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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과 지급결제업무

관리자 기자

webmaster@fntimes.com

기사입력 : 2006-09-13 21:12

전성인 교수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며칠 전 국회에서 자본시장통합법에 관한 공청회가 있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조문수만 수백조에 달하는 방대한 법이다.

따라서 이 법의 각 조문의 내용을 검토하고, 같은 법내의 다른 조문과의 연관성이나, 다른 법률체계와의 정합성을 따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법률에 대한 검토가 전체의 골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슈 하나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재경부가 증권사의 지급결제업무 허용이라는 이상한 꼭지를 슬그머니 법률안에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의 공청회에서도 이것의 허용을 놓고 귀중한 공청회 시간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허송하고 말았다.

필자가 보기에 이 문제의 본질은 너무나 간단하다. 재경부가 욕먹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증권업계에게 떡 한 덩어리를 선물해 준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함부로 떡을 뿌리다 보니 기존의 금융 구조와는 전혀 부합할 수 없는 기형아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는 점이다.

당연히 이것을 합리화할 논리랄 것도 없었다. 이것 허용해주면 증권업계가 돈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은 논거가 될 수 없다. 돈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이 규제합리화의 논거라면 세상에 남아 날 규제가 몇이나 될 것인가.

유일하게 논리의 형식을 띠고 제시되는 것이 “예금과 지급결제업무는 분리(unbundling)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즉 이제까지 예금과 지급결제업무를 모두 은행이 해 왔는데 그 중 예금 수취는 은행의 고유 업무여서 증권업계가 어찌할 수 없지만, 그것과 분리할 수 있는 지급결제업무는 은행의 고유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증권업계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공청회 자리에서는 지급결제업무는 금융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과연 이런 주장에는 어느 정도의 진리가 담겨져 있을까? 거의 없다. 물론 미국의 웨스턴 유니온처럼 송금업무에 특화한 회사도 있다. 그러나 송금업무와 지급결제업무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업무이다. 지급결제업무를 담당하는 회사는 거의 언제나 송금업무를 겸업하고 있으나 송금업무를 담당하는 회사가 본격적으로 지급결제업무를 담당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지급결제업무는 무엇이고 과연 예금과 분리 가능한 것인가. 지급결제업무란 고객이 결제해야 할 의무를 특정 금융회사의 부채로 대신 결제해 주는 업무를 말한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 결제해야 할 금액이 100원이 있다면 어떤 금융회사가 자신이 채무자가 되는 부채 100원을 홍길동을 위해 대신 내어 줌으로써 홍길동의 결제의무를 갈음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위를 금융기관이 공짜로 해줄 리는 만무하다. 통상적으로 보면 먼저 홍길동이 돈을 금융회사에 맡김으로써 홍길동과 금융회사사이에 채권채무관계를 발생시킨 후, 그 채권채무관계에서 발생한 금융기관의 부채를 결제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때 결제가 일회적인 것이라면 채권채무관계를 발생시키는 것 대신에 금융회사의 부채증서를 돈을 주고 구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제가 일반적, 조직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홍길동과 금융회사 사이에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는 채권채무관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곧 예금이다. 따라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급결제업무는 언제나 인출 가능한 예금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증권회사가 고객예탁금에 기반하여 지급결제업무를 수행하겠다는 말을 하는 이유도 고객예탁금이라는 채권채무관계가 있어야 지급결제업무를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지급결제업무를 예금과 분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진정으로 이것이 가능하다면 고객예탁금을 한 푼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증권투자자의 신용카드 대금을 증권회사가 일상적이고 체계적으로 결제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우리나라 증권산업이 진정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방법은 증권회사들이 효율적으로 영업하는 것이지 지급결제업무를 예금과 분리하여 증권회사에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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