08:40

삼성증권 이상묵 상무,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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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자금중개기능이 사라져 돈이 있어야 돈을 버는 사회로 전락

리스크관리 명목으로 리스크 기피하는 것이 선진금융으로 착각

시중에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있다. 돈은 생산요소를 구매할 수 있는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은행에 예치해 놓기만 하더라도 이자가 붙는다. 돈에 돈이 붙기 마련이다. 그러나 ‘돈이 돈을 번다’는 시중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눈앞에 돈 벌 기회가 있어도 그 기회를 살리기 어렵다는 말을 다소 냉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말에 수긍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금융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다. 금융은 여유 돈은 있으나 돈 벌 기회를 찾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돈 벌 기회는 있으나 그 기회를 살릴 돈이 없는 사람에게로 돈이 흐르도록 하는 중개기능을 수행한다.

그러한 금융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의 범위 내에서만 사업을 벌일 수 있다. 기계를 하나 사면 훨씬 생산성이 높아지고 수익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정작 기계를 살 돈이 없는 사람은 망치로 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금융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킬 수 없다면 그 아이디어는 사장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금융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돈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발견한 사업기회만 현실화될 수 있다. 실제로는 돈을 벌어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 사업수완이지만 이런 사회에서는 마치 돈이 돈을 벌어준다는 인식이 만연하게 된다. 돈이 없는 사람은 굳이 신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찾아내려 하지 않으며 사업수완이 있더라도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해보겠다는 꿈을 가져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사회 구성원의 경제적 지위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된다. 부의 계층간 이동이 제한되면 사회는 역동성을 상실하고 침체된다. 가진 자는 더욱 더 부자가 되고 없는 자는 좀처럼 그 질곡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아니라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부의 크기가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 당대에 일약 갑부로 큰 부를 형성하는 일이 불가능하고 부는 가문에서 가문으로 이어진다. 희망과 꿈이 상실되고 냉소와 자조의 사회분위기가 만연된다.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금융이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금융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가? 능력과 노력만 있으면 당대에 일약 큰 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려있는 사회인가? 금융의 기능이 점점 개선되고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퇴보하고 있는 사회인가?

우리의 금융현실은 이런 질문에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외견상으로는 금융이 매우 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금융허브가 논의되고 외국계 선진금융사들이 시장 곳곳에 점포를 열고 있다. 각종 복잡한 선진금융기법이 거론되고 금융용어가 온통 영어 일색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의 본질적인 기능인 돈의 중개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 리스크 관리라는 명목 하에 리스크가 기피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리스크를 직접 지지 않는 수수료 사업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고액 자산가의 자산관리 서비스인 PB 업무가 금융의 꽃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우수 인력이 PB 업무로 몰리고 있다. 80년대까지 각광을 받던 기업금융업무는 기피대상 업무로 간주되고 있다. 위험 인수에 대한 패배주의가 만연되어 있다. 90년대 말 벤처 거품의 후유증으로 벤처캐피탈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을 당연시하고 선진금융이 나아갈 방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의 본질적 자금중개기능이 저하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고민하는 경영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금융회사들이 이러한 경향을 지속한다면 우리 사회의 역동성은 현저히 저하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우리 사회는 당대에 거액의 부를 축적하는 풍운아를 창출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부동산이든 현금이든 자신이 가진 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아이디어나 사업수완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사회, 돈이 돈을 버는 사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 현상이 휠씬 심각하다. 그러나 미국은 대학을 중퇴하고 창고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일약 당대에 세계 제1의 갑부로 성장한 빌 게이츠를 창출하는 금융 시스템을 가진 나라이다. 그런 금융시스템이 있기에 누구든 능력과 노력만 있으면 당대에 밑바닥에서 최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고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덜하다.

신기술은 있으나 돈이 없는 사람, 아이디어는 있으나 돈이 없는 사람, 사업수완은 있으나 돈이 없는 사람이 자신이 발견한 사업기회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금융시스템을 갖추는 일이야말로 금융의 본질적 기능을 선진화하는 것이다. 복잡한 선진 금융기법과 금융공학은 이러한 금융의 본질적 기능에 수반되는 리스크를 관리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수단을 세련되게 하는 과정에서 목적이 상실된다면 주객이 전도된 것이며 우리 금융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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